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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젊은작가상 수상 작가 최정나 첫 소설집!
“최정나의 발견은 이번 독서의 하이라이트였다.” _심사평에서
손보미, 최은영, 김봉곤, 박상영 등 현재 한국문학의 중요한 흐름을 만들어가는 작가들의 첫 소설집을 선보여온 문학동네가 올해 또 한 명의 독특한 목소리를 가진 신예 작가를 소개한다. 2016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전에도 봐놓고 그래」가 당선되면서 “의도와 형식이 놀랍도록 짜임새를 이뤄낸 작품”(심사위원 김원우 임철우)이라는 평과 함께 소설가로서 첫 출발을 알린 최정나 작가다. 최정나 작가는 등단한 바로 이듬해에 발표한 단편소설 「한밤의 손님들」로 젊은작가상을 수상하면서 “기교가 기교로만 그치지 않고 친밀성 내부의 괴물성을 실감나게 드러내는 데까지 이르고 있어서, 나는 얼떨떨한 기분으로 이 작가의 이름을 기억하게 됐다”(문학평론가 신형철)는 평을 받았다. 그 말처럼 우리 또한 잘 짜인 여덟 편의 소설을 읽고 난 뒤 얼떨떨함과 반가움을 가득 담아, 신예 작가 최정나의 이름을 깊게 새기게 될 것이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은밀하고 나른한 대화와
돌연 우리의 일상을 낯설게 만드는 기묘한 긴장과 불안의 목소리
『말 좀 끊지 말아줄래?』에 실린 여덟 편의 소설은 책의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인물들의 ‘말’로 넘실댄다. 말맛이 느껴지는 탄력적인 대화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서 독특한 리듬을 만들어낸다. 그런데 그 대화는 자꾸만 엉뚱한 방향으로 뻗어나간다. 우리는 보통 친교를 목적으로, 혹은 정보를 나누기 위해 대화를 주고받지만, 최정나 소설의 인물들은 대화를 주고받는다고 해서 서로를 더 이해하거나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되거나 하지 않는다. 병에 걸린 친구를 위로하기 위해 찾아간 온천에서 살을 맞대며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이 확인하는 것은 서로의 우정이 아니며(「사적 하루」), 골프를 치기 위해 필드에 모인 이들은 공을 치기보다 서로 자기 말을 던지느라 바쁘다(「잘 지내고 있을 거야」).
소설집의 맨 처음에 자리한 「말 좀 끊지 말아줄래?」에서 장례식장을 찾은 ‘이씨’와 ‘우씨’는 고인과 친구 ‘조씨’가 정확히 무슨 사이인지도 모른 채 “네가 고생이 많구나”(18쪽)라는 의례적인 위로를 전한다. 어색한 침묵이 이어지는 것도 잠시, 곧이어 침을 튀겨가며 큰 소리로 떠들어대는 옆 테이블 남자의 말이 그 침묵을 덮어버린다. 그리고 그것을 시작으로 ‘아무 말 대잔치’가 이어진다. “역시 아무 말이 하는 거나 듣는 거나 재미는 있다.”(24쪽) 이들은 장례식장 냉장고에 있는 고급 소주를 빼돌려 사업을 하자는 소리를 진지하게 나누고, 옆 테이블 남자는 장례식장에서 마신 술은 자신이 계산하겠다고 우긴다. 이 ‘잔치’가 그들에게 남기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장례식장 주변의 왁자지껄한 풍경을 묘사하며 시작된 소설의 처음과 동일하게 소설이 마무리됨으로써, 소설은 아무런 변화 없이 처음의 그 자리로 되돌아온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익숙해서 편안하게 들리던 백색소음이 어느 순간 미묘하게 귀에 거슬리는 것처럼, 피식거리면서 귀기울여 엿듣던 대화가 도돌이표처럼 이어지는 어느 대목에서 우리는 돌연 일상을 낯설게 만드는 기묘한 긴장의 분위기에 휘감기고, 어느새 자세를 고쳐 앉으며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모르시겠어요? 처음부터 뭔가 잘못됐다고요.”
“넌 참 이상하구나. 아주 이상해. 없는 일을 만들고 있어.”
이런 기묘한 분위기는 ‘가족’을 둘러싼 이야기를 그릴 때 더욱 두드러진다. 「전에도 봐놓고 그래」는 시아버지의 생일을 맞아 모인 노부, 노모, 남자, 아내의 하루를 그린다. 하지만 생일 축하는 뒷전, 시어머니는 내내 남자와 여자를 따라다니며 몸에 좋은 것에 대해 일장연설을 늘어놓고, 시아버지는 개고기를 삶는 데 여념이 없다. 담장을 집어삼킬 듯 뻗어나가는 넝쿨처럼 자연스러운 듯 불편한 대화가 진행될수록 서로가 서로를 옥죄는 듯한 독특한 긴장감이 흘러나온다.
또하나의 가족이 모인 「한밤의 손님들」도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 어두운 길에 유독 환한 조명을 밝히며 자리한 식당 앞에서 검은 개가 맹렬하게 짖으며 소설은 시작된다. ‘나’는 ‘엄마는 늘 꽥꽥대고, 동생은 늘 꿀꿀댄다’는 이유로 그들을 각각 ‘오리’와 ‘돼지’라 부르고, 식당에서는 그에 어울리는 동물적인 대화가 이어진다. “왜 병원비를 입금하지 않는 거냐. 이런 일은 한 번도 없었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아이를 낳아라”(115쪽) “바람을 피웠지! 그거 잡느라고 내가 없는 시간 쪼개서 언니 뒤를 미행했잖아”(119쪽) 주위 사람들이 듣지 못하도록 목소리를 낮추면서도 계속 돈을 요구하는 엄마와 동생의 모습은, “그간 이 작가가 시도해온 중산층 가족 이데올로기 비판의 연장선상이라고 할 만하지만 그 밀도의 농후함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측면이 있다”(문학평론가 신수정)라는 평가에 값하지만, 우스꽝스럽게 이어지던 대화에 또다시 검은 개의 맹렬한 울음소리와 “낄낄낄낄, 웃는 소리”가 삽입되면서 소설은 가족 이데올로기 비판을 초과하는, 산뜻하게 정리되지 않는 기묘한 잔향을 남긴다.
피식하고 웃음을 터뜨리게 하다 돌연 긴장감을 느끼게 하는 이 기묘한 전환은 무엇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악착같이 넝쿨손을 뻗는 담쟁이의 생명력에 여자가 쫓기듯 물러섰던 것처럼, 너무 가까이 보면 생은 확실히 사람을 좀 질리게 하는 구석이 있다”고 황현경 평론가가 짚어주었듯, 최정나 소설의 미묘한 긴장감과 불안감은 이중의 겹에서 비롯되는 듯하다. 「한밤의 손님들」 「해피 해피 나무 작업실」 「케이브 인」 등을 비롯해 최정나의 소설에는 유독 ‘유리창’이 자주 등장하는데, 우리는 흔히 유리창을 통해 바깥의 풍경을 바라본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최정나 작가가 유리창에 비친 풍경을 스케치하듯 날렵하게 묘사한 인물들의 대사와 행동을 바라보다, 어느 순간 우리는 바깥이 아니라 그 유리창에 되비친 우리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어머니의 간병비에 쓰라며 아버지가 남긴 돈으로 골프를 치러 가거나(「잘 지내고 있을 거야」), 병명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병에 걸린 친구가 자신보다 인생을 재미있게 사는 듯 보이자 질투에 가까운 감정을 느끼는(「사적 하루」) 인물들을 유리창 너머의 풍경인 듯 건너다보다가, 어느 순간 유리창을 통해 그들과 우리가 섞여 있음을 알아차리게 되는 것이다. 그들과 우리가 그리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인식하는 순간 우리는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심정이 되어 한동안 그 유리창에서 시선을 떼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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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특별히 갈 곳도 없고 해야 할 일도 없어서 건들건들 의자에 앉아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가 심심해지면, 사실 심심할 틈이 별로 없는데, 자세를 약간 바꿔 골목 이쪽 끝에서 반대쪽 끝을 바라본다. (…) 비어 있는 골목에는 수많은 소리가 남아 있다. 나는 그 소리들을 채집하고 기록한다. 그리고 좌판을 깔듯 이야기들을 펼쳐놓는다. 그러니까 여기 실린 여덟 편의 소설은 이런 이야기이다. 의자에 앉아 있는 여자와 그를 지나치는 사람들에 관한. _‘작가의 말’에서
우울증에 시달리던 화가 에드워드 호퍼가 보드빌을 쓴다면 아마도 최정나의 소설처럼 되지 않을까? 웃을 수도 없고 웃지 않을 수도 없는 지극히 현대적인 적막의 풍경. 먹고 자고 싸고 외로운 대화를 나누고 또 둘러앉아 연기를 피우며 고기를 먹는 인간들로 이루어진 인생극장. 감정이입이나 의미의 승화가 불가능한 가면극의 쓸쓸함. 최정나의 소설을 읽은 뒤라면, 우리는 소설이 허구를 통해 진실을 보여준다는 상식적인 역설에서 더 나아가게 된다. 현실의 허구성과 가상성 자체를 보여주는 것이 바로 소설이라고 말이다. _이장욱(소설가)
낯선 작가 최정나의 「한밤의 손님들」은 나를 놀라게 했고 그의 등단작까지 찾아 읽게 만들었다. 등단작인 「전에도 봐놓고 그래」에서부터 인상적인 것은 동물처럼 꿈틀거리는 문장이다. 내면 서술은 생략하고 거의 대화의 힘으로 끌고 가는 유형인데도 연극적 양식미를 빚어내고 있었다. 「한밤의 손님들」에서도 일단 그 장점이 여전하고, 거기에 더해, 현실과상상 혹은 주체와 타자 사이의 경계를 넘나드는 유체적인(fluid) 상상력이 추가됐다. 전례가 없는 것은 아닐지라도 이렇게 과감하고 능숙하게 밀고 나가는 모습은 인상적인데다가, 그 기교가 기교로만 그치지 않고 친밀성 내부의 괴물성을 실감나게 드러내는 데까지 이르고 있어서, 나는 얼떨떨한 기분으로 이 작가의 이름을 기억하게 됐다. _신형철(문학평론가)
■ 책 속에서
그런데 왜 이렇게 늦었어?
아까 그 할머니 등 밀어줬어. 종은은 유리창 너머 대욕장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 할머니, 좀전에도 밀었잖아.
등을 내미는데 하는 수 없었지. 연세가 아흔인데 몸이 아파서 몇 주 동안 못 왔대.
때가 많았겠는데?
아니, 때는 전혀 없었어.
때도 없는데 왜 자꾸 때를 밀어?
때보다는 때를 미는 데 관심이 있는 것 같았어.(「사적 하루」, 105~106쪽)
다시 유리 액자를 올려다봤다. 그러자 그림이 조금 변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실제로 그림이 변했는지, 그림을 보는 내가 변했는지, 둘 다인지, 둘 다 아닌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다만 그림을 보는 동안 생각에 생각이 더해지고 새로운 생각이 덧붙여져서 어디까지가 그림이고 어디부터가 생각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런 생각은 어딘가에서 끊어지거나 어딘가에서 다시 이어지기도 했다.(「한밤의 손님들」, 116쪽)
당신, 얼굴이 왜 그래? 남자가 놀라 물었다.
다 잘못됐어요. 여자는 남자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품위를 지켜야 한다. 노모가 말끝에 힘을 줬다.
품위는 대물림되는 거예요. 여자가 입술 끝을 한쪽으로 올리며 웃었다.(「케이브 인」, 215쪽)
그러니까 크리스마스에 밤이 가장 길다는 거네. 여자가 돼지고기 볶음을 젓가락으로 뒤적였다.
밤이 지나면 세상이 리셋된다잖아. 남자가 입을 우물댔다. (…)
이교도의 명절이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둔갑한 게 새로운 빛이야? 여자가 돼지고기 한 점을 남자의 입에 넣어주었다.
그거야 상황마다 다르겠지. 아무튼 사이에 껴 있는 시간이잖아, 오늘은. 남자가 고기를 삼켰다.(「메리 크리스마스」, 23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