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딸, 데면데면하지만 애틋한 관계
마스다 미리는 오사카 출신 작가다. 현재 작가는 도쿄에, 가족들은 오사카에 있다. 어머니와는 종종 국내여행을 하거나, 자신이 사는 도쿄로 모시고 와서 도쿄 시내를 구경시켜주는 등, 뭉클한 모녀 관계를 그렸다. 그런데 유독 아버지와는 데면데면했다.
마스다 미리의 자전적 만화 『평범한 나의 느긋한 작가생활』에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
아버지가 하는 말은 늘 한결같았습니다.
“공부 같은 거 못해도 상관없어. 건강하기만 하면 그걸로 된 거야.”
진심이라고 생각하지만, ‘고상한 척’하는 느낌도 좀 들었죠.
“너 도쿄 간다며? 젊을 때 뭐든 해보는 게 좋지.”
‘이해심 많은 아버지’로 내게 호감을 사고 싶은 것이 뻔히 보입니다.
이렇듯 아버지의 자식 걱정에도 삐죽거리는 마음을 숨길 수 없었던 마스다 미리다.
그러나 같은 만화에서 마스다 미리는 도쿄 행을 앞둔 젊은 날의 자신에게 “언제든 돌아오라”고 말해준 아버지의 마음을 잊지 못한다. 아버지와 딸은 데면데면하지만 애틋했다.
소중한 사람의 죽음으로 알게 된 슬픔의 모습과 일상의 힘을 이야기하다
마스다 미리는 이 책『영원한 외출』을 어떤 매체에도 연재하지 않고 2년 동안 홀로 집필했다. 그간 연재물을 엮어 선보인 방식과 다르다. 소중한 사람의 죽음과 그 이후의 삶을 그려야 했기 때문일 것이다. 죽음과 일상이 갖는 각각의 무게와 소중함이 책을 출간하는 방식에서도 드러난다.
작가는 아버지의 죽음을 만화 『오늘의 인생』에서 처음 이야기했었다. 『오늘의 인생』은 아버지와 대판 싸우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독자들은 왜 아버지와의 싸움으로 책을 시작했는지 뒤에 가서 알게 된다. 평범한 하루를 보내는 와중에도 불쑥불쑥 삐져나오는 돌아가진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눈물을 ‘오늘의 인생’에 담아냈다.
그리고 이 책 『영원한 외출』은, 『오늘의 인생』에서 짧은 장면으로 묘사했던 아버지의 죽음과 소중한 사람을 잃는 슬픔, 그리고 그 끝에 집요하게 매달려 있는 일상을 작가 특유의 덤덤한 문체로 묘사한 작품이다.
마스다 미리 특유의 담백한 묘사법이 죽음과 슬픔과 그 끝에 매달린 일상을 그리는 데 쓰일 때, 우리는 뜻밖의 세상과 만나게 된다. 죽음과 일상이라는 상반되는 주제를 끊임없이 교차시키며 이야기하는 마스다 미리만의 이야기 방식을 통해, 우리는 죽음 속에서 삶을, 삶 속에서 죽음을 문득문득 발견하게 된다.
마스다 미리가 보인 솔직함에 우리는 마음을 털어놓고 싶어진다
일상의 위대함에 대해 이야기하는 마스다 미리는, 소중한 사람의 죽음을 이야기하면서도 역시 일상의 힘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 역시 ‘누구나 각자만의 인생을, 일상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일상적인 에피소드가 나열되는 중간중간 감동은 훅, 하고 우리의 마음을 강타한다. 작가인 마스다 미리는 그간 아버지의 옛날 이야기를 들어도 못 들은 척해왔다. 하지만 죽음을 앞둔 아버지에게 작가라는 직업을 가진 딸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는 것이다. 마스다 미리는 처음으로 아버지의 말에 귀기울이고 정리하여 소책자로 만들어 아버지에게 선물한다. 그리고 아버지를 보낸 뒤에는 그가 평소에 종종 이야기했던 장소를 여행지로 정해 마스다 미리만의 방식으로 애도의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아버지의 작은 소망을 들어드리지 못했다는 후회와 그리움의 나날이 차곡차곡 쌓여 있는 이 책에서 우리는 소중한 사람을 보낸 뒤에 마음속에 담기는 애틋함과 만나게 된다. 하지만 소중한 사람이 내 곁은 영원히 떠났다고 해서, 쌓여 있던 애증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마스다 미리는 애틋함과 애증을 동시에 담았다. 어쩌면 이 책은 마스다 미리의 가장 솔직한 책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또 그에게 우리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싶어진다. 무엇하나 숨길 필요 없이 모두 다 털어놓고 싶어진다. 우리가 품고 있는 그리움뿐만 아니라 후회도, 사랑뿐만 아니라 증오마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