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학 시인의 첫 산문집 출간
이윤학 시인이 산문집 『거울을 둘러싼 슬픔』을 펴냈다.
“삽날에 목이 찍히자/뱀은/떨어진 머리통을/금방 버린다//피가 떨어지는 호스가/방향도 없이 내둘러진다/고통을 잠글 수도꼭지는/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이미지」). 최근 상자한 네번째 시집 『아픈 곳에 자꾸 손이 간다』의 서시 중 일부이다. 도대체 시인은 세상을 얼마나 앓고 있기에 이토록 지독한 마음의 바닥을 시로 긁어내고 있는 것인가. 마지막까지 밀어붙여, 마침내 견딜 수 없는 지점에서 고통의 상관물들을 툭툭 이미지로 끊어내는 이윤학의 저 앓음의 시학은 “처절한 내면의 사생화”란 평가를 얻으며 한국 시단에 이윤학이란 이름을 깊숙이 새기고 있거니와, 이번 산문집은 그 고통의 연원과 근거를 엿볼 흔치 않은 자리가 될 게 틀림없다. 그러나 시란 삶으로 단순히 환원될 수는 없는 법. 우리 독자가 보는 것은 시인 이윤학의 또다른 앓음이고, 그 앓음을 감싸고 있는 풍경일 수밖에 없을 터이다.
이번 첫 산문집에서 시인은 어눌한 듯한 어조로, 젊은 날의 방황과 내상(內傷)의 흔적을 담담하게 추억하고 가장이자 생활인으로 겪어나가는 무력과 궁핍을 다소는 계면쩍게 털어놓는다. 그런데 아프다 하지 않고 슬프다 하지 않는데도 침묵의 행간을 숨기고 있는 구절구절들은 그의 시처럼 아프고 슬프다. 또한 산문집 곳곳에 자연스레 어우러져 있는 시인의 시들은 각 편이 만들어지던 당시의 정황과 시인의 마음자리를 잘 드러내고 있기도 하다.
아픈 눈으로 본 세상과 나
이윤학 시인의 산문집 『거울을 둘러싼 슬픔』에서는 술이 세상을 앓는다. 이윤학 시인에게 술은 세상을 앓는 표지이자 앓음 그 자체다. 그러니 그는 취해서가 아니라 아파서 본다. 세상과 자신을. “안에 쓰레기를 가득 채우고 엑셀 승용차가 서 있다. 누가 나를 저렇게 버려놓았을까. 마음껏 부렸을까. 나는 다 어디로 간 것일까.”(「어떤 피해망상」) “두 쪽으로 쪼개져야 무엇인가를 담아줄 수 있는 조롱박의 운명. 나는 나를 쪼개서 사용할 사람에게 갈 수 없다. 내 뿌리는 집에 있는데 나란 조롱박은 뿌리를 떠났다.”(「조롱박」) “어떤 경로로 여기까지 왔는지 모를 소국 화분. 그 자리에 그대로 놓여 있다. 누가 자신의 몸과 마음을 들어올릴 수 있을까? 바꿔놓을 수 있을까?”(「오래 피어 있는 꽃」)
늘 길을 잃고 어딘가를 밤새 헤매고 있는 시인의 주변에는 다정다감한 사람이 많다. 시인은 늘 잊지 않고 기억하는 지인들의 마음을 짧은 삽화 속에 속속들이 담아낸다. 상처난 자리를 보고 다친 사람보다 더 아프게 울어주던 사람, 눈길을 헤매는 시인에게 꼬깃한 지폐 한 장을 건네주던 시골의 아낙, 밤새워 술자리에서 함께 울어주던 사람들…… 그들의 품안에서 시인의 마음은 비로소 향기를 발할 수 있었다.
이윤학 시인은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 어떻게 숨쉴 수 있었을까? 나는 육지 한가운데서 염전의 소금을 꿈꾸었다. 완전한 소금 덩어리가 되는 육체를 꿈꾸었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분명 시인에게 세상을 견디게 하는 답은 있었다. 많이 아파하고 많이 슬퍼하는 그는 “추억 속은 온통 추억의 관들로 가득하였다. 부대끼는 그 사각형의 기억들. 나는 뒤를 보며, 앞으로 걸어다녔다. 시를 읽을 때, 나는 살아 있었다. 시를 생각할 때, 나는 늙어 있었다”고 말한다. 시는 삶에 부대끼는 시인을 살아 있게 하는 힘이었으며, 추억 속에 사는 늙은이처럼 시 안에서 시를 생각하며 살아왔다는 조심스런 고백이다.
이윤학이 맑은 영혼을 가진 시인이라는 것을 내 진즉 알았으나, 이렇게 슬프도록 아름다운 산문을 쓰는 줄은 미처 몰랐다. 이 알뜰살뜰한 관찰과 묘사 좀 보라. 잘 가꾼 숲 한 채 보는 듯하다.
―안도현(시인)
이윤학은 생각이 말보다 앞서 말이 자꾸 넘어진다. 넘어진 말의 무릎 뼈를 멀거니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쌀뜨물처럼 슬프다. 쌀뜨물에 어린 자신의 모습을 천천히 들이켜며 살아가는 그는 고집이 세다. 여리다. 슬프다.
―함민복(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