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는 어떻게든 해보고 싶지만 아무리 해도 안 되는 일들이 종종 있다.”
천재, 우정, 승리 따위 없는 소년만화 속 바보들의 ‘이유’를 찾는 노정
18전 4승 14패. 프로기사를 목표로 어릴 때부터 장기를 둬온 다카이라 슌(17세). 여태껏 장기 하나만 두고 살아온 외골수 인생이었음에도 이번 3단 리그에서 장려회 꼴찌를 기록한다. 프로 장기기사를 양성하는 ‘장려회’는 각 현에서 가장 실력 있는 학생만 들어올 수 있는 기관이지만 골목대장들끼리 모이면 강함에 따라 실력자는 다시 갈리는 법. 열심히만 하다보면 프로가 되는 날은 저절로 올 줄 알았던 다카이라는 프로는커녕 한 번만 더 저런 성적을 받았다가는 단수가 내려갈 지경에 처한다.
“저는 강해지고 싶어요!”
“강해져서 뭘 어쩌려고?”
“프로가 되고 싶어요!!”
“아무도 너희에게 프로가 되어달라고 한 적 없는데?” _022p
그러나 세상은 어찌나 냉정한지 다카이라를 응원해주는 사람도, 그가 프로가 되길 바라는 사람도 없다. 냉정하지만 당연한 현실 속에서 다카이라는 ‘왜 프로가 되어 싶은지’라는 물음의 이유를 찾는 것부터 다시 시작한다.
“너에게 저주를 하나 걸어줄까.”
“저주?”
“그래. 평생 장기만 두게 되는 저주.” _003p
평생 장기만 두게 되는 운명은 누군가에게 받은 저주일까, 자신이 택한 결정이 될까. 바보 같지만 누구보다 진지한 소년이 자신만의 이유를 찾는 노정 속에서 알 수 있을 것이다.
다카이라와 함께하는 열등감 폭발 도련님 나쓰메(17세), 재수없는 의대생 사코(23세), 상냥한 현실주의자 마키노(23세)까지, 네 바보들이 갖고 있는 가지각색의 사연도 차차 등장한다. 프로가 될 수 있는 것은 반년에 단 두 명뿐으로, 이들이 나란히 사이좋게 프로가 되는 그런 훈훈한 이야기는 있을 수 없다. 꼴찌는 다카이라지만 저명한 장기 기사의 손자인 나쓰메가 느끼는 부담감, 규정 연령 전에 프로가 되지 못하면 탈퇴당하는 장려회 규칙 때문에 사코와 마키노가 느끼는 초조함은 서로에게 완전히 마음을 허락할 수도 없는 복잡한 우정을 보여준다.
소년만화의 주요 소재인 천재, 우정, 승리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럼에도 『어느 바보의 일생』가 소년만화인 이유는 천재도 아닌 이 바보들이 ‘어떻게든 해보고 싶지만 아무리 해도 안 되는 일’을 어떻게든 해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