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아직도 전쟁 중인가
맛집을 쫓아다니고 몸에 좋다는 음식을 맹목적으로 챙겨먹는 한편, 편의점 도시락과 삼각김밥으로 끼니를 때우는 것, 오늘날 식생활의 전형적인 풍경이다. 현대인들이 의존하는 즉석 레토르트 식품은 ‘조리하지 않아도 되고, 이동이 간편하며, 보존성이 좋다.’ 그런데 이는 전쟁 때의 군대식과 똑같다. 그래서 저자는 묻는다. ‘지금 일본은 전쟁 중인가?’ 계속 간편함만 추구하다보면 신체를 좀먹게 되지 않을까, 라며 저자는 식력食力을 길러보자고 말한다. 하지만 인간이 하루아침에 개과천선할 수는 없는 법. 저자는 일단 편의점 건강식부터 추천한다. 편의점 코너에는 건과일, 다시마, 참깨 등이 있는데 100엔밖에 안 하는 데다 영양까지 챙길 수 있는 식재료다. “양질의 식재료를 구해놓고도 안 먹어 곰팡이가 피는 것보다는 100엔짜리 깨를 사서 열심히 먹는 게 몸에 좋을 겁니다.” 자신의 처지에서 딱 가능한 만큼의 변화만 요구하는 저자의 해결책은 건강한 식생활을 향한 가벼운 첫걸음이 되어준다.
쌀밥과 회, 초밥을 먹는 것이 정통 일식일까
쌀밥을 먹는 건 일본식 식생활이고 빵과 버터를 먹는 건 서구식 식생활일까? 밀가루 분식 요리는 패전 후 미국산 밀가루가 수입된 후에 생겨난 것일까? 저자는 이런 이분법에 반대한다. 오히려 더 주목하는 것은 쌀을 비롯한 먹거리가 부족하던 시절, 갖은 재료로 분식을 만들어 먹었던 서민들의 의지와 힘이다. 패전 후 발간된 요리 잡지를 보면 고구마, 도토리, 뽕잎, 해초류 등으로 가루를 만들어 요리의 재료로 썼다. 그리고 배를 채우기 위해 생각해낸 이런 분식 요리법이 점차 오코노미야키, 다코야키 등으로 발전했다. 저자는 없으면 없는 대로 대체 식품을 먹고, 상황에 맞게 새로운 조리법을 만들며, 수입 음식과 식자재도 입맛대로 변형하는 이런 태도를 무엇보다 높이 산다. 즉 일본인은 오는 요리 막지 않고 가는 요리 붙잡지 않는 사람들이다.
회에 대해서도 다양한 손질법과 조리법을 알려주며 잃어버린 상상력을 회복하라고 주문한다. 회를 일식의 대표 주자라고 치켜세우지만 사실 일본인들은 와사비 푼 간장에 찍어 먹는 것 말고는 회를 알지 못한다. 술과 우메보시를 졸여 만드는 이리자케를 간장 대신 곁들이는 방법, 칼로 두드려 만드는 다다키 요리, 참치살을 토마토소스에 버무려 만드는 퓨전 요리 등 회의 세계는 무궁무진하다. 특히 껍질 표면에 끓는 물을 한번 붓고는 재빨리 찬물에 씻는 ‘마쓰가와즈쿠리’ 방식은 회는 꼭 날것이어야 한다는 편견을 깬다. 이 방법으로 회를 뜨면 껍질이 오독오독 씹히는 식감을 살릴 수 있다.
고래 고기가 전통 요리인지 아닌지, 육식을 시작한 것이 메이지유신 이후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고래가 지금 어떤 환경에 처해 있는지, 흰수염고래의 감소에 대해 어떤 대책을 세워야 하는지, 일본에서 소를 기른 진짜 목적이 무엇이었는지를 살피는 것이 진정한 식문화 교육이라고 말한다. 즉 식재로 뒤에 숨겨진 생존력과 역사, 정치적 감수성을 체내화하는 것으로까지 나아가보자는 것!
자극적인 맛, 자극적인 말을 주의하라
오늘날 음식엔 말이 보태지고 증폭돼 음식은 곧 언어가 되고 있다. 저자는 그러나 중간 단계를 생략한 말, 그래서 현혹되기 쉬운 말을 경계한다. 가령 신토불이가 그렇다. 우리 땅에서 난 것이 우리 몸에 제일 잘 맞는다는 뜻으로 널리 사용되는 이 말은 한국인에게도 아주 익숙하다. 그러나 신토불이가 지금과 같은 의미를 갖게 된 것은 원래 불교 용어였던 것을 1907년경 이시즈카 사겐이 식품영양학에 차용하면서다. 서양 의학과 영양학에 경도되어 있던 메이지 시대, 일본의 전통적인 식생활이 더 좋다고 주장하면서 슬로건으로 내세운 것이다. 그러니 ‘옛날부터 신토불이라고 하여……’라든가 ‘예로부터 먹어온 배추절임과 같은 전통식을 먹읍시다’라는 말은 근거가 부족한 문장이다. 역사적으로 따져보면 배추는 에도 말기에 대륙에서 전해져 메이지 말기에 이르러 널리 먹기 시작했다.
‘~을 먹으면 장수한다’는 말도 마찬가지다. 오래 살고 싶다는 마음에 장수 노인들의 식생활을 조사하고 흉내 내지만, 장수의 조건은 무엇을 먹느냐에 달려 있지 않다. 장수는 유전적인 요소에 식생활을 포함한 여러 생활 습관이 맞물려 이뤄짐이 과학적으로 밝혀졌는데도 ‘뿌리채소를 먹으면 오래 산다’ ‘해조류를 많이 먹어야 한다’는 말을 만들고, 여기에 우르르 휩쓸려간다. 시작은 좋은 의도라 하더라도 이런 작은 부풀림이 거짓된 정보로 널리 퍼지며 사람들을 잘못된 식생활로 이끌 수도 있다. 요리를 할 때처럼, 작은 것도 정확하게 말하고, 안일한 태도로 먹거리를 대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나를 먹이는 힘, 우리를 먹이는 힘
편의점 도시락, 삼각김밥, 샌드위치로 끼니를 때우는 한편, 유명한 식당을 쫓아다니고 몸에 좋다고 소문난 음식을 맹목적으로 챙겨먹는 것, 오늘날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이 양극단 사이를 오가다보면 길을 잃기 쉽다. 곳곳에서 쏟아지는 말, 정보, 광고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무엇을 갖춰야 할까? 바로 식력食力, 먹는 힘이다.
먹는 힘이란 ‘건강을 유지‧향상시키는 식사를 알고 스스로 선택하는 힘, 재료를 직접 조달해서 조리와 가공을 할 수 있는 힘’이다. 그러나 현재 요리 교실들을 보면 레시피를 경험하는 차원에서 그치곤 한다. 저자는 요리 교실은 ‘실연 쇼’에 불과하며 진정으로 요리 기술을 익히려면 몸이 기억할 때까지 반복해야 한다고 말한다. ‘나는 오늘 돈지루 만드는 법을 배웠어!’ ‘나는 이제 스튜를 만들 줄 알아’라는 건 걸려 넘어지기 쉬운 자기기만이다.
어느 때보다 음식이 넘쳐나고 요리 방송이 쏟아지지만 제대로 먹는 힘을 갖춘 사람은 많지 않다. 자기 밥상이 어디까지 추락하고 망가지는지 알아채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그러니 식력을 길러야 한다. ‘어째서?’ ‘왜?’라는 질문을 멈추지 않는 것, 먹는 힘을 몸에 단단히 붙이는 것, 이것이 저자가 말하려는 핵심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