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현대 연극을 대표하는 열다섯 명의 극작가에 대한 치밀한 연구서
독일어권 현대극을 주도한 열다섯 명의 극작가들에 대한 심층적인 연구서 『15人의 거장들』이 출간되었다.
이 연구서는 르네상스 이후 서양 연극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근대극, 즉 요지경 무대를 주축으로 발달해온 리얼리즘 연극의 테두리를 깨고, 스트린드베리를 비롯하여 유럽 연극계에 새물결을 몰고온 세기말 현상의 반영인 여러 이즘―청년파, 표현파, 다다파 등이 스치고 난 다음에 독일 연극의 중심축을 이루고 있는 15인의 거장을 개괄함으로써 오늘날의 독일 연극 문화의 한국 소개와 그 적용을 유도하고자 기획된 것이다.
『15人의 거장들』은 서사극 이론의 창시자로 현대 희곡문학과 연극에 새로운 지평을 연 금세기 최대의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베르톨트 브레히트, 사회비판적 리얼리즘 민중극의 전통에 입각하여 현재적 문제들을 취급하는 독일 극단의 이단아 파스빈더, 형식 미학에 근거한 예술성을 주장, 구변극이라는 새로운 드라마 장르를 개척하는 등 장르 개척의 대가 페터 한트케를 비롯한 그야말로 현대 연극의 내로라하는 거장들의 면면과 정신세계를 작품에 근거하여 충실히 소개하고 있는 책이다.
현대 독일 연극에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15인의 거장들의 작품세계와 그 배경에 대한 상세하고도 치밀한 소개를 담은 이 책을 통해 한국 희곡계나 연극계는 독일 연극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진수를 맛보게 될 것이며, 독일인의 정신에 뿌리내린 철저한 탐구정신과 분석기법, 생동감의 표출과 진솔함을 세세히 배울 수 있는 계기를 얻게 될 것이다.
이 책은 독일문학을 연구하는 학자로서 또한 한국공연예술원을 설립하여 한국의 독창적 공연예술 발전에 대한 정열을 가진 연극인으로서 30여 년 동안 열정적으로 문학과 연극의 길을 걸어온 양혜숙 교수가 책임 편집을 맡아 묶었다. 양혜숙 교수는 독일의 희곡과 연극의 발전 과정을 주된 관심 분야로 삼아 활동해오고 있는데 이 분야에 귀중한 연구 업적을 여럿 남기고 있다. 그의 주도하에 이 책의 집필에 참여한 열다섯 명의 필자들은 양혜숙 교수의 동료이거나 제자들로 독문학 연구에 있어 나름의 성과를 일궈온 이들이다.
브레히트에서 타보리까지 현대 독일 연극의 준봉을 찾아서
독일 현대 연극 나아가 세계 현대 연극의 주요 흐름과 변화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우선 기록극의 대가이며 독일 시극(詩劇)의 거장인 페터 바이스와, 피스카토르와 더불어 서사극의 거장으로 유명한 베르톨트 브레히트, 그리고 산업화 사회를 섬세한 관찰과 유머, 풍자로 새롭게 조명하는 신사실주의의 기수 오돈 폰 호르바트를 살펴봐야 한다. 이 책에서 첫번째로 소개되는 페터 바이스는 독일이 정치적인 문제로 논란이 가장 드세었던 60년대에 기록극 작가로서 문학사에 뚜렷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 인물로, 그의 대표작 <마라/사드>는 총체극의 문체 수단과 무언극, 장터 노래, 살인서사시 등의 음악적 요소에다 부조리극 요소, 초사실극 요소, 고대 비극 요소, 그리고 일본의 가부키 연극 요소 등을 가미하여 기록문학의 건조성을 깨고 예술화하는 데 성공한 주목할 만한 작품으로 기억되고 있다.
이어서 독일어권 연극을 정치극 일변도로 몰고가며 서사극이라는 새로운 이론을 발전시킨 브레히트와 대비를 이루는 작가인 호르바트를 소개한다. 그는 사회를 섬세하고 면밀하게 관찰하여 풍자와 유모로 당시의 사회를 비판, 바르게 이끌어 가고자 한 신사실주의 계열의 작가로, 그의 후계자로는 플라이서, 크뢰츠, 추의 미학으로 세계 영화계의 거장이 된 파스빈더를 빼놓을 수 없다. 브레히트의 정치극이 놓치고 간 것을 보완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호르바트 계열의 작가가 어떻게 독일 연극의 균형을 잡아가고 있는가를 이 책은 면밀히 분석하고 있다.
그외 동독 작가로 공산주의의 한계와 맹점을 통렬히 비판하면서 극한 상황 속에서의 인간의 참모습을 힘차고 분명하게 그려낸 하이너 뮐러, 1960년대와 70년대 브레히트와 바이스의 정치극과 기록극이 휩쓸고 있는 독일 연극 풍토에 반기를 들면서 세로운 세대로 급부상한 베른하르트와 슈트라우스, 한트케 그리고 남성작가의 폭과 깊이를 능가하며 새로운 시각으로 성(性)의 문화와 잘못된 성개념으로 빚어지는 전통 보수사회를 비판적으로 재인식한 여성작가 옐리네크와 라인스하겐 등도 독일 현대 연극을 논할 때 빠뜨릴 수 없는 작가들이다.
마지막으로 소개되는 타보리는 삶 자체가 연극이었던 인물이다. 그의 삶은 철저히 연극적으로 엮여 있으며, 그의 열정과 철저함은 세계 연극계를 황홀경으로 인도할 만큼 연극적이었다. 이 책에서 삶의 구석구석에 스며든 연극인으로서의 그의 인생을 “연극의 안팎을 함께 산 참다운 거장의 풍모”로 기록하고 있다.
이처럼 『15人의 거장들』은 현대 독일 연극을 주름잡고 있는 극작가들의 삶과 작품세계, 그리고 역사적 의의까지를 입체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작가의 작품연보와 개개의 작품에 대한 상세한 설명, 그리고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작품에 대한 친절한 해설 등을 덧붙임으로써 현대 연극의 입문서로서도 좋은 역할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