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마종기다운 시적 개성이 돋보이는 초기 시집
『조용한 개선』은 1960년에 출간된 마종기 시인의 처녀시집『조용한 凱旋』(富民文化社 刊)과 1965년에 500부 한정판으로 출간된 두번째 시집『두번째 겨울』(부민문화사 刊)에서 시인이 직접 고르고 다듬은 시들로 구성되어 있다. 화가 장욱진 선생의 아름다운 펜화가 덧붙여진(재출간 시집에서도 그대로 살렸다) 첫시집『조용한 凱旋』은 故 박두진 시인이 서문에서 밝혔듯 "천성(天性)의 시인적 자질을 타고난" 마종기 시인의 "가녀린 서정의 울음과 감미로운 시적 서정이 일체의 존재의 가혹한 깊이 그 심저부(深底部)의 정적을 두들겨 울리는" 시편들로 묶여 있다. 또한 아버님 회갑을 기념하여 출간된 두번째 시집『두번째 겨울』은「後記」에서 보듯 시 한 편이 하나의 영상적 주제를 음악이나 회화가 가지는 효과 이상의 것을 노리고 또 그 영상을 오래 지속시키려 애쓴 시인의 흔적이 역력한 시집이다. 그러므로 20여 년 만에 다시금 독자 앞에 선보이게 되는 마종기 시인의 초기시를 모은『조용한 개선』은 문학과 삶에 관해 순정을 잃지 않았던 시인의 젊은날의 가장 그다운 시적 개성이 특히 돋보이는 시집이라 하겠다.
탁월한 기질적 시인의 깊고 따스한 가슴과 삶에 대한 천부적 달관의 지혜
시집『조용한 개선』에서 우리가 만나는 것은 영원한 문학청년 마종기 시인의 깊고 따스한 가슴과 삶에 대한 천부적 달관의 지혜이다. 이십대에 이미 시란 흥분과 두려움 같은 원초적 감정을 누르는, 절제된 한 정신임을 체득한 시인은 이 시집에서 감정을 감정적으로 전달하지 않는 절제와 긴장, 묘사와 인식이라는 시적 진실을 유감 없이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그의 젊은날의 시들은 지극히 청결하고 아름답다. 그 아름다움과 청결함이 세상을 향한 시인의 지순한 사랑과 맞닿아 있어 20대 청년시절에 그가 이미 삶의 진리를 터득하고, 어떤 달관의 경지에 들어서 있었음을 체감하게 한다.
젊은 시절 마종기 시인의 시에는 유독 죽음과 관련된 작품들이 많다. 주검을 다루는 의사로서의 경험과 무관하지 않겠지만 오히려 삶과 죽음에 대한 그만의 독특하고 뛰어난 인식이 그의 젊은날 시의 중요한 뼈대를 이루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임종」,「비망록1」,「세 개의 인상」,「해부학 교실2」등 그의 시 도처에 편재하고 있는 죽음의 얼굴은 참으로 예사롭지 않다. 그에게 죽음은 더이상 공포도 불안도 충격도 소멸도 종말도 아닌 듯하다. 그것은 죽음과 삶을 함께 아우르는, 죽음을 껴안고 넘어서는 초월적 사랑 바로 그것이다. 탁월한 기질적 시인으로 평가받는 마종기 시인의, 죽음을 노래하되 죽음을 넘어설 줄 아는 인식의 깊이는 특유의 해맑은 시적 향취와 단정한 시어와 어울려 청순한 시의 개선(凱旋)을 보여주고 있다.
청결한 시인의 아름다운 발자국을 확인하는 즐거움
30년째 미국에 거주하면서도 거의 5년 간격으로 꾸준히 시집을 내고 있는 마종기 시인의 초기 시들을 묶은『조용한 개선』은 잔잔하고 부드러운 감성, 소년 같은 소박한 시심과 더불어 정밀한 시적 구성, 내밀한 인식의 탁월함으로 하여 마종기 시인의 시적 자질과 역량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시집이다. 20여 년이 지나 다시 만나게 되는 마종기 시인의 젊은날의 시편들을 통해 동심처럼 순수하고 청결한 시인의 지나온 발자국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확인하는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