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숙도에 가면 보금자리가 있을까
- 저자
- 박이도
- 출판사
- 문학동네
- 발행일
- 2000-03-30
- 사양
- 96쪽 | 변형신국판
- ISBN
- 89-8281-270-9 02810
- 분야
- 시
- 정가
- 4,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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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생(生)에 대한 진지하고 엄숙한 태도를 섬세한 서정의 세계로 빼어나게 형상화한 박이도 시인의 새 시집. 그의 시편들을 채우고 있는 것은 사물을 대하는 진지한 태도와 경험의 원숙성이다. 그의 시에는 사람을 사로잡는 미적 황홀경이나 번쩍이는 재치, 피를 들끓게 하는 구호 등은 들어 있지 않다. 그는 은은하면서 저력 있는 목소리로 자연의 신비와 경이를 이야기하고, 세상사의 복잡 미묘함을 간명하게 정리한다. 이러한 태연함의 원동력은 오랫동안 시를 쓰면서 구축된 시세계의 단단한 힘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원숙한 경험에서 유래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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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박이도(朴利道)
1938년 평북 산천에서 태어나 경희대 국문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196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 「황제와 나」가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신춘시" 동인 및 1966년 김주연, 김현, 김화영, 정현종, 황동규 등과 함께 "사계" 동인으로 활동했다. 현재 경희대 국문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시집 『회상의 숲』(1968) 『바람의 손끝이 되어』(1980) 『불꽃놀이』(1983) 『안개주의보』(1988) 『홀로 상수리나무를 바라볼 때』(1991), 시론집 『한국 현대시와 기독교』(1987)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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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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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리뷰
영혼의 순수와 평온을 향한 순도 높은 서정의 세계
생(生)에 대한 진지하고 엄숙한 태도를 섬세한 서정의 세계로 빼어나게 형상화한 박이도 시인의 새 시집 『을숙도에 가면 보금자리가 있을까』가 출간되었다.
영혼의 순수와 평온을 향한 꿈꾸기. 박이도의 시세계를 지배하는 순수에의 갈망은 자연세계에 대한 노래의 시편들에서 잘 알 수 있다. 이때, 탐욕과 쟁투로 얼룩진 현실세계의 비속함과 대비되는 자연의 순연함을 특유의 시적 상상력으로 길어올리는 것은 삶의 정체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간절함에 다름아니다. 그의 시는 의도적으로 구체적인 현실의 실재세계와 시적 거리를 둠으로써 본원적 순수와 자유의 세계, 즉 절대 순수의 세계에 대한 갈구를 한층 더 강렬하게 드러낸다.
박이도의 시편들은 화려한 아름다움이나 격렬한 이념의 제시와는 거리가 멀다. 그의 시편들을 채우고 있는 것은 사물을 대하는 진지한 태도와 경험의 원숙성이다. 그의 시에는 사람을 사로잡는 미적 황홀경이나 번쩍이는 재치, 피를 들끓게 하는 구호 등은 들어 있지 않다. 그는 은은하면서 저력 있는 목소리로 자연의 신비와 경이를 이야기하고, 세상사의 복잡 미묘함을 간명하게 정리한다. 이러한 태연함의 원동력은 오랫동안 시를 쓰면서 구축된 시세계의 단단한 힘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원숙한 경험에서 유래하는 듯하다.
끝없는 항해, 한없는 날갯짓
시집 『을숙도에 가면 보금자리가 있을까』의 주제는 ‘새’다. 새는 승화고 상승이다. 새는 자유로이 날고, 시인은 새의 날개에 자신을 실어 시간을 거스르기도 하고 공간의 경계를 넘어서기도 한다. 새를 통해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극복한다기보다는 시공간을 타고 자연스럽게 흐른다.
돌아오지 않는 시간처럼/모두는 사라지는가/벼랑에 핀 꽃처럼/흐느적이는 바다 위의/작은 갈매기//지금 무너지는 파도처럼/암울한 노을빛을/나는 정지시킨다/사진 찍듯 쉬지 않고/긴장의 눈망울을 쏘아댄다//손닿을 수 없는/눈길이 머물 수 없는/끝내 사라지는 사물의 꿈을/기도하듯 흐느껴 운다//돌아오지 않는 시간에의 꿈을/훨훨 날아서 가는 갈매기/바다는 이제 한 장의 靜寫眞/너의 나래만이 퍼덕이는,/영원히 살아서/水平을 지키는 파수꾼/나는 눈을 감고/헤엄치고, 나는 시늉을 해본다//
―「바다 갈매기 3」 전문
이 시는 바다를 정적인 대상으로 파악한다. 바다는 무한대의 초점으로 흐려져 있고 갈매기만 정확한 초점으로 찍힌 사진을 떠올리게 하는 영상이다. 바다의 정적인 면과 갈매기의 동적인 움직임이 대조적으로 그려져 있고, 이 시의 화자인 나는 바다보다는 갈매기 쪽에 동경과 희원을 실어보내고 있다. 바다에 대한 저항을 시도하기에는 나나 갈매기의 능력은 한정되어 있기에 바다를 환상적으로 정지시킨 상태에서 영원의 꿈을 꾸는 것이다. 짐짓 “눈을 감고/헤엄치고, 나는 시늉”을 해보는 몸짓은 대단히 유약해 보이지만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모습을 정직하게 그리고 있는 시적 초상이다.
삭막한 현실에서의 고독한 항해, 시간의 흐름에 덧없이 매달려 있는 이 남루함. 시인은 ‘새’에게서 유한한 인간의 유약함을 보지만 한편으로 신을 향한 신실한 날갯짓을 읽는다.
시인은 다만 물처럼 흘러가는 시간을 담담하게 바라보고 있을 뿐이며, 대상에 인간적인 형상을 강요하지 않는 자연스러움은 그의 시를 평화롭고 잔잔한 것으로 만든다.
생(生)에 대한 진지하고 엄숙한 태도를 섬세한 서정의 세계로 빼어나게 형상화한 박이도 시인의 새 시집. 그의 시편들을 채우고 있는 것은 사물을 대하는 진지한 태도와 경험의 원숙성이다. 그의 시에는 사람을 사로잡는 미적 황홀경이나 번쩍이는 재치, 피를 들끓게 하는 구호 등은 들어 있지 않다. 그는 은은하면서 저력 있는 목소리로 자연의 신비와 경이를 이야기하고, 세상사의 복잡 미묘함을 간명하게 정리한다. 이러한 태연함의 원동력은 오랫동안 시를 쓰면서 구축된 시세계의 단단한 힘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원숙한 경험에서 유래하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