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라투스트라의 사랑연적」 김영현의 시소설 「짜라투스트라의 사랑-연적」이 출간되 었다. 첫 소설집 「깊은 강은 멀리 흐른다」 이후 ‘김영현 논쟁’을 불러일으키며 세칭 “80년대의 뜨거운 상징”으로 떠올랐던 그의 문학적 이력을 아는 사람이라면 고개를 갸웃거릴 수도 있는 이 작품은 헤겔철학과 사회과학이 풍미했던 80년대에는 드러낼 수 없었던 김영현의 낭만주의, 허무주의, 인간 실존에 대한 철학적 고민을 담고 있다. 이 작품 이후 김영현은 아마도 많이 자유 로워질 것 같다.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을 위해서 집필을 시작했을 이 작품을 출간하면서 그가 꿈꾸는 것이 ‘자유로운 상상력의 복원’ 그것 아닐까, 추측해본다.
「짜라투스트라의 사랑」에서 작가는 시, 소설이라는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자신의 사유를 펼쳐 보인다. 엘리어트의 황무지를 비롯 백석의 시에 이르기까지 고금의 명시들과 성철스님의 열반게와 성경, 희랍신화 등 방대한 독서량을 동원하여 철학과 출신 작가로서의 사유의 깊이를 마음껏 드러낸 작품이라 할 만하다. 서양화가 윤금숙씨가 이 작품을 10여 차례에 걸쳐 정 독하며 그려준 15여 컷의 그림도 크게 상승작용을 하고 있다.
노철학자의 애증과 파멸
「짜라투스트라의 사랑」은, 작가인 ‘나’가 청계천 헌책방에서 우연히 한 권의 소설책과 시집을 발견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 소설책과 시집 안에 스민 노철학자의 회한에 찬 삶이 작품 안에 액자 소설의 형식으로 담겨진다. 작품은 모두 네 개의 장으로 나뉘어져 있다. 1장 어둠의 노래에서는 사랑하는 아내를 젊은이에게 빼앗긴 늙은 철학자 짜라투스트라가 노여움에서 슬픔으로, 슬픔에서 다시 체념으로 옮아가는 감정의 단계가 차곡차곡 드러난다.
2장 청춘의 노래와 3장 사랑의 노래는 그가 지상에서의 마지막 밤을 각오하며 삶을 정리하듯 써내려가는 시들이다. 그는, 마치 태양을 향해 걸어가는 짜라투스트라처럼 당당했던 젊음을 회고하면서, 존경받는 현재의 자신 뒤에는, 열정과 오만에 가득 차 자 신을 향한 사랑을 잔인하게 저버렸던 어리석은 청춘이, 방황의 세월이 있었음을 고백한다. 모든 것을 버리고 젊음을 바쳐 진리와 지식을 갈구했고, 그로써 지위와 명예를 얻은 그도 그러나 한 여인을 향한 사랑만큼은 주체하지 못한다. 그러나 “시간이야말로 모든 존재의 무덤”, 지금은 그의 때가 아니고 그에게 남겨진 것은 다만 죽음의 노래일 뿐이다.
4장에 이르러 그는 아주 잠깐, 혼자 가야 할 죽음의 끝 모를 심연 앞에서 사무치는 외로움을 털어놓지만, “불을 훔치듯 아름 다운 그대의 한때를 훔쳤노라”는 마지막 사랑의 말에는 이미 어떤 욕망도 아쉬움도 남지 않은 그의 달관이 스며 있다.
이렇듯이 스스로를 짜라투스트라라 명명한 한 노철학자의 애증과 파멸이라는 격렬한 스토리의 이면에는, ‘존재하는 모든 것의 생성과 소멸의 순간’을 포착하려는 작가의 시선이 집요하게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