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과 차별, 증오의 세계에서
나를 구원한 건 힙합과 알라였다
학교에서는 모범생, 거리에서는 소매치기
분열된 삶과 갈등하는 가치를 한 몸에 승화시킨 감동 스토리
“난 날아올라 다툼이 많은 그곳을 떠나
그리고 이 인생이 준 과즙을 마시지
이제 문제없어 웃어봐 인생을 제대로 써보자고
인생은 정말 소중한 거야
프랑스에 하느님의 축복이 깃들기를
너와 나를 위해 기도할게 프랑스는 정말 아름다운 나라니까“
-압드 알 말리크 솔로 앨범 《마음과 마음이 마주하다》 중에서
빈집털이나 소매치기와 같은 ‘시시한’ 범죄는 쳐주지도 않는 곳, 비참한 현실을 잊기 위해 마약에 찌든 사람들로 가득한 이주민 집단 구역. 이곳 출신의 압드 알 말리크는 학교에서는 우등생이지만 길거리에서는 친구들과 조를 짜서 돈을 뜯거나 마약을 파는 불량배다. 당시 그의 기도 내용은 이러했다. “돈도 많이 벌면서 경찰한테 잡히지 않게 해주세요.” 그는 이주민이자 흑인, 가난과 범죄세계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랩을 시작한다.
압드 알 말리크는 이민자, 흑인, 이슬람교도로서 느낀 차별과 불평등을 시적으로 풀어내고, 힙합과 샹송 등을 포괄하는 음악적 스펙트럼으로 대중과 평단의 지지를 동시에 얻어냈다. 그의 삶과 노래에는 프랑스 사회의 빈부 격차, 인종 차별 등의 사회 문제와 종교 갈등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는 자전적 에세이 『나는 무슬림 래퍼다』(원제 『프랑스에 축복을Qu’Allah bénisse la France』)의 내용을 바탕으로 직접 영화감독에 나서기도 했다. 이 동명의 영화는 토론토 국제 영화 페스티벌에서 ‘국제 비평가 협회상’ 디스커버리 부문을 수상했다.
낭만과 관용의 이미지로 박제된 프랑스 사회의 민낯
가난과 범죄, 폭력과 차별 속에서 자라나다
이 책은 압드 알 말리크라는 프랑스인이자 무슬림, 힙합하는 래퍼의 에세이지만, 프랑스의 사회, 문화, 종교의 면면을 다룬 르포이기도 하다. 아프리카계 이민자의 자녀로 태어나 스트라스부르 집단 거주지, 즉 빈민 지역에서 태어나고 자란 말리크의 성장기에서 프랑스의 민낯을 읽어낼 수 있다. 어린 나이에 절도나 강도질을 서슴지 않고 저지르는 빈민가 아이들, 가난과 불행을 운명으로 받아들인 채 마약에 취해가는 어른들, 그리고 이들에게 무관심한 사람들까지……
뒷골목의 친구들과 압드 알 말리크가 다른 점이 하나 있었다. 바로 그가 명문 중학교의 우등생이었다는 것이다. 노력으로 얻은 것은 결코 남에게 빼앗기지 않는다는 아버지의 엄격한 훈육에 의해 공부를 시작한 그는 우수한 성적으로 상급 학교에 진학한다. 하지만 또래 집단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학교 밖을 나서면 범죄를 저지르며 이중생활을 이어간다. 압드 알 말리크는 가까운 친구가 마약에 찌들어가고 범죄 행위 도중에 죽어가는 모습을 보며 사회적 불합리와 인간의 고통, 숙명에 대해 눈을 뜬다.
이슬람교에 몸담은 후 성장통을 겪어내며
보편적 사랑을 향해 나아가다
그는 구도求道의 마음으로 책을 탐독하고, 선지자를 찾아 스승으로 모시면서 이슬람교에 귀의하게 된다. 이후 코란과 무슬림 율법을 따르고 적극적으로 전도에 나서는 등 신실하게 종교에 따른다. 한눈에 자신이 무슬림임을 알아볼 수 있도록 옷차림을 갖추고, 금기 사항인 하람과 허용된 할랄을 엄격히 구분한다. 압드 알 말리크는 이 책에서 종교활동을 하며 자신이 품었던 고민과 고뇌를 숨김없이 고백하며 영적인 여정을 묘사하는 데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이렇게 그가 종교생활에 심취할 때쯤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그에게 접근해 테러를 모의하는 일이 발생한다. 근본주의자들은 이슬람교에 대한 차별의 반작용으로 폭력과 증오를 키워내고 있었다. 또한 같은 종교 내에서도 분파별로 대립하며 갈등을 겪는 것을 확인하며 또다시 혼란에 빠진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압드 알 말리크의 음악활동이 신앙과 영적세계를 위협한다고 간주하는 이들로 인해 그는 더더욱 혼돈의 상태가 된다.
증오는 증오를 낳을 뿐, 사랑만이 구원이다
종교(무슬림)와 음악(힙합)의 공존
미국 힙합이 힙합 신scene의 다수를 점하고 있기에 우리에게 프랑스 힙합은 다소 낯설다. 이 책은 프랑스 힙합의 살아 있는 전설인 IAM, NTM, MC 솔라를 소개하면서 계보를 잇는 한편, 압드 알 말리크 자신이 정의 내린 힙합을 설명하면서 독자성을 구축한다. 그의 랩에는 흔히 ‘힙합’ 하면 떠올리는 욕설이나 공격적인 언어, 돈 자랑이나 허세가 없다. 사회적 부조리에 대한 분노, 저항 정신 등은 미국 힙합과 뿌리를 같이하지만, 그는 신에 대한 감사를 표현하고 세상과 인간에 대한 사랑을 노래한다. 그는 폭력과 증오는 또 다른 형태의 폭력과 증오를 낳을 뿐, 어둠을 밝히는 건 사랑과 화합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프랑스 투어 공연이 끝난 후, 그의 음악에 감명 받은 사람들이 찾아와 그의 음악의 영향으로 자신이 이슬람교를 믿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와 다른 종교를 가진 이들도 자신의 신앙과 종교생활에 그의 메시지가 도움이 되었다고 전한다. 이 책에는 압드 알 말리크의 솔로 앨범 《마음과 마음이 마주하다》의 가사집이 실려 있어서 이를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증오는 증오를 낳고 난 증오의 포로가 되고” “인생에서 뭔가를 다시 세우는 건 증오가 아니라 사랑이지” “우리를 싸우게 하려고 하느님이 차이를 만든 건 아니야” “난 사랑의 종교와 모든 걸 따르지”
◇ 책 속으로
결국 우리 가족은 스트라스부르 교외 남부에 위치한 뇌오프에 짐을 풀었다. 당시 그곳에 사는 흑인 가족은 두 집밖에 없었기에 우리는 세 번째가 되었다. 뇌오프에서 우리 가족은 사회적 빈곤, 불안정, 추방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민자들, 특히 이민자의 아들들은 서로를 신랄하게 비난하는 데 일가견이 있었다. 하지만 나를 검은 대륙으로 이어주던 몸과 마음의 끈이 그런 시련으로 느슨해지진 않았다. 파리에서 태어났고, 콩고에서는 겨우 4년밖에 살지 않았지만(이후 콩고에 가본 적은 없다) 나는 항상 아프리카를 가깝게 느꼈다. _16쪽: 이중생활
생트안에 다니면서 현명한 어린이가 되는 법을 배우고, 그것을 르보르뉴 선생님과 함께 고민하며 학업에 재미를 붙이면서 완벽한 이상을 세웠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뇌오프의 어린 불량배로 살기도 했다. 완전히 상반되는 두 세계가 마주한 곳에서 계속 자신의 이면을 경험하고 있었던 셈이다. (…) 나는 지극히 개인적인 신앙관을 가진, 다른 사람들보다 꾀가 많은 불량배였다. 돈도 많이 벌면서 경찰한테도 잡히지 않게 해달라고 신에게 기도하는 그런 인간이었다. _33쪽: 이중생활
맬컴의 인생은 나를 매료했다. 한恨의 수준을 넘어 대승적인 투쟁에 이르는 방법을 알았던 한 인간의 마지막 전언에 나는 빠져들었다. 그리고 내 행동의 무게를 재기 시작했다. (…) 하지만 주변을 맴돌던 마약의 위협이, 사자死者들이, 나를 뒤쫓다가 땅에 내던져진 그 노부인의 모습이 내가 사는 거리를 어둡게 만들었다. 물론 그곳에서 계속 살기는 했지만, 그곳은 더 이상 내게 매혹적이지 않았다. 내 마음은 더 이상 그곳에 없었고, 거기에 구속되었다는 느낌만 받았다. 맬컴 엑스의 부름에 반응한 내 마음은 다른 걸 원하고 있었다. _60쪽: 야생 겨자씨
선교에 가장 열을 올린 나는 우리 집단 주택지에서 유명한 이슬람교 인사가 되었다. 나는 이 일에만 몰두했다. 그들은 내가 말하는 신의 위대함, 죽음과 지옥의 고통, 천국의 환희에 귀를 기울였다. 나는 항상 무리 중에 한 사람을 골라 그가 사원에 올 때까지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무슨 일이 있어도 형제를 구원하는 것이 중요했기에 그런 전도는 절박한 일이었다. (…) 머지않아 스트라스부르에 있는 사원들과 그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나를 알아봤다. 여러 집단 주택지에서 나는 어떤 이슬람교 형식의 비공식 대변인이 되어 있었다. _110쪽: 교외의 이슬람교
우리는 프랑스 전역과 스위스를 아우르는 긴 투어를 진행했다. 두 번째 앨범은 큰 성공을 거뒀고, 우리는 기념비적인 공연을 펼쳤다. 국적과 성별을 불문하고 수많은 사람이 무대 뒤로 찾아와 우리 노래가 자기 삶을 바꿔놓았다고 이야기했다. 그중 어떤 사람들은 우리를 통해 이슬람교를 믿기 시작했다고 고백했다. 이보다 더 놀라웠던 건 우리 노랫말을 통해 종교적인 문제제기가 결국 보편적인 것임을 깨닫고 자신들이 믿는 종교에 더 심취하게 됐다고 말한 사람도 있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우리가 자신과 주변 사람에게 미친 영향에 감사를 표했다. _137: 교외의 이슬람교
나는 비행기를 타면 항상 야릇한 뭔가를 느낀다. 위베르가 비행기에서 죽었기 때문이다. 좀처럼 그 사실을 이겨내지 못했지만, 고통은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뉴욕에 도착하고 나흘 후, 우리는 스튜디오에 있었다. 환한 미소와 함께 녹음 콘솔 뒤에 붙어 있던 프린스 찰스 알렉산더는 흘러나오는 음악의 리듬과 베이스에 맞춰 머리와 고개, 어깨를 흔들어댔다. 그리고 미소를 띠며 영어로 이렇게 말했다. “너네 미쳤어. 프랑스 사람들은 이걸 절대 이해 못 할 거야!” _166쪽: 이 세상 모두를 향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