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군의 젊은 작가들과 함께 탈현대적 소설 미학의 새로운 징후를 뚜렷이 보여주고 있는 여성작가 송경아의 세번째 소설집 『엘리베이터』가 출간되었다.
송경아의 소설은 극도로 확장된 상상력을 현실 바깥으로 자유롭게 이동하면서 비현실적인 몽환의 세계를 분방하게 펼쳐 보이는 것으로 특징지워진다. 현실에서 환상으로, 환상에서 현실로의 그와 같은 자유로운 이동은 황폐한 현실 문명 저 너머로의 숨가쁜 탈주를 꿈꾸는 현대인의 상상과 모험을 표상하는 것이다. 현실의 날줄과 환상의 씨줄을 함께 짜 그만의 독특한 소설세계를 구성하는 특별한 힘이 송경아의 소설에는 있다. 이러한 특징은 보르헤스의 환상소설을 떠올리게 하고 그와 동년배의 작가들인 배수아, 백민석, 김영하 등과도 일정한 거리를 두게 한다.
이번 소설집 『엘리베이터』는 앞서는 두 권의 소설집에서 보여준 송경아의 탈현대적 소설 미학의 가능성을 한결 뚜렷이 보여줄 뿐만 아니라 한국 근대문학의 지형도에 자신만의 독특하고 새로운 영역을 아로새기는 주목할 만한 점들을 다수 포함하고 있다. 있을 법하지만 쉽사리 일어날 수 없는 예외적 사건을 날카롭게 포착하는 특유의 상상력도 놀랍지만, 한국문학의 미래를 논할 때 그를 주목해야 하는 더욱 중요한 이유는, 현실에서 일어날 법하지 않은 것을 상상함으로써 현실의 윤곽선을 급격하게 일그러뜨리는 그의 소설이 리얼리즘이 압도해온 우리 소설사에 중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현실 바깥으로의 탈주를 꿈꾸는 상상력의 무한 팽창
송경아의 소설은 대체로 구체적 경험보다는 우연적이고 일시적인 삶의 정황에서 오는 느낌과 이미지로 전개된다. 이성이나 현실 논리로는 포착되지 않는 비현실적인 이미지가 지배하는 그의 소설은 현실 궤도를 이탈하면서 무한히 팽창하는 그만의 독특한 상상력에서 기인한다. 새벽 조깅중에 하얀 강보에 싸인 채 가로수 밑에 버려져 있는 한 마리의 새끼 호랑이(「호랑이」), 어느 날 벼락을 맞아 투명인간이 돼버린 김의관(「투명인간」) 따위의 설정은 송경아식 상상력의 한 극단을 보여준다.
이렇듯 극단적으로 비현실적인 상상의 세계는 어디서 연유하는 것일까. 존재의 가장 가까운 곳―근처(近處)에 일상을 장악하는 두려움의 실체가 있다는 묵직한 주제를 전하고 있는 소설 「가까운 곳(近處)」에 그 실마리가 있다. “망설임과 공포, 해롭고 잔인하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마주치리라는 예감의 현기증” “일상에서 완전히 동떨어진 늪, 단조롭고 안전한 생활을 완전히 파괴해버릴 수 있는 거대한 균열” “어두운 죽음과 진홍빛 관능, 나무문 뒤에서 키득거리는 그 세계가 모든 사람의 근처에 그다지도 가깝게 매달려 있다는 사실이 내포하는 음험한 심연”. 일상으로부터 솟구쳐나오는 근원 없는 공포, 바로 그것이다. 단조롭고 안전한 일상을 단번에 파괴해버릴 수 있는 공포가 삶에는 항시 내장돼 있다는 “두려움”이 송경아로 하여금 현실 자체를 그토록 비틀게 만드는 것이다. 삶에는 항상 다룰 수 없는 부분―위태위태한 균열과 틈새가 존재하고, 들여다보기 끔찍한 이면이 있게 마련이기 때문에 존재는 누구나 옆구리에 커다란 구멍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처절한 인식이 송경아의 소설을 지배한다.
말해질 수 없는 삶의 경계선에 대한 진지한 탐색
송경아의 소설은 말해질 수 없는 삶의 경계선에 대한 진지한 탐색에 의해 더욱 강력한 위력을 발휘한다. 그의 소설에서 삶을 의미짓는 일체의 경계는 여지없이 허물어진다. 그는 경계를 허물고 비현실적 몽환의 세계로 급격히 빨려들어간다. 열세 편의 단편을 수록하고 있는 이 소설집에서 「정열」과 「이학기」를 제외한 전 작품이 현실 감각을 이탈하는 있을 법하지 않은 세계를 다루고 있다.
「호랑이」의 화자는 어느 날 조깅중에 호랑이 새끼를 주워와 같이 살고 있으며, 「작은 토끼야 들어와 편히 쉬어라」에서는 UFO의 보이지 않는 암시에 따라 아이들이 부모들을 십자가에 매달아 죽이고, 「우리 세계의 ‘아니’」에는 창조주인 신과 그의 딸이 등장하며, ‘죽어야 할 운명을 상기하라’라는 의미의 「메멘토 모리」에는 사신(死神)이 나오고, 「투명인간」에는 벼락에 맞은 후 머릿속의 생각을 타인이 읽을 수 있게 된 이상한 남자가 등장한다.
한편 ‘바리’ 연작을 비롯한 일련의 단편들은 현대 사회와 문명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담고 있는데, 이 또한 자유로운 상상의 모험이라는 송경아의 글쓰기 전략의 일환이다. 세 편으로 구성된 ‘바리’ 연작은 바리공주 이야기를 패러디해서 멸망해가는 현대 문명을 헤집고 있으며, 독특한 스타일의 소설 「집」에서는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은 전쟁이 진행되고 있는 바깥세계와 정체성을 상실한 남장(男裝), 여장(女裝)의 인물들을 통해 현대 문명에 대한 비관적 인식을 첨예하게 보여준다.
자유로운 상상의 모험―현대 문명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
그러나 단연 압권은 표제작인 「엘리베이터」이다. 충격적인 묘사와 대사로 일관하고 있는 이 작품은 엘리베이터라는 폐쇄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추악한 욕망의 다양한 양태들을 조금의 탈색 없이 적나라하게 그려 보이고 있다. 한 쌍의 연인들이 남이 보든 말든 노골적인 섹스를 즐기는가 하면, 젊은 회사원은 엘리베이터 걸 뒤에서 성기를 비비며 허리운동을 하고, 그것을 지켜보던 노인은 안주로 삼기 위해 개를 구워 먹고, 화장한 여자를 꼬셔 옷을 벗기는 데 성공한 소설가는 고자임이 탄로나 뺨을 맞는다. 엘리베이터 안은 추악한 욕망과 극악한 추태로 휩싸여 있다. “엘리베이터 안은 분리된 공간이고, 그 분리된 공간 안에서 시간은 유리된 채 흘러가고 있다. 그렇다면,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세상에서 일어날 만한 모든 일들이”라는 말처럼 이 소설은 엘리베이터라는 제한된 공간 안에 현대 사회의 온갖 환멸스러운 모습들을 다 모아놓고 있다. 소설이 진행되는 틈틈이 보여지는 “엘리베이터는 내려가고 있다”라는 진술은 엘리베이터의 하강과 타락에 빠진 현대인의 추락을 병치하면서 그로테스크한 장면을 연출한다.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상품화된 욕망의 노예로 전락한 Ç測育括Ç 초상을 충격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소설이 아닐 수 없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무너뜨리면서 상상력을 극단으로 밀고가는 송경아의 소설은, 새로운 세대의 소설을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위치를 점한다. 왜냐하면 그의 소설에서 보여지는 몽환의 세계가 앞선 세대의 작가들과 달리 순전히 상상력에 의존해서 씌어지고 있기 때문이며, 또한 종교와 신화의 세계로까지 월경(越境)하면서 그가 제기하는 문명 비판의 메시지는 동년배 작가들과도 구별되는 그만의 뚜렷한 특징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