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의 책소개
“더이상 생각을 말아야 해. 집을 짓고 싶다면 말이지.”
‘역사’와 ‘문명’과 ‘목물’에 이은 ‘사람’,
그 사람이란 존재의 그러함을 집요하게 파고든
이야기꾼 김진송만의 몹시도 특별한 소설!
우리 근대현대역사를 공부해온 연구자이자, 나무 작업에 매진해온 목수이자, 간간 특유의 기억과 시각을 예리하게 담아낸 글을 써온 소설가로, 다재한 그만의 이력을 다양한 책 안팎에 뻗쳐온 김진송 작가의 첫 소설집 『그가 홀로 집을 짓기 시작했을 때』를 펴낸다. 장편의 긴 호흡으로는 몇 차례 선을 보인 적 있었으니 단편의 짧은 호흡으로는 처음이라 하겠다.
중편 분량의 「서울 사람들이 죄다 미쳐버렸다는 소문이……」를 포함하여 총 10편의 작품이 실려 있는 이번 소설집은 앞서 그가 발표해온 글들에서처럼 뾰족하고 날카로운 그만의 시선을 기본으로 하되 조금 더 깊고 깊게 내밀해졌다고 해야 할까, 조금 더 넓고 넓게 자유로워졌다고 해야 할까, 읽는 내내 말과 발이 동시에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주는 문체와 사유로 말미암아 그만의 서사에 한층 활달해진 입체성이 더해진 듯도 하다. 특히나 묘하게 중독성 있는 그만의 입말 같은 문장들, 정확한 단문의 묘사로 빠른 전개를 이끌어가는 솜씨가 아주 매서운데 그 덕인지 ‘사람’이라는 본성을 적나라하게 파고들어 내보이는 데 있어 나 지금 핀셋 하나 계속 만지작거리고 있는 건 아닌지 그런 ‘쥠’의 기분을 느끼게도 한다.
무엇보다 소설은 재미가 미는 수레 아니려나. 그 재미에 재미가 더해지면 수레의 무게에도 아랑곳없이, 힘이 든 줄도 모르고 끌고 가지 않겠나. 김진송의 소설은 언뜻 무거운 주제로 내 입에 물린 이것이 딱딱한 나무 조각인가 싶게 처음에는 낯설고 어렵게 다가올 수도 있겠으나 “사물에 대한, 인간에 대한 의심과 회의의 시선을 한 번도 거두어들인 적이 없노라고” “회의와 의심이 그가 살아가는 이유이자 방편이었다”라고 소설 속에서 그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타고난 솔직함을 바탕으로 우리가 평생 고민하고 또 고심하게 되는 주제인 ‘나’를 포함한 ‘사람’의 안팎을 헤집으면서 우리로 하여금 함께 머리 싸매게 하고 우리로 하여금 동시에 수다하게 만든다. 소설 속에서의 ‘이입’이라는 정서는 기실 이 상황에 이 정황에 참견하고 싶어 근질거리는 마음이겠지.
그리하여 김진송의 소설은 부지깽이 같은 게 있다면 그걸로 푹푹 제 걸음 속에 의심나는 그 무엇인가를 계속 찌르면서 걷게 하는 ‘뒤돌아봄’을 연거푸 반복하게 하는데, 그 행위로 보자면 정도라는 어떤 균형, 정확이라는 어떤 옳음을 제 살아감의 중심에 둔 한 인간의 결벽과는 좀 다르다 할 순도를 그대로 느끼게 하는데, 예서 작가 김진송이 삶에 임하는 태도랄까 삶에 취하는 방향성이랄까 그 부러지거나 휨을 일견 추측해보게도 된다.
“개인적 취향이라는 말은 착각이다. 시선의 취향일 뿐.” 김진송의 소설을 읽다보면 묘하게 ‘중력’이라는 단어에 중간 중간 무릎이 휘게 되는데 표제작인 「그가 홀로 집을 짓기 시작했을 때」의 제목만 보더라도 ‘홀로’에서 ‘집’에서 ‘짓기’에서 ‘시작’에서 장옷처럼 쓰인 여러 상징성에 내 삶의 무게중심을 자꾸만 걸어보려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도 된다. 그의 ‘소설’을 읽는데 나의 ‘속내’를 들키는 기분이었다면, 삶인가 죽음인가 우리 사는 데의 원형 같은 주제들이 소소하고 흔한 연장 같은 데서 풀이가 되고 있다면, 이 작음에서 그 큼을 엿보게도 된다면, 이 소설을 읽고 또 읽으면서 밑줄 긋고 있는 여러분의 손끝에서 묘한 안도를 특별한 충만으로 가지게도 될 것이다.
그는 완전히 독립된 존재로서 세상을 살아가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철저히 혼자여야 했다. 숲에 들어와 집을 짓고 살기로 작정한 이유이기도 하다. 혼자라는 건 용기인 동시에 외로움이자 두려움이었다.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그는 다짐하곤 했다. 완전히 하나이기 위한 짝은 필요 없어. 짝은 얄팍한 위안이자 타협에 불과해. 짝이 완전하다고 믿는 비겁한 짝수주의자들! 나는 당당한 홀수주의자로 남을 거야. 물론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 자신에게도 미심쩍은 다짐이 아닐 수 없었다. 그가 또다른 나를 곁에 두고 싶어한 것이 외로움 때문이라는 건 누가 보아도 자명한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나의 존재를 인정한 적이 없었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어쨌든 그의 이런 의지가 젓가락이나 신발의 경우처럼 물질로 전환되어 사물을 사라지게 하거나 변형시킬 수 있는 근거가 되지 못한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었다. -「짝」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