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정한 작가정신으로 한국소설의 지평을 넓혀가는 최인석 장편소설 출간
인간 존재의 심연을 포착하는 강렬한 주제의식과 모국어의 상상공간을 한껏 확장시킨 풍성한 서사력으로 한국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온 작가 최인석의 다섯번째 장편소설 『아름다운 나의 귀신』이 출간되었다. 작가 최인석의 작가적 아이덴티티인 탄탄한 서사 구성능력과 진지한 문제의식, 그리고 새로운 소설 언어에 도전하는 강렬한 작가정신은 이번 작품에서 한 절정을 맞고 있다.
최인석의 신작 장편은 90년대의 소설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다. 가벼움, 내면화, 사인화(私人化), 여성성, 소설가 소설, 후일담 소설 등으로 대표되는 90년대적 경향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소설문법을 축조해온 최인석은 이번 소설집에서 새로운 변신을 시도한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몽환적 분위기로 생의 극지로 몰려가 있는 뿌리뽑힌 존재들을 생생하게 묘파해내는 최인석의 새로운 소설 언어는 마술적 리얼리즘이라고 명명해도 전혀 낯설지 않다. 민둥산 달동네로 표상되는 황폐한 삶의 현장은 몽환적 이미지에 의해 표백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신랄하게 되살아나면서 역동적 상상력의 위력을 펼쳐나간다. 최인석은 연작장편 『아름다운 나의 귀신』에서 90년대 한국소설의 한 흐름을 형성하면서 한국문학의 미래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피폐한 현실과 역설적 환상 세계의 절묘한 조화로 이루어낸 마술적 사실주의!
『아름다운 나의 귀신』은 철거 직전의 달동네를 중심으로 네 명의 화자가 펼치는 각기 다른 이야기를 유기적으로 연결시킨 연작 장편소설이다. 더이상 나빠질 수도, 물러설 수도 없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 피폐하고 잔혹한 삶에 내둘리며 서서히 망가지는 삶들이 사는 저주받은 공간. 그곳에서 사람들은 생의 비극적 국면에 몸서리치며 차라리 귀신을 꿈꾼다. 무자비한 철거가 시작된 재개발지구 달동네. 생의 근거와 이유를 지키기 위해 치열하게 맞섰던 달동네 주민들은 무참하게 쓰러지고, 동네는 산산조각난다. 이 참혹한 과정을 서로 다른 네 명의 화자가 각자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이끌어나간다.
「내 사랑 나의 귀신」은 무당 당골네를 사랑하는 어린 ‘나’의 갈망을 주조로 한다. 당골네를 사랑하는 ‘나’는 귀신을 사랑하는 당골네의 사랑을 갈구하며 고통스러워한다. 하지만 ‘나’의 고통은 한켠으로 지옥과 같은 현실을 견디게 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 어린 ‘나’와 성인인 당골네와의 비현실적인 사랑. 그러나 ‘나’에게 그 사랑은 엄연한 현실이고, 희망이다. 당골네가 철거작업을 하는 삽차에 뛰어들어 무참히 뭉개져버리자 ‘나’는 당골네가 사라져버린 이곳이 아닌, 저곳을 꿈꾸며 환상 속으로 빠져든다.
「직녀 내 사랑」의 화자는 젖이 세 개 달린 여자를 그리워하며 양친 살해 혐의로 사형을 언도받은 인물이다. 늘 싸움이나 일삼고 자식에게는 도둑질까지 시켜가며 돈에만 몰두하는 부모를 인정하지 않고 끝내는 살인 충동까지 느끼는 화자에게 세상은 모두 부모와 같은 존재이다. “그 엄청난 식욕으로” 언제 자기를 잡아먹어버릴지 모르는 공포의 대상이자 동시에 혐오의 대상이다. 마침내 그러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수단으로 발현되는 것이 바로 광기이다. 이 광기야말로 주인공이 비극적 현실에 대해 항거하는 최후의 수단이며 절규이다.
「염소 할매」에는 남편을 잃고 난 후 민둥산 달동네에 흘러들어 새 삶을 일구던 여인이 화자로 등장한다. 잔혹한 현실 앞에서 고역을 치를 때마다 그녀 앞에 나타나던 한 마리의 염소는 단순한 염소가 아니다. 그것은 그녀가 잃은 남편이며, 그녀가 꿈꾸던 이상의 세계를 안내하는 전령이다. “양 같은 범이 놀고 범 같은 양이 노는 곳, 금 같은 돌이 있고 돌 같은 금이 있는 곳, 꽃 같은 비가 내리고 비 같은 꽃이 피어나는 곳, 별 같은 노래가 사시사철 흘러넘치고, 노래 같은 별들이 하늘 가득 빛나는 곳, 들 같은 집이 있고 집 같은 들이 펼쳐진 곳, 그곳이 그 너머 어딘가에 보이는 것 같았다. 나는 그곳을 향해 염소 뿔을 움켜쥐고, 염소떼와 염소 할배와 도깨비 선생과 이웃들과 함께 그곳으로 휘몰아갔다”와 같은 장면은 작가가 그려내고자 했던 환상 세계에 대한 묘사가 극대화되어 있는 곳이다.
「내 사랑 나의 암놈」은 “나는 잘못 태어났다”고 절규하는 기형아 솔개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태어나면서부터 현실과 극단적으로 불화하기 시작한 그는 자신이 속해야 할 세계는 눈앞에 보이는 현실이 아니므로, 현실의 모든 것이 대수롭지 않다. 그에게는 다만 속히 이곳에서의 삶을 마감하고 저곳,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야 하는 절박함만이 꿈틀거리고 있을 뿐이다.
환멸을 견디며 피워올린 폭죽 같은 상상력!
『아름다운 나의 귀신』은 환멸을 끌어안고 마침내 그것을 극복하는 새로운 처방전이다. 밑바닥 삶에 대한 작가의 시선은 적대적이거나 호의적이지 않다. 내일이 없는 곳, 내일이 없어서 믿음이나 희망이 없는 곳. ‘귀신’을 꿈꾸지 않고는 견뎌낼 수 없는 ‘게토’. 하지만 이 절망적인 현실에 대해 작가는 성급한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왜곡이며 어설픈 낭만에 불과하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대신에 작가 최인석은 그 자리에 몽환적인 환상 세계를 슬쩍 갖다놓는다. 바로 이 지점에서 최인석은 인간과 현실에 대한 긴장력을 잃어버린 리얼리즘과 결별하고, 최인석 특유의 소설미학을 탄생시키고 있다.
절망스러운 현실에 대한 환멸과 역설적 환상이 절묘하게 결합된 최인석의 소설은 비극적인 세계 인식을 효과적으로 부각시킨다. 이에 대하여 문학평론가 장경렬씨는 “정녕코 우리의 현대문학사에서 찾아보기 힘든” 것이며 “환상적 요소가 환상적 요소로 느껴지지 않을 만큼 환상과 현실의 결합이 매끄럽다는 점에서, 남미의 마술적 현실주의를 떠올리게 한다”고 평하고 있다. 또한 문학평론가 강진호씨는 “최인석이 극단의 절망을 통해 참된 희망을 얻고자 하는 문학을 계속한다면, 언젠가는 한국문학이 아직 닿아보지 못한 어떤 미답의 지점에 도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