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논의의 개방성은 그리스 이해에 필수적이다
크노소스, 마살리아, 아테나이, 알렉산드리아, 비잔티온……
흑해 연안에서 스페인 남부까지, 11개 도시국가의 흥망성쇠로 읽는
매력 넘치는 고대 그리스 문명사
“시공간을 통한 생각의 확장은 깊은 즐거움을 준다.” _샬럿 히긴스, 가디언
“보기 드문 걸작, 설득력 있는 역사서.” _피터 스토타드, 월 스트리트 저널
11개 폴리스의 흥망사를 신화, 전설, 고고학적 유물, 고전사료 등을 바탕으로 서술
고대 그리스가 현대 서구문화에 끼친 영향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크다. 그들 없이는 현대의 미술은 물론이고 건축, 신화, 문학, 철학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책은 고대 그리스의 11개 주요 도시국가들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저자 폴 카틀리지는 그리스어가 사용된 초기 기록에서 출발해 고전기와 헬레니즘기의 영광을 거쳐 비잔티움 제국의 건설에 이르기까지의 주요 사건들을 다룬다. 저자는 고대 그리스 문명사라는 복잡하고 다양하며 도전적인 주제를 단순화하거나 단조로워지는 함정에 빠지지 않고 어렵지 않으면서도 고무적으로 소개한다. 그리스 역사와 문명은 인종적·시대적으로 매우 광범위해서, 기원전 1400년경 크노소스에서 발견된 초기 그리스어 문서부터 기원전 330년경 콘스탄티노폴리스(이전의 비잔티온)를 기반으로 한 비잔티움 제국 수립까지를 다룬다. 또한 이 책에서 선별해 다루는 도시들의 역사는 그리스 세계를 가장 잘 설명하는 중요한 주제들을 조명하는 데 다양하게 활용될 수 있는데, 거기에는 정치, 교역, 교통, 노예, 성, 종교, 철학, 역사, 주요 인물들의 역할 등이 포함된다.
폴리스들이 그리스라는 큰 무대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그린 독창적인 통사
이 책에서 저자는 11개 폴리스의 역사를 그저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각 폴리스가 그리스라는 큰 무대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묘사함으로써 하나의 독창적인 통사를 그려낸다. 특히 기존 역사서에서는 별로 등장하지 않은 남프랑스의 마살리아(오늘날의 메르세유)를 다루며, 고대세계에서 중세, 근대로 이어지는 비잔티온(오늘날의 이스탄불)을 다룬 것도 특징적이다. 시대적으로나 지리적으로 기존 서술보다 훨씬 넓은 범위에 걸쳐 고대 그리스 세계를 그리고 있는 점도 특징적인데, 여기에는 덴마크의 모겐스 헤르만 한센 등에 의한 ‘코펜하겐 폴리스 프로젝트’를 비롯한 근래의 새로운 연구동향이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다.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고대 그리스가 근대 서구와는 결정적으로 상이한 ‘타자’라고 주장하고, 서구중심주의적인 가치관을 고대 그리스에 투영하는 것에는 무리가 따른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또 정치적 논의의 ‘개방성’이야말로 고대 그리스인이 현대인들에게 남긴 유산이라고 강조한다.
책 속으로
실제로 폴리스는 고대 그리스어 문헌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명사 중 하나다. (…) 이 말에는 최대 네 가지의 다른 의미가 있는데 그중 두 가지인 ‘도시’(‘도시의 중심지’라는 의미에서)와 ‘도시국가’가 가장 중요하다. 내가 이 프로젝트에서 집중한 것은, 인구 대부분이 도시나 중심지가 아닌 시골이나 마을(코라khora 혹은 외곽)에 살고 있었다 하더라도 고대 헬레니즘을 활발하게 움직였던 사람들은 폴리스(최선의 번역어는 ‘도시국가’일 것이다)라는 정치 공동체의 명실상부한 일원이었다는 점이다. (19쪽)
처음부터 분명히 해둘 것이 있다. 고대에 ‘그리스’라는 도시국가는 없었다. 다만 그리스 도시들과 여타 공동체들이 종교적이라 할 수 있는 방식을 통해 표현된 공통 문화로 연결되어 있었다. (20쪽)
호메로스의 세계가 지속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것이 시인들의 다양한 상상력에서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기원전 1200년에서 700년까지 500년간 구전 형식의 전통을 만들고 다듬어 다양하고 장황한 구전을 두 편의 기념비적인 서사시로 만들었다. 그렇다면 이를 호메로스로 알려진 천재적인 작가 한 사람의 창작물이라 할 수 있는가? 아니면 두 명의 결합일까? (44쪽)
프로방스 해안의 몇몇 도시들은 이름만 봐서는 그리스 기원임을 알 수 없다. 앙티브(Antibes)는 원래 안티폴리스(‘반대 도시’)였고, 니스(Nice)는 그리스 승리의 여신 니케(Nike)의 이름을 딴 니카이아였다. 가장 놀라운 것은 마르세유인데, 옛 이름 마살리아는 그리스어가 아닌 페니키아어로 ‘정착지’라는 뜻이다. 기원전 600년경 밀레토스에서 탈레스가 명성을 떨치고 있을 무렵, 밀레토스와 함께 이오니아에 속해 있던 포카이아(현재 터키 서부의 포싸)의 그리스인 한 무리가 이곳에 와서 정착하기로 결정했다. 마르세유의 역사는 이 결정과 함께 시작된다. (81∼82쪽)
기원전 480년 그는 육로와 해로로 대규모 원정을 떠났는데 이는 헤로도토스의 주요 주제가 된다. 헤로도토스는 그리스인들의 치부도 여과 없이 드러냈다는 점에서 인정받는데, 그에 따르면 페르시아에 대항해 싸운 그리스인들보다 페르시아 편에서 싸운 그리스인들이 더 많았다고 한다. (104쪽)
몇 년이 지나자 낙소스와 같이 어느 정도 힘이 있던 도시국가들은 아테나이가 권력을 남용한다고 생각하고 동맹 탈퇴를 원하며 반기를 들었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 동맹에 남을 수밖에 없었고 반기를 든 대가만 치르게 되었다. 그로부터 ‘아테나이 제국’에 대한 논쟁이 불붙게 되었다. 과연 제국이 민주적일 수 있는가? 다시 말해서, 민주정이 제국을 효과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가? (124쪽)
‘너 자신을 알라(Gnothi seauton)’는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에 새겨진 유명한 경구 중 하나다. 델포이는 고대 그리스 세계의 영적 ‘배꼽’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이 경구를 따를 가장 중요하고도 흥미로운 방법은 (…) 그리스인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을 알려고 하는 것, 최소한 그들의 사회문화 풍속을 완벽히 설명할 필요는 없더라도 이해하는 것이다. (…) 정치는 우리에게 익숙한 자유로운 서구 문화의 관념과 매우 다르더라도 이해 과정에 필수적인 요소다. (211∼21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