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를 사랑한 일본의 시인,
나를 풍요롭게 해준 시들
1926년생인 이바라기 노리코는 전후 군국주의에서 민주주의로 이행하던 시기에 청춘을 보냈다. 1976년이던 쉰 살 무렵부터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해 한국 현대시를 일본에 소개했으며, 1991년 『한국현대시선』으로 연구·번역 부문에서 요미우리 문학상을 수상했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로 일본을 대표하는 시인의 반열에 올랐다. 국내에는 『이바라기 노리코 시집』 『처음 가는 마을』 『여자의 말』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이바라기 노리코의 한글로의 여행』 등 그의 시집과 시선집이 여럿 번역돼 있다. 2006년 뇌동맥류파열로 세상을 떠났다.
평생을 시인으로 살았고 다른 이의 시도 수없이 읽어왔을 이바라기 노리코가 이 책에 꼽은 시들은 “나를 몇 겹이나 풍요롭게 해준 시들이여 나와라!” 하고 주문을 외자 나온 것들이다. 이 시들을 이모저모 뜯어보고 왜 좋은가를 검증하고, 소중한 것들이 왜 소중한지 정열을 담아 말해보고, 그것이 젊은이들에게 시의 매력을 접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썼다. 대체로 전후戰後의 시로 한정했고, 전쟁 전 시 3편, 외국 시도 2편 실려 있다. 어쩌다보니 시의 나열이 ‘탄생에서 죽음까지’가 되었다. 태어나서(1장), 사랑하고(2장), 사느라 아등바등하다 보니(3장) 고개를 넘어(4장) 이별(5장)에까지 이르게 되는 과정이다.
이바라기 노리코는 이 책에 언급한 시 가운데 당시 함께 활동한 다니카와 슌타로, 요시노 히로시 등의 시를 포함시켰다. 뿐만 아니라 열두 살에 자살해버린 오카 마사후미의 시도 싣는 등 다양한 연령대의 다양한 장르의 시들을 선별해 넣었다. 시인은 자신의 마음을 온전히 이입하고, 자신이 마치 그 상황에 처해 있는 듯이 한 구절씩 읽어내려간다. 그녀가 꼽은 이 시들은 모두 그녀에게 있어 ‘각각의 방식으로 정화장치를 숨기고 있으면서, 슬퍼질 만큼 쾌감을 주는’ 작품들이다.
“어떤 연애시보다도 아름다운 사랑의 시”
다소 재미있는 시가 보인다. 어린 딸과 아버지의 대화다.
(……)
조그마한 유리는 한꺼번에 이런저런 말을 한다
“책 읽어 아빠”
“이 끈 풀어 아빠”
“여기 가위로 잘라 아빠”
계란부침을 뒤집으려
온 신경을 쏟고 있는 참에
허둥대며 유리가 달려온다
“쉬 나와 아빠”
점점 나는 기분이 나빠진다
화학조미료 한 스푼
프라이팬 한 번 흔들고
위스키 한 모금 꿀꺽
점점 조그마한 유리도 기분이 나빠진다
“빨리 여기 자르라고 아빠”
“빨리”
다혈질 아버지가 소리를 지른다
“너가 해 너가”
다혈질 딸이 받아친다
“주정뱅이 느림보 할배”
아버지가 화나 딸의 엉덩이를 때린다
조그마한 유리가 운다
큰 큰 소리로 운다
핵심은 그 뒤 이야기다. 시의 제목이기도 한 이후 ‘해질녘 30분’이다.
그러고 나서
이윽고
고요하고 아름다운 시간이
찾아온다
아버지는 순하고 상냥해진다
조그마한 유리도 순하고 상냥해진다
둘이서 식탁에 마주앉는다 (구로다 사부로, 「해질녘 30분」)
압권은 “주정뱅이 느림보 할배”라는 발랄한 딸의 험담이다. 주정뱅이, 할배 정도는 그렇다 쳐도 부모에게 ‘느림보’라니. 아빠와 딸 사이에 심한 말이 오가고, 서로 기분이 상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 그 분위기는 험악한 것이 아니다. 이바라기 노리코 역시 이후에 찾아오는 시간에 대해 “담백하고 고요하고 후련한 시간”이라 보고, “하고 싶은 말을 서로 한껏 해대고, 아무런 응어리도 남기지 않는 것은 육친이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이 따뜻한 시를 평가한다. 완전히 똑같지는 않겠지만, 누구에게나 이러한 ‘저물녘 30분’이 있을 거라고.
사느라 아등바등,
식민지 시대에 대한 일본인의 부끄러움
언덕 아래에서 비스듬히
이군이 올라왔다
(……)
나는 이군이 좋았다
이군 내가 좋았을까
(……)
냄새 나 냄새 나 조선 냄새 나
나 금방 이군에게서 떨어져서
입 빠끔빠끔거리며 소리치는 척했다
냄새 나 냄새 나 조선 냄새 나
지금 그것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한 접시 500원짜리
한밤중의 만두가게에 달려가서
되도록 꽉꽉 마늘을 채워달라 부탁하여
먹어버리는 것이다
두 접시고 세 접시고
두 접시고 세 접시고! (이와타 히로시, 「주소와 만두」)
이바라기 노리코는 일제강점기 일본이 한 일에 대한 ‘부끄러움’을 이야기한다.
‘나’는 사실 이군을 좋아했지만 ‘조선 냄새가 난다’고 놀리는 아이들 무리에 섞여 입을 빠끔거리며 소리치는 척을 한다. 이러한 기억은 어른이 되고 나서까지 부끄러움으로 남아 만두가게에 달려가 만두를 먹어버리는 행위를 통해 표출된다. 우리나라와 한글에 관심이 있었던 만큼, 이바라기는 당시 일본의 만행을 기록하며, 일본의 만행에 대한 일본인으로서의 부끄러움을 솔직하게 표현한다.
다만 일본인 입장에서는, 예전에 저지른 비인도적인 일에 대한 수많은 자료·통계·논문을 읽는 것보다 이 한 편의 시가 훨씬 마음을 쿡 찌르고, 일본과 한국의 과거에 있었던 불행을 비추어준다고 느낍니다. 아마도 그것은 시인이 제 부끄러움에 대한 통렬한 감각을 숨기지 않았기 때문이겠습니다.
이별, 그리고 죽음에 대한 유쾌한 시선
이별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나카하라 주야의 「양의 노래」를 통해 드러난다. 그의 글 곳곳에서 죽음에 대한 그의 생각을 만날 수 있다. ‘그래, 나는 내가 느낄 수 없었던 까닭에, 벌을 받고, 죽음이 왔다고 생각한다’는 시 구절을 언급하며 “제 사인死因을 미리 이러한 것이라고 파악하고 있다는 사실에, 일종의 두려움마저 느낍니다. 그 날카로운 직관의 힘에”라고 이야기하며 더불어 다음과 같은 아름다운 문장도 남겼다.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발랄하고 충분하게 이 세계를 맛보기 위함이 아닐까요. 천국과 지옥이 함께 있고, 괴기와 환상으로 가득한 이 땅에서.”
사인을 미리 파악하고 있다는 사실에 두려움을 느낀다던 그였지만, 역시 이바라기답게 미리 유서를 남겨두고 세상을 떠났다. 이바라기에게 죽음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었던 듯싶다.
장례식이나 고별식은 일체 하지 않았으면 하는 게 제 뜻입니다. 이 집도 당분간 사람이 없을 터이니, 조위품은 꽃을 포함하여 일체 보내지 말아주시기를. 반송의 무례를 거듭할 뿐이라 생각하므로. “그 사람도 갔구나” 하고 잠깐, 그저 잠깐 생각해주시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향년 80세.
또한 「알람브라 궁전 벽의」라는 기시다 에리코의 짧은 시(알람브라 궁전 벽의/ 엉킨 덩굴풀처럼/ 나는 헤매는 것을 좋아한다/ 출구에서 들어가 입구를 찾는 일도)에서는 죽음에 대한 시인의 독특한 발상이 돋보인다.
또한 ‘입구를 탄생, 출구를 죽음’이라 생각한다면, 시인은 죽음으로부터 거꾸로 삶 쪽으로 나아가는—그러한 제 ‘심술꾸러기’ 짓을 재미있어하는 듯한 구석도 있습니다. 우리는 죽음을 출구라고만 생각하지만 어쩌면 분명 어딘가로 들어가는 입구가 될지도 모르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