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념과 귀기’의 작가 전경린이 전설 같은 이야기로 풀어낸 여성성의 근원
첫 창작집 『염소를 모는 여자』 이후 섬뜩하리만치 강렬한 묘사로 여성의 내면을 탐사해오던 ‘정념과 귀기’의 작가 전경린의 어른을 위한 동화가 출간되었다.
문학동네가 일곱번째로 펴내는 ‘어른을 위한 동화’ 『여자는 어디에서 오는가』는 제목에서 암시하는바, 남성 중심의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존재란 무엇이며 여성의 삶이란 무엇인가, 그 여성성의 뿌리는 어디에서 연유하는가 등의 문제를 ‘선녀’와 ‘늑대여인’의 이미지를 빌려 전설같이 아름다운 이야기로 풀어놓는다.
제2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인 『아무 곳에도 없는 남자』를 비롯해 최근에 출간된 소설집 『바닷가 마지막 집』에 이르기까지 삶과 화합하지 못하고 고독하게 자신의 내면으로 탐사해 들어가 둥우리를 틀어버리는 여성들의 모습을 집요하게 묘사해왔던 작가 전경린은 250매 분량의 짧은 이 이야기에서 영혼과 야성의 인간 본래의 길을 좇아 자기 정체성과 만나는 한 여성의 아름다우면서도 비극적인 삶을 통해 여성성의 근원을 치밀하게 탐사한다.
삽화는 안도현의 어른을 위한 동화 『연어』을 그렸던 화가 엄택수씨가 맡았다.
결혼한 모든 여성들에게, 그리고 자신과 결혼한 여성이 누구인지 모르는 남자들에게...
결혼은 선택인가, 운명인가. 작가 전경린은 알몸으로 인간세상에 던져진 늑대여인의 희생적인 삶의 모습을 통해 이 세상의 결혼한 모든 여자와 자신과 결혼한 여인의 존재 의미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남성들에게 주술과도 같은 물음을 던진다. 여자는 어디에서 오는가.
자신의 존재근원을 모르고 세상을 모르는 미망 속에 살면서도 남편과 자식이라는 영혼의 탯줄에 묶여 그 질긴 줄 속에 스스로를 속박하는 늑대여인. 자신을 잊고 먼지같이 여기며 견딜 수밖에 없는 희생을 택하는 그녀는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나무꾼에게 옷을 빼앗긴 선녀와도 같다.
늑대가죽 하나만을 덩그라니 남기고, 알몸으로 낯선 남자의 아내가 된 여자는 자신의 근원을 알고자 열망하지만, 여자를 미망 속에 가두고 행복을 주겠다고 자신하는 남편의 곁에서 그녀가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곤 각고의 노력으로 얻어낸 가죽신을 짓는 일뿐이었다. 가죽신을 지음으로써만 스스로에게 몰두할 수 있던 여자가 시간이 흘러 자식을 얻고, 영혼의 탯줄과도 같은 자식의 끈으로 인해 어렵사리 알게 된 자신의 근원을 찾아갈 수 있는 영혼의 길도 포기한다. 하지만 결국 덧없이 지나간 남루한 생의 세월 앞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그때야 비로소 자신이 처음 인간세상에 남겨졌던 그 자리로 돌아가 유일한 구원인 가죽신 짓는 일에만 몰두하게 되고, 늑대여인 앞에는 그토록 갈망하던 영혼의 길이 열린다. 그 길을 따라 자신이 지은 마지막 가죽신을 신고 마침내는 자신의 근원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모든 여자의 내부에 살아 있는 배반과 그리움, 삶보다 숭고한 여자의 근원
여자는 ‘어디에서 오는가’ 묻고 있는 전경린의 슬픈 전설을 따라가다 보면, 여자의 내면에 일렁이는 근원적 야성과 그리움이야말로 삶보다도 숭고하고 치열한 것임이 선연히 드러난다.
여자는 어디에서 왔을까. 어느 먼 곳에서 와서 무릎을 꿇었기에 작은 몸 안에 그토록 많은 배반과 그리움이 술렁이는 것일까. 결혼이라는 제도 속에, 남편과 자식이라는 가정 속에서 끊임없이 스스로를 잊으라는 희생을 강요당하지만, 본디 여자의 내부에는 배반과도 같은 스스로를 향한 그리움이 소용돌이치고 있다. 사랑은 결혼을 거쳐 남루한 일상이 되어버리고, 생활을 알기 위해 자신을 잊기를 선택해버리지만 결국 접지 못하는 여성성의 근원에 대한 그리움은 때때로 야성과도 같이 삶 자체를 흔들어놓기도 한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상에 대한 본능적 배반이 아닐 수 없다. 그럴 때마다 그녀 안에 숨어 있는 늑대여인, 아니 옷을 빼앗긴 선녀는 이렇게 중얼거릴 것이다. “
나는 나를 모르며 세상을 모르며 단지 미망 속에서 살고, 미망 속에서 죽을 뿐입니다. 행복이란 머물 수 있는 곳이 아니며, 함정을 가리고 있는 위장된 꿈과 같으며, 죽음 위에서 춤추는 환영의 춤과 같이 처참한 몰골을 드러내고는 나를 할퀴고 지나갔습니다.”
일상에 가려 보이지 않으나 희생을 강요당하는 여자의 혼은 생래적으로 야성을 꿈꾸며 배반을 도모한다. 그 치열한 내부의 술렁거림을 슬프고도 아름답게 그려내고 있는 전경린의 늑대여인 이야기는 여성성 안에 자리잡은 그 생래적 반란이야말로 삶보다 숭고한 것임을 나지막이 웅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