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흘러가는 것들을 듣는다
- 저자
- 박남준
- 출판사
- 문학동네
- 발행일
- 2000-03-30
- 사양
- 112쪽 | 변형신국판
- ISBN
- 89-8281-879-0 02810
- 분야
- 시
- 도서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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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 정가
- 7,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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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투명하고 순결한 시심으로 삶의 쓸쓸함을 노래해온 박남준 시인의 네번째 시집. 혼탁한 세상을 떠나 세상의 가장자리에 둥지를 틀고 나무, 풀, 꽃, 새 들과 교감하며 물처럼 바람처럼 살고자 하는 시인이 작고 가벼운 것들 속에서 발견하는 눈물겨운 아름다움이 지나간 시간의 발자취가 남겨놓은 쓸쓸한 기억들과 등을 맞대며 청정한 시어로 형상화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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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박남준(朴南濬)
1957년 전남 법성포에서 태어났으며, 1984년 시 전문지『시인』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세상의 길가에 나무가 되어』(1990) 『풀여치의 노래』(1992) 『그 숲에 새를 묻지 못한 사람이 있다』(1995)와 산문집 『쓸쓸한 날의 여행』(1993) 『작고 가벼워질 때까지』(1998) 『별의 안부를 묻는다』(2000)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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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차례
自序
1부
미루나무가 쓰러진 길
흰 부추꽃으로
나무들도 한쪽으로 눕는다
다만 흘러가는 것들을 듣는다
겨울 상수리나무가 마른 잎을 남기는 일
외딴집
마음이 봄비를 따라가서 빈 배를 흔든다
내 마음의 당간지주
타래난초와 한판 붙다
동지 밤
몽유별빛
흑백사진을 찍었다
무서운 추억
흔들리는 사람
2부
눈길
저녁 무렵에 오는 첼로
문포바다까지
무릎을 꺾는 사내
차단기가 완강한 건널목
바람 아래 겨울나무
치명적인 상처
상처가 나를 가둔다
떠도는 무렵
불온한 윤회
무거운 새
싸리나무 앞에서 잠긴다
그늘에 감긴 사람
미황사
3부
상수리나무 그 잎새
자각 증세
사십대
그렇게 나이를 먹는다
늙은 무덤
정육점 저울추 앞에서 고개를 떨구네
겨울밤
풍경의 저편
봄날
흰나비 떼 눈부시다
봄날 춤을 추다 죽음을 보다
그래 그래
4부
절명
매미
선운사 동백꽃
문, 혹은 벽
아름다운 관계
가을
풍편
배꽃이 지는 날
젊은 느티나무
대밭 그 꽃밭
유목의 꿈
해피 투게더
길을 잃었다
물결의 일
견딜 수 있을 때까지
해설|방민호 외딴 삶 벼랑에서 쓴 시
시인의 말 누군가 발자국을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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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리뷰
투명하고 순결한 시심으로 삶의 쓸쓸함을 노래해온 박남준 시인의 네번째 시집
자연과 벗하며 길어낸 맑은 샘물 같은 청정한 시편들로 평단과 독자들의 주목을 받아온 박남준 시인의 네번째 시집이 출간되었다. 박남준 시인은 10년 전 전북 전주 인근 모악산의 한 버려진 무가(巫家)에 들어가 개울물에 쌀 씻고 장작불에 밥 지어 먹으며 홀로 자연과 벗하여 살고 있다. 이번 시집에 실린 55편의 시편들에는 혼탁한 세상을 떠나 세상의 가장자리에 둥지를 틀고 나무, 풀, 꽃, 새 들과 교감하며 물처럼 바람처럼 살고자 하는 시인이 작고 가벼운 것들 속에서 발견하는 눈물겨운 아름다움이 지나간 시간의 발자취가 남겨놓은 쓸쓸한 기억들과 등을 맞대며 청정한 시어로 형상화되어 있다.
작고 가벼운 것들 속에서 발견하는 눈부시고도 슬픈 아름다움
시인은 앞산 너머에서 뽑아온 진달래가 여위어가는 것을 보고 함부로 진달래 뿌리를 옮긴 것을 후회하고,(「흔들리는 사람」) 쑥국을 끓여먹으려고 쑥의 뿌리를 자르다가 “이 여린 것을 먹고 살겠다니 잔인하단 생각”에 아득해한다.(「무서운 추억」) “늙은 상수리나무의 노래를” 듣고,(「상수리 나무 그 잎새」) 봄비에 깃을 적신 채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작은 멧새의 허기를 걱정하기도 한다.(「마음이 봄비를 따라가 빈 배를 흔든다」) 인간에서 떠나 자연 속에 사는 시인과 함께 하는 모든 존재들은 그에게 교감과 연민의 대상이다. 그는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를 안쓰러워한다. 작고 가벼운 존재들을 보고 눈물짓고, 그 눈물겨운 것들 속에서 절대적 미의 현현(顯現)을 보기도 한다.(“영산홍을 보았네/붉은 절정에서 스스로 목을 자르는/잘려나간 목들이 땅바닥에서 한 점 몸 흐트리지 않는/映 山 紅/그 섬뜩한 절대”―「절명」)
이곳과 저곳의 경계에서 꿈꾸는 순백의 환한 삶
이 아름다운 풍경들 위에 시인이 걸어온 날들의 거리만큼 멀리 있는 흘러간 옛기억의 잔영들이 무늬진다.(“풍경이 먼 휘파람처럼 손짓한다/꼭 그만큼의 거리가 여기까지 날 내몰은 것이다”―「나무들도 한쪽으로 눕는다」) 그가 기억해내는 과거는 상처의 기억으로 낙인 찍힌 삶이다. 그에게도 “별을 보며 길을 묻던 날”이 있었다. “무지개를 좇아” 숨차게 살았다. 그러나 산다는 일은 “다가가면 갈수록 그만큼의 거리로 아른거리며 달아난다는 신기루” 같기만 하다.(「몽유별빛」) 맑고 순수한 영혼은 세속의 현실 속에서 상처받고 좌절할 수밖에 없다. 시인은 “걸어온 길에 갇혀 길 밖에 버려지고는 했”던 것이다.(「떠도는 무렵」) 시인은 “왜 지나온 나이들은 무거워지는 것일까”(「나무들도 한쪽으로 눕는다」) 자문하고, “아무래도 나는 눈부신 것들의 저쪽으로 오래 떠돌았다”고 고백한다.(「문포바다까지」) “자라난 상처가 그늘을 이루”고,(「치명적인 상처」) 시인은 “낙인처럼 견고한”(「상처가 나를 가둔다」) 그 상처에 갇힌다. 상처로 얼룩지고 길도 별도 잃은 그는 절망의 나락으로 내몰린다. 외롭고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 그는 “한세상 훌쩍 건너고 싶”어한다.(「늙은 무덤」)
그러나 시인이 그저 절망 속에만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니다. 늙은 상수리나무의 마른 잎새 하나가 수만 송이 햇살의 새순들을 피워내듯,(「상수리나무 그 잎새」) 매미가 햇살을 타고 날 수 있을 때까지 힘을 다해 나뭇잎을 붙잡고 제 몸의 등을 찢듯,(「매미」) 세상 저 너머를 꿈꾸며 다시 흘러가고자 한다. “가슴의 늙고 오랜 썩은 피를 쏟아내”고,(「길을 잃었다」) 삶의 옹이들을 태워버린 후 순백의 환한 삶으로 환생하고 싶어한다.(“언제쯤이나 사는 일이 서툴지 않을까/내 삶의 옹이들도 불길을 타고/먼지처럼 날았으면 좋겠어/타오르는 것들은 허공에 올라 재를 남긴다/흰 재, 저 흰 재 부추밭에 뿌려야지/흰 부추꽃 피어나면 목숨이 환해질까/흰 부추꽃 그 환한 환생”―「흰 부추꽃으로」) 그러기 위해 시인은 상처뿐인 과거와 절망적인 현실을 견뎌내고자 한다.(“견뎌내는 것들이 멀리서 가만히 부르는 것이 있다 냉이꽃 같은 꽃다지 같은/다만 그것을 버릴 수 있을 때까지 다만 그것을 견딜 수 있을 때까지”―「견딜 수 있을 때까지」) 그리고 새로운 길을 모색한다.(“내가 한때 쓰러졌다 여긴 이 길 위에서 나의 오늘을 물어본다”―「미루나무가 쓰러진 길」)
툇마루에 앉아 햇살을 쬐던 시인은 버려진 놋숟가락을 보고 옛일을 되돌리지만, 버려진 것은 그 속에 “머지않은 내일을 밀어올리”는 힘을 지니고 있다. 시인은 문을 닫고 누워 “다만 흘러가는 것들을 듣는다”.(「다만 흘러가는 것들을 듣는다」)
박남준 시인의 시에는 흘러가는 시간의 풍경 속에서 포착해낸 작고 가볍고 눈물겨운 것들과의 교감이 맑고 투명한 시심으로 녹아 있다. 지나온 길 위에서 “고통스러운 세속적 경험”을 했지만, 생명을 가진 자연 속의 작은 존재들을 관조하면서 “슬프면서도 단순, 명징한 미”를 발견해낸다. 이를 통해 내일을 꿈꾸고 세상 저편의 환한 순백의 세계를 꿈꾼다. 이 시집은 세상 가장자리에 둥지를 틀고 살면서, 번잡하고 혼탁한 세속과는 대립되는 물 같고 바람 같은 맑고 환한 세계를 꿈꾸는 외로운 영혼의 꿈길 같은 여정의 기록이다.
투명하고 순결한 시심으로 삶의 쓸쓸함을 노래해온 박남준 시인의 네번째 시집. 혼탁한 세상을 떠나 세상의 가장자리에 둥지를 틀고 나무, 풀, 꽃, 새 들과 교감하며 물처럼 바람처럼 살고자 하는 시인이 작고 가벼운 것들 속에서 발견하는 눈물겨운 아름다움이 지나간 시간의 발자취가 남겨놓은 쓸쓸한 기억들과 등을 맞대며 청정한 시어로 형상화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