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에 대한 오해와 진실
우리나라에서 스스로 그리스도교를 믿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총인구의 28%로 1,360만 명에 달한다.(2015년 통계청 자료) 하지만 그리스도교의 근간이자 서구문명의 주요한 원천인 신약성서에 대해 우리는 과연 얼마나 알고 있을까?
저자는 서론에서 사람들이 신약에 대해 얼마나 잘못 알고 있는지 일깨우고자 퀴즈 문답을 제시한다. 그중 몇 가지를 살펴보자. 다음 내용들은 신약에 나올까?
1) ‘삼위일체’ 교리.
2) 베드로가 로마에 교회를 세웠다.
3) 사탄과 그를 따르는 마귀들은 하느님에게 반역한 타락한 천사들이었다.
4) 예수는 하느님이 어떠한 이유에서든 이혼을 금한다고 가르쳤다.
1)의 답은 역사적 맥락에서 볼 때 ‘아니요’이다. 신약에 아버지, 아들, 성령이라는 말이 나오고 이들이 한 묶음이라는 언급은 있지만, 삼위일체의 실제 교리, 즉 ‘셋은 서로 다른 인격이며 각기 완전한 신성이라는 하나의 본질을 구성한다’는 교리는 여러 세기에 걸쳐 치열한 논쟁 끝에 확립된 신조이다. 2)도 신약에 나오지 않는다. 베드로가 로마 교회의 설립자라는 이야기는 그리스도교의 전설이자 로마 천주교회의 중요한 전승에 속한다. 또한 베드로가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했다는 이야기도 신약 자체에는 묘사되어 있지 않다. 3) 또한 서기 2세기에 그리스도교인들이 만들어낸 관념일 뿐 신약에는 나오지 않는다. 4)는 신약에 분명히 나온다. 마르코복음(마가복음) 10장 2~12절에서 예수는 어떤 이유로도 이혼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처럼 사람들이 흔히 성서에 나온다고 생각하는 내용이 실상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죽어서 몸은 지상에 있어도 영혼은 예수님이 계신 하늘나라로 간다는 영원불멸의 관념도 성서에서 실제로 가르치는 내용은 아니라고 저자는 밝힌다. 신약은 영혼의 영원불멸보다는 ‘부활’을 가르치기 때문이며, 영혼의 영원불멸은 플라톤주의의 영향을 받은 관념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는 것이다.
역사비평으로 바라본 신약
이 책은 신약 이후에 새로 만들어지고 덧붙여진 신학적 관념을 배제하고, 현대의 ‘역사비평’ 방식에 따라 고대(1~2세기)의 역사적 맥락을 바탕으로 신약 본문의 의미를 들여다본다.
본문을 해석하는 역사비평적 방법에서는 고대의 저자가 의도한 의미, 본문의 원래 대상이 되는 청중의 해석, 그 본문이 쓰인 원래 언어를 찾아내는 한편 시대착오를 피하고자 한다. 그렇지만 지난 2000년이라는 시간의 대부분 동안 성서를 해석할 때 사용한 방법은 이것이 아니었다. 오리게네스라든가 아우구스티누스, 클레르보의 베르나르 등을 비롯한 현대 이전의 해석자들은 역사보다는 신학적 질문을 최우선으로 삼으면서 본문을 마음대로 우화로 풀어 해석했다. 종교개혁을 비롯한 현대사의 여러 사건을 거친 뒤에야 역사비평적 방법이 서구사회에서 주로 사용하는 해석 방법이 되었다.(576쪽)
성서의 글은 그 자체로는 경전이 아니다. 그것을 경전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공동체에서만 경전이다. 어떤 글이든 글 자체가 거룩한 것은 아니다. 신약에 포함된 여러 문서는 고대 지중해 지역의 여느 문서와 마찬가지로 역사적 문헌인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이 책에서는 신약에 포함된, 즉 정전正典에 속하는 그리스도교 문서뿐 아니라 정전에 들어가지 못하고 때로는 외경外經으로 분류되는 『토마의 복음서』(도마복음)『바울로와 데클라 행전』 같은 당대 문헌도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어떤 글이 정전에 포함되거나 배제된 이유에는 문서와 연관된 사도(실제 사도나 그 제자가 쓴 문서가 아니라 해도)의 권위,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받아들여진 정도, 점점 발달해가는 그리스도교 교리와 신학에 부합하는지 여부 등이 있었다. 당연히 당시 그리스도교인들 사이에 형성된 여론이 중요하게 작용했고, 아울러 코덱스codex의 발명이라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다. 코덱스 이전에 성서의 각 책은 두루마리 형태로 존재했다. 마태오복음 하나만 담으려 해도 꽤나 두꺼운 두루마리가 필요했고, 심지어 두 개 이상의 두루마리가 필요한 문서도 있었다. 그러다 코덱스가 별명되면서 두루마리를 하나하나의 낱장으로 잘라 함께 꿰매 묶게 되었고, 4세기에는 구약까지 포함해 성서 전체를 한 권짜리 두꺼운 책으로 제작했다. 이렇게 여러 문서를 한 권으로 묶게 되면서 넣거나 뺄 문서를 확실히 정할 필요성이 대두되었던 것이다.
역사비평에서는 본문을 해석할 때 해당 본문이 정전 전체에서 가지는 의미에 견주어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예컨대 요한복음에서 찾을 수 있는 교리나 주제를 가지고 바울로를 해석하거나 요한복음을 바울로를 통해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오랜 세월 교회가 해온 성서 해석과는 달리 역사비평에서는 신약의 문서들을 하나하나 분리하여 개별적으로 살펴본다. 이를 통해 드러나는 중요한 주제는 초기 그리스도교의 다양성이다. 초기 그리스도교에는 예수를 신, 인간, 또는 둘 모두가 결합된 인물이라는 식의 여러 관점이 공존했다. 이 ‘예수운동’은 처음에 유다인들에게서 생겨났지만 머지않아 이방인이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신약 문서가 쓰인 시기와 신약의 저자들
신약에 관한 또하나의 흔한 오해는 신약의 맨 앞에 나오는 4대 복음서가 시기적으로도 가장 먼저 쓰였으리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이들 복음서는 모두 바울로의 편지들보다 20~40년 뒤에 쓰였다. 신약에서 가장 오래된 문서는 바울로의 편지 중 데살로니카1서(데살로니가전서)로 알려져 있다. 이 편지는 서기 50년 무렵에 작성되었다. 당시 가장 권위 있는 지도자였던 바울로의 편지를 받은 교회는 원본을 보관하고 대신 필경사를 시켜 사본을 만들어 여러 교회에서 돌려보게 했다. 그러다 바울로의 권위에 기대고자 바울로의 이름을 빌려 쓴 ‘차명편지’들이 등장했다. 이런 차명작품은 고대 문화에서는 흔한 일이었다.
바울로의 편지 가운데 명백히 차명으로 밝혀진 것은 디모테오1․2서(디모데전․후서)와 디도서이며, 진위 여부가 논란중인 것은 에페소서(에베소서), 골로사이서(골로새서), 데살로니카2서(데살로니가후서)이다. 명백한 위서 세 편은 교회의 ‘목회자’로 일하는 방법, 목회자를 임명하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어 ‘목회서신’이라 불리며, 논란중인 세 편은 흔히 ‘제2바울로 서신’이라 불린다. 데일 마틴은 목회서신과 제2바울로 서신 모두 위서로 판단하고 있다.
예수의 말을 모아 그의 활동과 죽음을 전하는 4대 복음서는 애초에 익명으로 출간되었다. 차명도 아니고 어떠한 이름도 밝히지 않은 채 쓰였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마르코복음은 베드로의 제자가 썼고, 마태오복음은 예수의 실제 제자인 마태오가 썼으며, 루가복음은 바울로의 제자가, 요한복음은 제베대오의 아들 요한이 썼다고 믿지만, 현대의 학자들은 대부분 이에 대해 회의적이다. 현재와 같은 이름은 네 권의 책을 예수의 제자들이나 그들과 가까운 제자들과 연결하기 위해, 즉 권위를 부여하기 위해 나중에 붙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복음서 가운데 가장 먼저 쓰인 것은 서기 70년 무렵으로 거슬러올라가는 마르코의 복음서다. 이렇게 연대를 추정하는 가장 주요한 근거는 서기 66~70년에 일어난 유다 전쟁과의 관련성이다. ‘작은 묵시록’이라 불리는 마르코복음 13장에서 예수는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를 예언한다.(예루살렘 성전은 실제로 로마군대에 의해 70년에 파괴된다.) 여기서 기술되는 사건들은 그 자체로는 ‘종말’이 아니라 그 전조이자 경고로 나타난다. 실제로 일어난 역사적 사건, 즉 로마군대가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성전이 파괴되고, 수천 명의 유다인이 포로로 잡혀가는 사건은 마르코복음에서 말해지지 않는다. 반면에 마르코복음을 원천자료로 삼아 작성된 루가복음은 이런 사건들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루가복음 21장) 여러 정황을 고려할 때 마르코복음의 저자는 유다 전쟁 동안 로마와 유다 지방 사이의 갈릴래아에서 살았던 그리스도교인으로서, 전쟁의 초기를 겪었거나 알고 있었을 인물로 추정된다.
마태오복음, 마르코복음, 루가복음은 ‘공관복음서’라 불린다. ‘공관’이란 같은 관점을 뜻한다. 이 세 복음서는 비슷하거나 똑같은 사건, 말씀, 비유, 가르침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 어법과 기본 윤곽까지 비슷하다. 오늘날 대부분의 학자가 받아들이는 가설은 마르코복음이 먼저 나오고 마태오복음과 루가복음은 이를 활용하여 작성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마르코복음에 없는 내용이 마태오와 루가에는 나오기도 하는데 이는 또다른 원천자료가 있었음을 암시한다. 즉 마태오복음과 루가복음의 저자는 마르코복음과 가상의 원천자료를 참고하면서 각자 자신들의 복음서를 썼을 것으로 추정된다.(183쪽 도표 참조)
요한의 복음서는 문체와 내용 모두 세 편의 ‘공관복음서’와 확연히 다르다. 서두부터 철학적이고 신학적이다. 요한복음서는 높은 차원의 그리스도론(예수의 본성에 관한 교의)을 피력하고 있으며, 이는 복음서 저자가 속한 종파의 입장을 반영한 것이자 그리스도교가 상당한 수준으로 발달한 시점에 쓰였음을 나타낸다. 대체로 요한복음서는 1세기 말이나 2세기 초에 쓰인 것으로 본다.
이처럼 신약의 복음서는 전승된 이야기나 원천자료를 바탕으로 저자들이 각자의 관심사나 성향, 더 나아가 각자의 ‘신학’에 따라 편집하고 구성한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