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편짓글들은 내밀함을 통해 따뜻한 인간애를,
비판적 지식인의 세상읽기를 통해 삶을 해석하는 지혜를 우리에게 전해준다.
문학저널리스트이자 소설가 고종석의 산문집 『고종석의 유럽통신』은 파리에 체류하며 고국 등의 여러 친지들에게 띄운 편짓글을 모든 것이다. 비판적 지식인의 세상읽기라고 할 수 있는 이 산문집은, 논리정연한 주장과 명석한 분석력으로 독자들로 하여금 작가의 논리 속으로 빨려들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작가와 친밀한 관계에 있는 수신자가 있고, 아울러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들을 향해 열려 있는 형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편짓글이 가즌? 사적인 내밀함과 한 지식인이 세계에 대해 펼치는 사색과 비판을 더불어 맛볼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산문집만이 가지는 매력이다.
고종석은 1959년 서울에서 태어난 성균관대학교에서 법학을, 서울대학교 대학원과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학교에서 언어학을 공부했다. 코리아타임스와 한겨레신문 기자로 일했고, 지금은 파리에서 프리랜스 기자로 일하고 있다. 한편 지난 1992년 장편소설 『기자들』을 출간하여 소설가로도 등장한 그는 지난해 단편 「제망매」를 발표하면서 소설적 역량을 인정받기도 하였다.
이 산문집에는 세계의 사회적 동향, 민족과 인종과 정치, 혹은 언어와 문화에 대한 작가의 깊이 있는 사색이 담겨 있다. 파리의 5월 혁명 기념축제를 목격하면서 광주의 5월을 생각하기도 하고(「파리의 5월, 광주의 5월」), 처음으로 치러진 남아프리카의 다인종 보통선거를 지켜보며 인종문제와 종교분쟁에 대한 작가의 견해(「불순함에 대한 옹호」)를 보여주기도 하는 등 다양한 사객의 편린들이 책 한 권 가득 담겨있다.
일본의 저널리스트 시노부에게 쓴 편지 「노벨문학상에 대한 단상」에서는 오에 겐자부로가 받은 노벨문학상에 대한 저널리?다운 격려와 염려, 문학의 미래에 대한 냉철한 예감을 피력하고 있다.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를 불어로 읽으면서 쓴 「생텍쥐페리, 행동으로 나아가는 페시미즘」이란 편지도 생텍쥐페리의 정치적 입장과 행동주의의 속성을 통해 작가가 생각?는 지식인의 초상을 엿볼 수 있게 한다. 고종석이 만든 사색의 강가에는 누구도 단숨에 부인할 수 없는 인류의 해묵은 지혜들이 조약돌처럼 모여 있다. 또한, 사회를 바라보는 정직한 시각, 따뜻한 인간애가 빚어낸 양식(良識)들이 징검다리처럼 놓여 있다.
우리는 세상에 대한 깊고 따뜻한 정이 유유히 흐르는 이 사유의 강가에서 동시대에 대한 정통적인 시각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