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미야, 우리 아침 먹었니?
결국 찾아오고 만 치매, 그 일상의 시작과 변곡점들
『결국 왔구나』에 담긴 여덟 가지 이야기는 치매에 걸린 노년 부모들의 다양한 모습을 현실감 있게 그리고 있다. 매 끼니 식사한 것을 기억하지 못하고 집안일 하는 며느리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계속 밥을 달라고 조르는 시아버지, 자신을 돌봐주는 딸과 사위를 매번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엄마, 기억력 감퇴보다 환각과 환청이 나타나는 치매에 걸린 엄마, 치매에 걸렸지만 남편도 자식도 없어 조카의 보살핌을 받는 이모들, 매일같이 똑같은 조림반찬을 대량으로 만들어내는 아버지……
어느 날 이러한 광경을 접한 자식들은 당혹감에 우왕좌왕하면서도, 자연스럽게 부모가 살아온 과거를 되짚고 현재 처한 상황을 헤아리며 앞일을 모색하고자 한다. 이제는 노쇠해 남의 손을 빌려 생활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지만 그들에게도 치열하고 왕성하게 분투하던 시절이 있었고, 그 과정에서 축적된 삶의 흔적과 감정이 노년의 시기에 저마다 다양하게 표출되는 모습들이 무레 요코 특유의 섬세하고도 담백한 시선에 포착되어 희로애락이 충만한 일상으로 그려진다. 그러면서 읽는 이로 하여금 부모의 삶과 나의 삶, 그리고 가족이 함께 늙어가는 일에 대해 그 미래를 그려보게 한다.
아무리 예상 못한 일은 아니라고 해도……
부모 부양이라는 낯설고 버거운 길을 받아들이는 자식들의 방식
한편, 치매에 걸린 부모를 마주한 자식들은 이제 막 부모의 이상행동을 감지하고 부양과 간병이라는 과제 앞에서 고민을 시작하게 된 이들이다. 물론 세월의 흐름과 함께 점점 노쇠해지는 부모를 바라보며 예상하지 못했던 건 아니지만 막상 그 일에 직면하게 된 자식들은 각자 처한 상황에서 각양각색의 대처방식을 보여준다.
부모를 집으로 모셔오거나 간병 계획을 마련해 세심하게 돌보려는 자식들도 있는 반면, 어머니를 모셔야 하는 문제 앞에서 눈치만 보다 결국 싸움으로 번지고 만 오형제 집안, 명문 중학교 교사 출신인 아버지가 치매에 걸렸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윽박지르기만 하는 아들, 건장한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이상행동을 직시하지 못하고 병원 진단을 미루는 자매도 있다.
제각각이면서도 충분히 있을 법한 양상들 속에서 자식들은 복잡한 심경을 보이면서도 어쨌든 그 자리에 머물지 않고 가능한 방법들을 찾고자 노력한다. 시행착오를 겪지만 결국 눈앞에 닥친 현실을 최대한 받아들여 나름대로 이끌어가려는 그들의 모습은 우리들에게도 작은 용기를 주면서, ‘내가 이러한 상황에 처한다면?’이라는 피할 수 없는 질문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기회를 준다.
그래도 현실 직시는 필요하다
함께 늙어가는 가족의 모습 속에 남겨진 생각거리들
이렇듯 제각각으로 늙어가는 가족의 모습 속에도 공통된 몇 가지 문제들이 떠오른다. 부모의 치매 사실을 안 자식들이 가장 먼저 알아보는 건 공공요양원에 관한 정보다. 1970년에 고령화사회로 접어든 일본의 경우 공공요양원 대기자가 수백 명에 이르는 수준으로, 작중 인물들은 ‘죽기 전에 들어갈 수나 있을지……’ 하며 쓴웃음을 짓는다. 이외에도 간병이 필요한 국민을 위한 ‘개호보험제도’의 도움을 받거나 직장생활과 간병을 병행해야 하는 자식들의 현실적인 모습을 통해 치매와 노인 돌봄에 관한 개인적·제도적 뒷받침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한편, 『결국 왔구나』에 실린 여덟 가지 이야기의 화자는 전부 여성이다. 보살핌이 필요한 이들은 친정엄마, 시아버지, 이모들처럼 제각각이지만 가장 밀접하게 수발을 책임지게 되는 건 결국 딸 혹은 며느리인 것이다. 전부 딸 혹은 며느리의 시선에서 전개되는 이야기들은 여전히 돌봄 노동이 여성에게 집중되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도 유의미한 질문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