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깎이 신진 시인 안찬수(본명 安度泫, 32세)의 첫시집『아름다운 지옥』이 출간되었다. 1964년 경남 창원에서 태어나 서울대 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1995년 계간지『문학동네』봄호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한 안찬수는 데뷔 전에도 ㄱ 라기(서울대 국문과 동인지)를 통해 활발하게 창작활동을 하였고, 선배시인들로부터 많은 기대를 모아왔다. 따라서 이번 첫시집 은 신진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충분한 수련을 거친 노련미와 삶에 대한 깊이 있는 탐색을 담고 있어 오래 무르익은 탄탄함을 보여 주는 시편들로 가득차 있다. 그래서 등단한 지 1년도 채 안돼 첫시집을 세상에 내놓음이 전혀 성급하게 보이지 않는다.
치열한 정신이 토해내는 한숨과 눈물과 싸움
지나간 연대를 순정을 바치듯 노래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존재의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는, 그 자신을 키 우고 먹여 살린 지난 청춘의 온갖 앙금들은 과거의 것으로서만 무화될 수 없는 절실함을 개인에게 강요하기 마련이다. 그를 지금 까지 밀어올린 과거의 것들은 현재에도 생생히 그의 영혼 속에 각인되어 있을 수 밖에 없고, 따라서 과거의 것들에 대한 애정과 후회와 안타까움과 미움이 현재의 삶 속에 반성과 동정과 절망과 분노로 형체를 드러냄은 어쩔 수 없는 인간 정신의 한계이자 본 질인 것이다.
야만과 폭압의 연대인 80년대를 살아온 60년대産 안찬수의 첫시집『아름다운 지옥』에는 고단한 시대를 견뎌온 한 젊은이의 치열한 정신이 토해내는 한숨과 눈물과 싸움의 흔적들이 진하게 배어 있다. 이미 무수한 함성과 비명을 바람 속에 날려버리고 한 갖 회상의 딱딱한 자국으로만 내몰린 90년대 속의 80년대. 그 연대를 반성과 회한과 분노로 청춘을 살았던 시인에게 90년대의 문 학적 진정성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 것인가? 안찬수의 시편들은 80년대의 상흔들을 가슴에 묻고 지금/여기서 어떠한 현실긍정 적 힘을 찾아낼 것인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혹독한 반성과 매운 풍자, 그리고 현실긍정
이제는 희망과 사랑을 노래하기 위하여, 그가 우선 취하는 태도는 삶에 대한 혹독한 반성이다. 그의 반성의 폭은 상당히 넓은 망을 형성하고 있는데, 「아지랑이」에서는 형편없이 뒤틀린 이 시대에 그리움의 노래가 정당한가라고 묻고, 「마침내」에서는 나도 발자국이 될 수 있을까라고 읊으며 자기 정체성에 대한 회의를 품는다. 또한 그대가 쓰는 시는 총알인가 열정인가 혁명 인가(「불꽃」)라며 내가 쓰는 시는 무엇인지 궁극적 반문으로 나아가고, 「꽃」에서는 자연, 세상, 역사와 나와의 심각한 거 리-무관함의 반성적 사유를 보여준다. 이처럼 안찬수의 반성적 태도는 전방위적인데, 그것은 멀리서 반짝이는 불빛 하나도 삶의 고투(「불꽃」)였던 시대를 살아왔으나 진정 타오르는 불꽃이 되지 못했던 자신에 대한 자괴감이 반성의 뿌리가 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반성이 혹독하면 할수록 현실과의 밀착지점은 당겨져오기 마련이다. 현실이 턱밑까지 다가올 때 현실을 해독하고 현실 속으로 잠입해 들어가는 방법이 필요해진다. 안찬수가 구사하는 시적 방법은 단연 풍자이다. 문학평론가 이명찬의 지적대로 그의 풍자 는 서슬 퍼렇던 세월의 심장을 향해, 외로이 그러나 강팍하게 날아가는 돌멩이의 매운 맛이 있다. 자기검열의 철저함을 체득하지 않고서는 풍자란 한낱 어설픈 유희에 그치기 쉬운 법이다. 자신의 내부로부터 쏟아져나오는 엄격한 출혈을 통해 현실의 내장 속 으로 깊숙이 들어가기 위한 날카로운 풍자, 안찬수의 시는 바로 그러한 풍자의 묘미를 보여준다.「是非是非」,「딱딱한 구름」, 「얄리 얄리 얄라성 얄라리 얄라」,「청산별곡」,「毒氣」,「비유」등의 시들은 청춘을 살았던 연대의 쓰라린 현실을 비틀고 조 롱하고 그러면서 끌어안는 풍자의 소산이다.
풍자란 적을 찌르는 칼로서뿐만 아니라 왜곡된 현실 안에서 앞날의 새 희망을 측정하는 계기판으로서의 기능을 지니지 않으면 온전할 수 없다. 표제작「아름다운 지옥」은 반성하거나 부정하기만 하는 태도를 극복하고 우리가 낙원을 향해 새출발할 곳은 지금/여기뿐이라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풍자하면서 현실에 내재된 긍정적 힘을 진지하게 탐색한 작품으로 주목할 만하다.
이렇듯 시인은 지옥에서도 낙원을 꿈꾸는 힘을 원한다. 그러기에 아무것도 헛된 것은 없었다고/뼈아픈 시련과 좌절의 세월도 /이 날을 위해 꼬옥 필요했었다고/누군가 노래 불러줄 날은 오리니(「꽃자리」) 하고, 차라리 미워할 자들의 얼굴도/노래, 노 래 불러 사랑(「혹 그대는 노래를 부르는가」)하고자 하며, 분노의 씨앗은/껍질이 단단하다/분노는 사랑과 부딪치며/절망은 희 망과 부딪쳐/더 깊은 사랑과 더 넓은 희망이/싹터온다(「보리밭에서」)라며 분노와 절망 속에서도 더 큰 사랑과 희망을 노래한 다. 그리하여 "누구보다도 끔찍하게 덧난 상처를 사랑하고 있는"(「自序」에서) 시인은 이제 그대를, 그리고 그대의 하늘을 "진정 사랑할 수 있도록" 뻑뻑했던 삶으로부터 솟구쳐오르는 현실긍정적 힘을 탐색하는 것으로 나아간다. 이런 점에서 특별한 기교를 부리지 않은 평이한 시「진정 사랑할 수 있도록」은 시인이 희망하는 이 시대의 진정한 連帶는 무엇이며 그의 문학적 진정성이 어디에 있는지를 엿보게 하는 작품이다. 이처럼 신진 시인 안찬수의 시는 머리칼 쥐어뜯으며 골방에서 신 음하던 80년대의 어둠에 고여 있지 않고 힘차게 흐르는 강줄기처럼 90년대로 뻗어나가고 있다.
수직 상승의 이미지와 솟구치는 힘
80년대를 지나 이제 90년대의 한가운데에 서서 그가 "솟구치는 힘"으로서 거머쥐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수직과 상승의 이미지가 아닌가 싶다. 그의 시집 중 많은 시들이 나무, 꽃, 구름, 하늘 등을 다루고 있음을 볼 때, 그는 현실 을 정면으로 돌파하는 방법보다 자연과 사물에 일체화됨으로써 보다 강렬한 생명의 호흡을 체감하고자 한다. 태를 부리지 않으 면서 은은히 드러나는 그의 자연시편들은 나무와 산이라는 직립의 이미지를 빌어와 성찰과 실천을, 움직임과 멈춤을, 서양적 외 연과 동양적 내연을 시적 형상화로 감싸안고 있다. 수직과 상승의 이미지는 시인이 현실과 역사에 대해 새로운 시적 해석을 부여 한 것으로 앞서 언급한 현실에 내재한 긍정적 힘에 대한 탐색이 한 단계 승화되어 의미화한 것으로 보인다. ㅅ의 솟구치는 音 相을 통해 상승의 이미지를 빼어나게 나타내고 있는 시「산」을 보면 그의 감각의 섬세함과 인식의 깊이를 잘 느낄 수 있다.
자라나는 산/움직이는/산//사람의 산/살아 있는 사람들의 산/살아 있는 사람들이 이루다 못 이 루고/또다시 이루려/살아서 움직이는/산
-「산」중에서
이 시는 움직임을 숨기고 있는 듯 보이나 끊임없이 움직임을 갈구하는 산의 이미지가 종국에는 사람들이 모여 이루는 삶과 역 사의 의미로 전이되면서, 시인의 사람들에 대한 진중한 신념의 뿌리가 얼마나 깊은지, 새롭게 도약하는 역사의 동력에 대한 믿음 이 얼마나 강한지를 요란스럽지 않으나 절절하게 보여주고 있다. 시인은 파편화된 80년대의 흔적들이 여전히 자신 안에서 맥박처 럼 쉼없이 뛰고 있음을 잊은 적이 없기에 산을 보고서도 솟구침의 갈망과 현실로부터 뻗쳐나가는 힘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그래 서 그의 첫시집『아름다운 지옥』은 시대의 상처와 삶의 고단함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충분한 감동과 위안을 줄 수 있는 시편으로 가득차 있어 기쁘게 읽힌다.
청춘을 살았던 애증의 연대기에 대한 반성적 사유와 지금/여기에 대한 진지한 탐색을 빼어난 시적 형상화를 통해 보여주고 있 는 안찬수의 첫시집『아름다운 지옥』은 우리에게 이 시대의 새로운 희망의 가능성을 찾게 해준다. 이 희망의 가능성은 늦깎이 신진 시인 안찬수의 이후의 행보를 주목하게 만드는 이유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