등불 하나가 걸어오네
- 저자
- 강은교
- 출판사
- 문학동네
- 발행일
- 1999-10-26
- 사양
- 96쪽 | 변형사륙판(양장본)
- ISBN
- 89-8281-222-9
- 분야
- 시
- 도서상태
-
품절
- 정가
- 6,000원
-
도서소개
3년 만에 펴내는 강은교 시인의 신작 시집 『등불 하나가 걸어오네』는 더욱더 깊고 풍성해진 시의 비의성 속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 비의성은 아주 친근한 일상의 세목과 함께 있다. 시인의 어조는 너무도 편안해서 마치 오래된 누이의 푸근한 덕담 같다. 얼핏 강은교 시어 특유의 비의성은 사라져버린 것 같다.
-
저자
1945년 함남 홍원에서 출생하여 서울에서 성장했다. 연세대 영문과 및 동 대학원 국문과를 졸업했고 1968년 『사상계』 신인문학상(시 부문)으로 등단했다.
한국문학작가상(1975) 현대문학상(1992)을 수상한 바 있다.
시집 『허무집』 『풀잎』 『빈자일기』 『소리집』 『붉은 강』 『우리가 물이 되어』 『어느 별에서의 하루』 등과 산문집 『추억제』 『허무수첩』 『달팽이가 달릴 때』 등이 있다. 그 외에 장편동화 『숲의 시인 하늘이』, 역서 『예언자』『소로우의 노래』 등 다수 가 있다. 현재 동아대학교 한국어문학부 교수로 재직중이다.
-
목차
-
편집자 리뷰
시집 출판의 획기적인 장을 열어갈 문학동네의 ‘새로운 시집’!시를 삶의 안쪽으로! 문학동네는 삶과 유리되어 있는 시를 독자들의 삶의 안쪽으로 자리잡게 하기 위하여 새로운 형태의 시집을 기획, 그 일차분으로 최승자의 『연인들』, 이문재의 『마음의 오지』, 안도현의 『바닷가 우체국』 등 세 권의 시집을 출간했다. 하드 카바에 새로운 판형(변형사륙판)인 이 시집은, 기왕의 시리즈 형식에서 과감히 탈피한 ‘단행본 개념’의 시집이다.
이 기획은 계간 『문학동네』의 고정 지면인 ‘시인을 찾아서’에 소개된 시인들의 신작시를 묶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이성복 시인을 창간호에 소개한 ‘시인을 찾아서’는 이후 황지우, 김혜순, 도종환, 안도현, 최승자, 장석남, 함민복, 나희덕, 김용택 등 우리 시대의 가장 주목받는 시인들의 시와 삶을 조명, 독자들의 폭넓은 호응을 받아왔다. 이 새로운 시집은 관행처럼 자리잡은 해설 혹은 발문 대신에 시인 자신이 직접 자신의 시세계와 시론(詩論)을 풀어낸 ‘시인이 쓰는 시 이야기’를 싣고 있다. 칭찬 일변도인 발문이나 난해하기만 한 해설이 독자의 시 읽기를 방해하는 측면이 있다고 한다면, ‘시인이 쓰는 시 이야기’는 시인 자신의 육성을 통해 독자에게 직접 다가감으로써 한결 투명하고 친숙하게 시와 만나는 길을 열어놓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 출간된 강은교의 『등불 하나가 걸어오네』는 그 네번째 시집이다.
순수 허무와의 대결
강은교 시인은 1968년 「순례의 잠」으로 『사상계』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시단에 나왔다. 이후 그는 순수 허무와 대결하는 강렬한 시의식을 비의 가득한 시어로 연금해내면서 독자적인 시세계를 구축해왔다. 30년, 강은교의 시력(詩歷)은 한국 현대시가 비할 바 없이 경건한 언어의 성채를 하나 갖게 된 시간이라 할 만큼, 강은교 시의 독자성과 황홀하기까지 한 시어의 비의성은 유례없이 견고한 것이었다.
강은교의 시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테마는 ‘허무’다. 강은교에게 허무는 삶과 뒤섞여 만나는 것이 아니라, 삶 이전에 순수 그 자체로 마주하는 그 무엇이다. 이 마주섬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온몸으로 밀어붙인 절정의 감수성, 그 강렬한 순도(純度)다. 이처럼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모든 것들을 대담하게 사상(捨象)시켰을 때 남는 순수한 감수성을 통해 시인이 이루려는 것은 죽음이라고 하는 인간 존재의 절대적 허무를 시의 사원(寺院)에서 감싸안는 일이다. 그의 시가 주술적 시어와 화려한 상상력을 거느리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죽음, 절대적 허무와의 대결 의식, 그 팽팽한 긴장이 그의 시어에 비의적 풍성함을 빚어낸 원천인 것이다.
깊은 단순성이 빚어내는 시의 비의성, 시의 황홀경
3년 만에 펴내는 강은교 시인의 신작 시집 『등불 하나가 걸어오네』는 더욱더 깊고 풍성해진 시의 비의성 속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 비의성은 아주 친근한 일상의 세목과 함께 있다. 빗방울, 엘리베이터 속의 꽃잎 한 장, 신문의 날씨란, 오리백숙을 먹는 시간, 촌스러운 왼다리, 10년도 더 된 주전자, 아파트 경비원 김씨, 스타킹, 마늘,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지렁이, 모래 위에 쓰는 이름 점순이…… 시인의 어조는 너무도 편안해서 마치 오래된 누이의 푸근한 덕담 같다. 얼핏 강은교 시어 특유의 비의성은 사라져버린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구체에의 유연한 하강/상승이야말로 삶의 허무와 대결해온 언어의 제사장 강은교의 시어가 깊은 단순성 속에서 새롭게 열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강은교 시의 비의성은 처음부터 천상의 자리에서 빚어져온 것이 아니었다. 시인은 줄곧 자기 앞의 생과 세계를, 순수와 절대의 시선으로 대면하기 위해 치열하게 싸워왔다. 그것은 시인 자신에게 가혹하지 않고는 가능하지 않은 일이었다. 비의로 충만한 언어의 축제는 그 가혹함을 견디는 시인의 긴장이며 깊은 아이러니였던 것이니, 이제 그 오랜 싸움의 여정에서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이 엎드려서 무슨 글자인가를 모래 위에 쓰고 있다. ‘점순이―’ 모래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고 있다.
―「너무 짧은 사랑 이미지·ㅌ」 전문
모래, 점순이, 그리고 다시 모래 속눈썹의 떨림으로 이어지는 짧은 일별을 통해 시인은, 허무와 우리 남루한 삶에 대한 긍정이 같은 자리에 있음을 깊은 단순성으로 이야기해준다. 신경림 시인이 잘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시인은 삶/죽음이나 현상/존재를 등가적 동시적으로 보고 있다. 이 두 세계의 이미지를 병렬적으로 제시하면서 조용히 그 둘 사이를 넘나들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삶을 경건하게 비추는 강은교 시의 비의성은 이제 아주 나직하고, 낮은 자리에서 새롭게 열리고 있다. 시의 위의가 여러모로 손상받고 있는 이즈음, 강은교 시인이 조용하게 켜든 ‘등불 하나’는 작은 축복처럼 느껴진다. 시인은 「시인이 쓰는 시 이야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시가 제일 시다워지는 순간, 나는 살기 시작합니다. 숨을 쉬기 시작하고. 피가 돌기 시작하며, 시력을 회복합니다. 청력도 회복합니다. 나는 나의 은유를 고집하지 않겠습니다. 당신의 은유를 당신의 깨진 거울 조각에 비추어보십시오.’
3년 만에 펴내는 강은교 시인의 신작 시집 『등불 하나가 걸어오네』는 더욱더 깊고 풍성해진 시의 비의성 속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 비의성은 아주 친근한 일상의 세목과 함께 있다. 시인의 어조는 너무도 편안해서 마치 오래된 누이의 푸근한 덕담 같다. 얼핏 강은교 시어 특유의 비의성은 사라져버린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