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석학이 쓴 책을 공들여 번역
글항아리에서 이번에 선보인 『논쟁 극장』은 이 ‘홍학’의 100년 역사를 한 권에 집대성한 역작이다.
평생을 『홍루몽』 연구에 매진한 석학 류멍시 선생의 『홍루몽과 백 년 중국紅樓夢與百年中國』(2005)을 옮긴 것으로 옮긴이 한혜경 가톨릭대 교수는 타이완 중국문화대학 중문연구소에서 『홍루몽 왕·장·요 삼가 평점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 후 꾸준히 홍루몽의 세계를 탐사해온 전문가이며 한국중국소설학회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전문가가 심혈을 기울여 번역한 『논쟁 극장』은 홍학사의 민낯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다른 어떤 책에서도 볼 수 없는 홍학의 실상이 가감 없이 담겨 있다. 역자는 몇 번이나 중국 베이징으로 가서 저자와 만나 이 책을 두고 토론과 대담을 진행했으며 번역과 교정·교열에 거의 10년 가까운 세월을 쏟아 부었다. 또한 중국예술연구원의 종신 연구원인 저자 류멍시 선생이 왜 석학인지를 여실히 느끼게 해주는 본문의 유려한 문체와 종횡무진의 문맥을 생선살을 발라내듯 섬세하게 번역해냄으로써 원작을 그대로 되살려냈다. 이와 관련해 관련 학계와 관심 있는 독자들에게 아주 큰 선물이 될 것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8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의 이 책은 총 10장의 구성으로 이뤄져 있는데 한마디로 요약하면 “홍학을 둘러싼 17차례의 논쟁, 9가지 공안公案, 4가지 수수께끼, 3가지 옭매듭”을 차례차례 도마에 올려 해설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렇게 제시된 논쟁, 공안, 수수께끼, 옭매듭을 염두에 두고 정리하는 방식으로 독서해볼 수 있다. 또 하나 이 책을 따라 읽는 다른 방법은 ‘색은파’ ‘고증파’ ‘문학비평파’ 등 홍루몽을 연구한 방식에 따라 나뉜 3대 유파별로 정리해가면서 읽는 것이다. 저자는 1장에서 『홍루몽』을 개관하고 2장에서 ‘홍학紅學’과 ‘조학曹學’(조설근 연구)을 개관해준 다음 색은파, 고증파, 문학비평파가 차례로 등장하며 갑론을박하는 모습을 자세히 묘사해주고 있다.
중국사회의 변화와 연관하여 홍학의 세 시기 개관
무엇보다 홍학의 유파가 생겨나게 된 배경과 발전 과정을 전체적으로 조망하면서 홍학이 학술적으로 자리 잡게 되기까지의 발자취를 전체적으로 개괄해주고 있기 때문에 초심자들의 머릿속에도 지도가 확연히 그려진다. 저자가 밝힌 대로 이 책에서는 색은파, 고증파, 문학비평파 등 홍학 삼파에 이름을 올렸던 대표적인 학자와 그들의 논저를 하나하나 소개하고 각 파의 연구방법을 비교하면서 홍학이라는 학문 분야를 기술하는 데 중점을 두었기 때문에 『홍루몽』 연구와 관련된 해결되지 않은 난제에 대한 필자의 견해나 주장은 핵심 내용이 아니다. 대신 홍학에서 불거졌던 문제들을 열일곱 차례에 걸친 논쟁, 아홉 가지 공안, 네 가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와 세 가지 옭매듭 등으로 나누어 정리함으로써 당시에 『홍루몽』과 관련하여 과연 어떤 논쟁들이 벌어졌는지를 알고 싶어하는 독자들의 궁금증을 말끔히 해소해준다.
저자는 『홍루몽』 백 년의 역사를 각각 세 시기로 구분하여 의미를 부여했다. 가깝게는 청말 민초 이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백 년의 세월이고, 멀게는 1644년 청나라가 건국한 이후 조설근이 1744년 『홍루몽』을 쓰기 시작했던 시기까지 백 년의 시간이며 이는 『홍루몽』에서 그리고 있는 가씨 집안이 백 년에 걸쳐 세도를 누려온 시기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홍루몽』 연구사와 관련지어보면 최초의 홍학 관련 글로 손꼽히는 『홍루몽평론』이 나왔던 1904년에서 이 책의 저자 류멍시 선생이 『논쟁 극장』을 썼던 2005년 무렵까지의 백 년을 뜻한다. 이 세 시기의 백 년 역사 속에 녹아든 『홍루몽』의 탄생과 전파, 학문의 형성과 발전 과정이 중국 근현대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중국사회의 변화와 더불어 중국 현대 학문의 발전을 선도하는 동력이 되었기 때문이다.
홍학 신드롬은 왜 일어났나
우연한 에피소드에서 비롯된 ‘홍학’이란 말이 장차 학술적으로 어마어마한 의미를 지니게 될 것이라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야말로 우연이 필연이 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그 후 『홍루몽』에 대한 평점 등이 쏟아져 나오면서 홍학의 광대한 세계가 펼쳐진다.
최초의 평점은 80회본 필사본이 쓰일 당시 창작 과정을 지켜봤던 지연재와 기홀수 등이 가한 평점으로 사료적 가치가 뛰어나 고증파에 작가, 가세, 판본 등의 비밀을 밝히는 중요한 단서가 되었으며 훗날 『지연재중평석두기脂硯齋重評石頭記』란 제목으로 출판된다. 120회본 인쇄본에 들어간 『홍루몽』 평점에는 왕희렴王希廉, 장신지張新之, 요섭姚燮 등의 삼가三家 평점과 진기태陳其泰, 합사보哈斯寶, 왕보항王伯沆 등의 평점이있는데 『홍루몽』의 예술성과 사상적 특색을 다각도로 밝혀주었다. 홍학이란 말이 처음 나올 때만 해도 대학자들에게 ‘홍학가’라는 호칭을 붙인다는 건 감히 상상도 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들도 『홍루몽』을 드러내놓고 이야기하게 되었고 홍학가를 자처하는 이들도 생겨나게 된다. 당시 내로라하는 명사들 중에 『홍루몽』에 대해 관심을 가졌던 이들로 시인 원매袁枚, 경학가 학의행?懿行, 봉강대리封疆大吏 호림익胡林翼, 명망가 이자명李慈銘, 대학자 유월兪?, 금석학자 진강기陳康祺 등이 있다. 다만 그들의 언설은 짧은 구절이나 문장으로 전해졌을 뿐이다. 체계적인 형식을 갖추고 독자적인 견해를 담은 논문 형태의 글이 나온 건 왕궈웨이, 차이위안페이, 후스 등에 이르러서다.
이처럼 소수 몇몇 사람의 애호를 받다 사회 전반으로 파급되어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던 소설 작품이 학술의 반열에까지 오르게 된 것은 중국문학사나 중국학술사에서 유례가 없는 일이라고 하겠다.
구홍학 vs. 신홍학, 다양한 참여자의 면모
홍학사의 흐름을 살펴보면 구홍학, 신홍학, 당대홍학 등으로 구분되는데 신홍학이 등장하면서 구홍학이라는 명칭이 생겨난 만큼 구홍학에는 상대적으로 폄훼의 의미가 담겨 있다. 구홍학에는 앞에서 소개한 평점 외에 색은, 제영題詠 등이 포함된다. 신홍학에서는 서구의 실증주의를 표방한 후스의 고증파가 대표적인 위치를 차지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서양철학과 문예이론을 도입해 『홍루몽』을 분석한 왕궈웨이의 문학비평파도 한자리를 차지한다. 당대홍학은 신중국 건설 이후 범정치화의 시대 상황 속에서 형성된 사회역사비평파를 거쳐 개혁개방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다원화된 홍학 전반을 가리킨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구홍학, 신홍학, 당대홍학으로 구분하지 않고 근현대 시기에 홍학의 기초를 세우고 하나의 견실한 학문으로 입지를 다지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차이위안페이, 후스, 왕궈웨이가 주도한 세 유파를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했다. 아마도 지엽적인 것에서 벗어나 방대한 홍학사의 흐름을 일관되게 끌고 가려는 취지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가치 판단보다는 각 유파에서 추구하는 바를 간명하면서도 명확하게 밝히는 데 주력했다.
홍학 백 년사를 돌아보면 문학 연구자는 물론이고 사상가, 역사학자, 문인, 과학자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홍학과 인연을 맺고 『홍루몽』 연구의 지평을 넓혔다. 이를 계기로 홍학의 지명도와 영향력은 극대화되었다. 홍학 초기에는 왕궈웨이, 차이위안페이, 후스 등이 독립된 학문으로 기초를 다지는 데 기여하고 홍학 연구의 선도적인 역할을 했다면 당대에 이르러 저우루창, 펑치융, 리시판, 허치팡, 장허썬, 샤즈칭, 위잉스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홍학의 바통을 이어받아 홍학 발전을 추동했다. 그 과정에서 마오쩌둥의 개입으로 홍학 연구가 학술의 범주를 벗어나 전 중국을 뒤흔드는 대사건으로 비화되기도 했다. 이 책에서는 아쉽게도 1954년의 홍루몽 대사건과 문화대혁명 시기에 벌어졌던 일련의 사건이 비교적 간략히 서술되어 있는데 이는 저자가 홍학사를 가능한 학술적 범주 내에서 기술하고자 했던 본래 취지를 고수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결과적으로 이 모든 과정은 『홍루몽』의 지명도를 높였고 마침내 홍학이 현학의 반열에 오르게 되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방대한 스케일, 독특한 서사구도, 전복적 사상 등 해석의 백가쟁명
일찍이 루쉰은 『홍루몽』에 대해 “경학가는 『주역』을 보고, 도학가는 ‘음’을 보며 (…) 혁명가는 ‘만주족 배척’을 보고 호사가는 ‘궁궐비사’를 볼 것”이라고 했듯이 이렇듯 다의적인 해석을 촉발시킨 요인에 대해 다시 주목하게 된다. 우선 문학작품으로서의 뛰어난 예술성과 사상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가히 중국 고전소설의 완결판이라고 할 만한 『홍루몽』의 방대한 스케일에 독특한 서사구도와 세련된 묘사, 그에 더해 기존의 사상을 전복시킬 만한 새로운 발상과 참신한 인물군의 출현이라는 점에서 『홍루몽』은 과연 여타의 소설을 압도한다. “가짜가 진짜가 될 때 그 진짜도 가짜요, 없는 것이 있는 것이 될 때 있는 것 또한 없음이라假作眞時眞亦假, 無爲有處有還無”라고 한 구절에서도 알 수 있듯이 허실과 몽환 구도를 통해 작품 곳곳에 숨겨져 있는 은유와 상징은 작가의 진정한 의도가 무엇인지에 대해 알고 싶게 만들었고 더 나아가 다양한 해석을 낳는 기제로 작용했다. 뿐만 아니라 귀족 가문의 일원으로서 부귀영화를 누리다 하루아침에 몰락하여 비참한 삶을 살아야 했던 작가의 불운한 삶은 비극적인 이미지를 극대화시켰다. 그가 남긴 작품이 미완의 필사본 형태로 떠돌게 되면서 판본 문제를 야기했고 창작 과정을 직접 지켜보았거나 함께 참여했던 지연재나 기홀수와 같은 지인들의 작품에 대한 훈수와 평가, 더 나아가 속서 문제 등도 『홍루몽』의 범상치 않은 내력을 부각시켜주기에 충분했다. 이 모든 것이 독자들의 호기심과 궁금증을 자아내는 요인이 되었다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해석하느냐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술적 진실’ vs. ‘작가의 의도’
소설비평파 홍학이 작품을 하나의 유기체로 보고 텍스트에 기반한 연구를 진행함으로써 예술적 진실을 찾고자 했다면 색은파 홍학과 고증파 홍학은 작자의 의도를 찾으려는 목적으로 작품을 잘게 나누었고 작가의 생평과 가세가 작품에게서 어떻게 구현되었는지와 시대적 배경이 작품에 끼친 영향 등에 대해 집중함으로써 역사적 진실을 규명해내는 데 힘을 쏟았다. 소설 비평파가 형상화된 작품 그 자체를 중시했다면 색은파와 고증파는 작품이 창작되기 전의 원형에 주목한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고증파와 색은파를 신, 구의 개념으로 구분 짓는 것에 대해 이견이 있을 수 있다. 엄밀히 말해 색은파나 고증파 모두 “본래 이야기本事”를 규명함에 있어서는 뚜렷한 차이를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홍루몽』을 역사 속에 실재했던 누군가의 이야기라고 보는 색은파나 작가 조설근 자신의 이야기라고 보는 고증파 모두 대상만 달랐을 뿐 넓은 의미에서는 색은의 행위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처럼 소설 텍스트에서 무엇인가를 찾아내고 줄기차게 역사와 관련지어 감상하고 해석하려는 태도는 전통시대 중국인들의 소설 관념과 학술사상에서 그 연원을 찾아볼 수 있다.
전통시대 소설사의 흐름을 살펴보면 사전전통史傳傳統과의 깊은 관련성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서구에서 소설의 원류라고 할 수 있는 신화와 전설이 독자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데 반해 중국에서는 신화와 전설이 일찌감치 역사에 편입됨으로써 소설을 독립적인 장르가 아닌 역사를 보충해주는 보조 수단 즉 보사관補史觀의 개념으로 인식했고 그러한 토대 위에서 서사문학이 뿌리를 내리고 생장·발전해왔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역사적인 시각이 중국 서사문학의 창작과 감상에 끼친 영향이 실로 지대하다. 실록 기사의 관점으로 서사문학을 이해하려는 경향뿐 아니라 소설의 서사구도에도 영향을 미쳐 마치 실재하는 역사처럼 소설이 쓰이기도 했는데 당대소설唐代小說 전기傳奇가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하겠다. 오랜 기간 이어져 내려온 이러한 전통 때문인지 오늘날까지도 역사에 관한 한 중국인들은 상당히 강박적이라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현대판 금고문 논쟁 펼친 색은파와 고증파
또한 미언대의를 중시했던 금문학이나 고증을 중시했던 고문학과의 관련성을 들 수 있겠다. 한대 금문 경학 이래 모름지기 글을 쓰는 이는 자신의 생각을 직접적으로 얘기하지 않고 “의재언외意在言外”나 “상외지상象外之象”과 같은 기탁의 방법으로 표현한다고 보았기 때문에 작품을 감상하고 해석하는 과정에서도 이러한 인식의 범주에서 탈피하지 못하는 경향이 많았다. 작품의 배후에 숨어 있는 무엇인가를 부단히 찾아내고자 했던 색은파의 시도는 금문학파와 맥을 같이 하고 있다. 따라서 지식인의 우환의식과 문이재도文以載道 관념을 이끌어낸 청대 도광 연간의 금문학파가 색은파 홍학의 정신적 토대가 되었다면 고증파 홍학에 힘을 실어준 것은 실증을 중시했던 청대 건가학파乾嘉學派였다. 바야흐로 중국의 전통 학술을 고거지학考據之學, 의리지학義理之學, 사장지학詞章之學으로 분류할 때 시대에 따라 각각 주력 분야는 달랐지만 상호 간에 영향을 주고받으며 2000년간 중국의 학술계를 지배해왔다고 볼 수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고증과 의리는 중국 전통 학술을 대표하는 양대 산맥이다. 색은파와 고증파의 대립은 미언대의를 밝히는 데 힘을 쏟았던 의리지학에서 고증을 궁구하는 건가학파로의 회귀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근현대판 금고문 논쟁으로 볼 만하다. 이 과정에서 지연재 비어에 들어 있는 “불사지사不寫之寫” “은어미사隱語微辭” “춘추자법春秋字法” 등의 평어는 색은파나 고증파 모두에서 입론의 근거로 채택되었다. 따라서 18세기에서 20세기에 이르기까지 『홍루몽』의 주된 연구는 전통 경학의 기본 노선을 답습한 것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상황을 감안하면 『홍루몽』을 문예학적으로 분석하여 가장 주목받았어야 할 왕궈웨이의 소설 비평파 홍학이 당시에 왜 주변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가 가고도 남는다. 다행히 1970년대 이후 텍스트로 회귀하여 연구를 진행하는 이들이 많아졌고, 『홍루몽』의 진미를 탐구한 소설 비평파 홍학의 논문과 저서가 늘어나면서 많은 이의 공감을 불러일으켰으며 소설적 진실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는 계기가 되었다.
과도한 전통 시각도 편협하지만 서구의 시각으로만 재단하는 것도 안돼
홍학사 관련 서적은 이미 여러 권이 나와 있는데 저자에 따라 혹은 홍학사를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다소간의 차이가 있을 것이다. 홍학은 분명 중국적인 현상이다. 과도하게 전통적인 시각을 고수하는 것도 편협하지만 서구의 시각으로만 홍학사를 재단하는 것도 그리 바람직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런 점에서 류멍시 선생의 이 책은 문화사적으로 집적된 자료를 바탕으로 홍학사의 전모를 총괄했다고 할 수 있다. 저자는 기존 홍학사와의 비교 검토를 통해 자유롭게 논지를 전개해나갔으며 중립적인 입장에서 각 유파의 지향점과 한계를 객관적으로 서술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판단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그냥 지나치지 않고 저자의 가치 판단을 곁들였다. 예컨대, 위잉스 선생의 「근대 홍학의 발전과 홍학 혁명」에서 나타난 모순점에 대하여 학자로서의 날카로운 식견을 보여준 것이나, 일찌감치 『홍루몽』이 “조설근의 자서전”이라는 고증파의 주장을 거둬들였음에도 과도하게 핍박을 받았던 위핑보의 입장을 이해하고 변호해주려 했던 점 등이 그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대목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홍루몽』과 관련된 소소한 이슈에서 거대 담론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내용을 총망라해서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