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 저자
- 이윤림
- 출판사
- 문학동네
- 발행일
- 2000-05-30
- 사양
- 120쪽 | 변형국판
- ISBN
- 89-8281-290-3 0281
- 분야
- 시
- 도서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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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 정가
- 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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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무고한 삶을 사는 무구한 영혼, 순결한 삶을 사는 순수한 영혼의 독백, 이윤림의 첫 시집. 유고시집이 아닌 시집을 내고자 한 시인의 소망은 이루어진 것인가. 이윤림은 아프다. 많이 아프다... 이윤림은 자신의 아픔을 과장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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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윤림
1958년 서울에서 출생하여 가톨릭대학교 국문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내일을 여는 작가』 2000년 봄호에 「아침 풍경」 외 4편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교직생활중 현재 병으로 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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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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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리뷰
무고한 삶을 사는 무구한 영혼, 순결한 삶을 사는 순수한 영혼의 독백
이윤림의 첫 시집 『생일』이 출간되었다. 유고시집이 아닌 시집을 내고자 한 시인의 소망은 이루어진 것인가. 이윤림은 아프다. 많이 아프다. 얼마나 많은 시인들이 자신의 아픔을 화사하게 과장함으로써, 아픔을 저잣거리에 자랑스럽게 벌여놓음으로써, 자신들의 시를 살해했는가. 이윤림은 자신의 아픔을 과장하지 않는다. 그의 시는 재기가 아니라 어떤 간절함에서 비롯되는 시들이다. 그런 시들은 대개 지나친 감정의 토로로 인해 감상으로 떨어질 위험을 안고 시적 형상화로부터 멀어지기 일쑤다. 이윤림의 시들은 그렇지 않다. 그의 아픔은 어쩔 수 없이, 그러나/그래서 천연하게, 그의 시에 배어 있을 뿐이다.
“이윤림의 시들에는 차마 말하기 힘든 간절함이 있으나 그것을 쉽게 드러내지 않고 그것으로부터 시를 빚어낸다. 마치 물로 눈〔雪〕을 빚어내듯이 말이다. 이 창조적 과정에는 영혼의 추위가 있는 듯하다. 이윤림의 시들은 뜨겁게 들떠 있지 않다. 차분하면서 서늘하다. 나는 그 서늘함이 죽음과 부재에 대한 인식에서 왔다고 생각한다. 육신의 덧없음을 깊이 느끼고 소멸 이후의 자리에서 삶을 바라보는 눈을 갖는다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이윤림의 시에는 텅 빈 거울처럼 맑게 세상과 자신을 비춰보는 부재로부터의 시선이 있다.”(최승호, ‘표지글’에서)
이 시인의 탁월함이 발휘된 시에는 그런 관조의 의연한 태도가 있다. 간절함도 없이 재기가 날뛰고 세속의 경박한 욕망에 휩쓸린 언어들이, 들끊는 수사와 허튼 잠언을 위해 낭비되는 풍토에서 언어를 언어예술인 시에 바치려는 한 시인의 겸허한 시작태도와 문학적 역량을 엿볼 수 있다.
“이윤림의 아픔은 어떤 윤리적 요청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의 아픔의 발원지는 시간 속에 갇힌 그의 실존 그 자체다. 그 아픔이 만들어낸 시선의 따스함이 향하는 곳도 고딕체로 씌어진 역사나 인간이 아니라, 시인 주변의 약한 것들, 덧없음의 운명을 피할 수 없는 개별자들이다. 윤림의 시는 본원적인 의미에서의 시다. 약한 것의 기록으로서의 시, 패배자의 기록으로서의 시다. 그의 시는 그저, 무너져 흐르는 육체들, 바스러져가는 사물들을 응시할 뿐이다. 그의 눈길은 사랑에 실려 있어서 훈훈하고, 진실을 우회하지 않아서 오싹하다.”(고종석, ‘발문’에서)
몸이 아플 때, 아름다움에 대한 감각은 더 날카로워지는지도 모른다. 이윤림의 아름다운 시들은 대체로 서경(敍景)을 깔아놓은 시들이다. 예컨대 아픔에 신세지며 씌어진 것이 틀림없어 보이는 그의 시 「눈」은 거룩하게 아름답다. 그것은 눈을 소재로 삼아 한국어로 씌어진 가장 아름다운 시편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배고픔을 위해서는
하늘의 만나가 되지 못하는
아름다운 헛것
겨울은 그르렁거리는 가래 끓는 소리로 깊어가고
막다른 데서는 하얀 각혈을 쏟곤 한다
그런 때면 부신 듯 눈을 가늘게 뜨고
먼 데를 바라보는 사람들
헛것의 아름다움은 맹독성이라서
스며들지 못하는 데가 없다
아무리 깊이 감춘 심장이라도
불러내 두근거리게 한다
인간이 마지막 외나무다리 앞에 섰을 때
빙하 같은 공포 앞에 백약이 무효일 때를 위해
마지막 소원으로 무엇을 남겨둘 것인가
누가 묻는다면 나의 답은 이것―
흐르는 모차르트 위에 눈이 내리기를……
눈밭에 맨발로 서서
〈아베 베룸〉을 들으면
탄생의 상처가 없는 날개가
잊었던 듯 펼쳐지지 않을까
덫이었던 몸을 그대로 입은 채
승천할 수 있지 않을까
눈이 오면
하얀 환호처럼 눈이 오면
깃털처럼 가볍고 따뜻하리라
죽음마저도
인간의 오지로 열린 하얀 길
―「눈」 전문
마지막으로 표제시 「생일」을 읽어봐주길 부탁드린다. 이윤림은 지금 말기암으로 투병중이다.
맛없는 인생을 차려놓은 식탁에
아무도 초대하지 않았다.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리라.
―「생일」 전문
무고한 삶을 사는 무구한 영혼, 순결한 삶을 사는 순수한 영혼의 독백, 이윤림의 첫 시집. 유고시집이 아닌 시집을 내고자 한 시인의 소망은 이루어진 것인가. 이윤림은 아프다. 많이 아프다... 이윤림은 자신의 아픔을 과장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