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작가 윤홍길이 장편 『낫』을 펴냈다.
89년 일본의 출판사 각천서점(角川書店)에서 출간되어 화제를 불러일으켰으나
국내에는 소개되지 않았던 작품이다. 92년 중편 소설집 『쌀』을 펴낸 이후 3년여
동안 문학적 공백기를 가진 작가는 당초 『낫』을 한국과 일본에서 동시체 펴낼
예정이었으나 사정이 여의치 않아 일본에서만 출간했다. 일어판 낫이 출간된
후 일본 문단에서 상당한 호평을 받았는데, 특히 작가 엔도 슈사쿠는 "긴장감으로
충만한 테마를 말과 이미지의 중층성을 통한 신선한 수법으로 그려냈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번의 한국어판은 원고지 900장 분량의 일본어판을
1,500장으로 늘리고, 작품의 골격을 손상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상당 부분 고쳐
썼다.
낫 - 이기(利器)와 흉기(凶器)의 양면성
낫은 정치적 이념적 현실보다 근원적이며
그만큼 포용적인 것으로 믿어지는 민족의 정체성을 나타낸다. 평화의 시대에는
농경에 사용되어 훌륭한 목적을 달성하는 이기이지만, 변란의 시대에는 인명에
위해를 가하는 흉기의 역할을 한다. 이것은 농촌생활의 장구한 전통 속에서
형성된 민족의 심리학적 개성을 표상하는 것으로 제시되어 있다. 작중에서 낫으로서의
민족적 자아, 농촌사회의 역사적 문화적 경험에 뿌리를 두고 있는 민족의 동질적인
자아에 대한 각성은 바로 민족 냅의 분열을 극복하게 해줄 원리로 강조되고
있다.
동족상잔의 비극은 민족의 현재에 아직도
남아 있다.
이 작품은, 평범한 가정의 가장 엄귀수라는
중년의 도시 샐러리맨이 아내와 아들을 데리고 생전 가본 적이 없는 아버지의
고향 산서면을 찾아? 이틀간 겪게 되는 일련의 사건들로 이루어져 있다. 아버지의
고향에서 그가 맞닥뜨린 것은 고향사람들의 엄청난 적개심이었다.
귀수의 산서면 방문은 그에게 지금까지
모르고 지냈던 아버지의 여5사적 실체와 마주치고 그의 새로운 신원을 획득하는
계기가 된다. 친부가 배낙철임을 알려주고 친부 묘소의 벌초를 부탁한 어머니의
유언에 따라 산서면을 방문한 그는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자신이 배낙철과의
혈연이란 귀수에게 있어서 곤?러운 것일 뿐만 아니라 치욕스러운 것이기도 하다.
배낙철은 6·25 전란기에 산서 주민들에게 무참한 살상을 입힌 좌익 테러의
주도자이며, 지금도 주민들 사이에서는 낫을 쥐고 다니던 그의 살기가 엄청난
심리적 동요 속에서 배낫질이라는 악명으로 통하는 죄인이기 때문이다. 그는
엄청난 심리적 동요속에서 배낙철과의 혈연적 연계의 의미를 애써 외면하려
하지만, 배낙철의 만행으로 여전히 원한을 품고 있는 주민들은 귀수와 그의
가족의 목숨을 위태롭게 만든다. 그는 벌초용으로 구입한 낫을 휘드르며 산서
주민들의 추격을 뿌리치던 끝에 최씨 일가의 제실로 가족과 함께 피신하는 신세가
된다. 산서면으로 오는 버스 ds에서 우연히 만났다가 친해진 젊은 여성 최미금의
도움으로 간신히 위기를 넘긴 그는 날이 맑으면서 그녀의 오빠인 최부용의 중재를
받게 된다. 이처럼 귀수라는 평범한 도시인이 아버지의 고향에 내려가 처하게
되는 곤경이 우리에게 암시하는 것은 6·25를 겪으면서 민족이 경험한 분열과
상잔의 유산이 여전히 민족의 현재를 구속하며 정직한 대면을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작중에서 6·25의 비극은 도시문명이라는 살므이 표면 아래 깊숙이
숨어 개인들의 역사적 신원을 둘러싸고 있으면서, 언제든 표면을 뚫고 나와
재연될 무서운 폭발성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것은 개인에게나 민족
전체에게나 인정하기 부끄러운 유산이지만 그것을 망각하고서는 민족의 진정한
존립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낫』의 배면에 깔린 민족 현실에 대한 인식의 핵심이다.
빨치산 아버지에 대한 이해와 용서
윤홍길은 평범한 인물 귀수에게 아직도
종식되지 않은 역사적 진실과 대면케 함으로써 고통스러운 내면적 갈등 끝에
포용과 이해, 용서를 터득하게 한다. 그것은 6·25의 비극을 청산하고 민족
내부의 화해를 이룩할 가능성이 무엇인가에 대한 작가 나름의 탐구의 열매이다.
작중에서 문족 화해의 정신은 누구보다도
최부용일는 인물을 통하여 표현되고 있다. 산서 마을의 악덕 대지주였던 최명길의
아들이며 지금은 마을의 정신적 지도자로 추앙을 받는 교장선생인 그는 6·25를
전후하여 산서면이 좌우익 갈 등에 휩싸였을 무렵, 그의 가족을 포함한 수많은
인명을 앗아간 재앙에 대한 책임이 그의 아버지에게 있음을 통감하고 전쟁이
끝나자 자기 몫의 재산을 모두 육영사업에 바쳤고, 아벚가 죽은 이후에는 스스로
토지개혁을 단행했다. 최교장의 이러한 휴머니즘은 배낙철에 대해서도 인간적인
해석을 낳는다. 즉, 식민지시대부터 사회주의 활동을 한 배낙철의 ?억 속에는
마르크스-레닌주의 이념의 노예가 되어버린 한 청년의 전율적인 광기가 서려
있는데, 그 광기는 비범한 재능과 정열을 지녔으나 민족 전체의 불행으로 말미암아
심각하게 훼손된 젊은 영혼의 절규이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최교장은 배낙철의
광기와 만행을 불행한 민족의 개인이라면 누구나 불가피하게 겪게 마련인 인간적
파탄으로 이해한다. 산서 주민들에게 씻기 힘든 원한을 남긴 가해자를 이렇게
비애의 역사를 살아온 민족 공통의 피해자로 파악하는 탈이념적 휴머니즘은
『낫』애서 구상되고 있는 민족적 화해의 중요한 정신적 지표가 된다.
농촌 -민족 분열의 상처를 치유하는
장소
『낫』의 배경이 되는 농촌은 과거의
망령들이 여전히 현재의 삶을 속박하고 있는 곳이며, 역사 속에 맺힌 원한이
지금도 생생히 남아 보복의 욕망을 기르고 있는 곳이다. 가뭄에 찌들어 갈라진
산서면 농토는 비극적인 과거의유산을 짊어지고 분열의 고통을 당하고 있는
민족의 척박한 삶을 단적으로 환기시킨다. 나아가, 그 농촌사회는 민족 분열의
상처를 스스로 치유할 잠재적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낫으로
표상되는 민족의 농민적 심성의 회복이 결국은 화해의 성취로 이어지리라는
전망이다. 이것은 도덕적 문화적 중심에 대한 새로운 인준을 통하여 스스로
질서를 유지하는 유기적 공동체의 이미지를 민족에게 부여한다.
우리 분단문학의 경지, 윤흥길이 필생에
꼭 써야 했던 그 소설!
『장마』등 일련의 분단문학으로 우리
소설사에 확고하고도 명료한 지평을 확보하고 있는 윤홍길에게 장편소설 『낫』은
일생 동안 꼭 서야만 될 작품이었다. 그러므로 화해와 용서의 큰 장(場)을 마련한
이 작품은 유기적이며 자율적인 공동체의 이미지로, 민족 분단의 극복이라는
동기 부여와 함께 한국 소설이 지금까지 만들어낸 민족의 상상적 이미지들의
집합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