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인생을 제안하는
국가 거대 프로젝트가 펼쳐진다!
또다른 삶이 가능하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당신에게 두번째 삶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 선거캠프 금융 담당 특별고문
모건스탠리 임원 출신 작가 베르나르 무라드의 소셜 픽션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모두 지워버리고 전혀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다면, 두번째 삶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떨까? 개인의 노력과 별개로 주변 환경이 그대로라면 전혀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에는 한계가 있을 터. 그러나 정말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 수 있도록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한다면? 살던 집과 타던 차는 물론, 직업과 가족까지 바꾸고 완전히 다른 사람의 삶을 이어받을 수 있도록 정부와 미디어가 나서서 모든 절차를 처리하고 지원해준다면?
투자금융사 모건스탠리의 전무 출신, 프랑스 대표 언론사를 소유한 알티스 미디어그룹을 이끌었던, 조금 특별한 이력을 가진 작가 베르나르 무라드가 그의 두번째 소설 『세컨드 라이프―인생을 바꿔드립니다』를 통해 새로운 소셜 픽션을 선보인다. 오늘날 프랑스 젊은 금융인을 대표하는 인물이자, 현 프랑스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의 2016년 대선캠프에서 선거 자금 특별고문으로 활약했던 무라드는 “국가와 사회정의의 현대화”를 명목으로 삶이라는 자원과 기회, 운명을 재분배하려는 국가 거대 비밀 프로젝트를 그려낸다. 그리고 그 프로젝트에 참여한 개인의 삶을 조명하며 행복과 정체성, 인생의 우연과 필연, 정치적 유토피아와 미디어의 절대권력 등에 관한 이야기를 펼쳐놓는다.
국가 권력은 개인의 삶에 어디까지 개입할 수 있을까?
“당신은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나요?” (본문 83쪽)
지독한 삶의 권태와 무기력에 빠져버린 마르크 바라티에. 매일 아침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는 것조차 힘겨운 그의 머릿속엔 삶을 끝내고 싶은 생각뿐, 가족도, 회계 일도 그에게 삶의 활력이 되어주지 않는다. 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쳐도 아무 이유 없이 미소 지을 수 있는 사람들, 매 순간 긍정의 힘으로 가득차 삶을 만끽하는 사람들은 대체 어떤 초인적인 자질을 타고난 것인지 그에겐 늘 의문이다. 그에게 우울과 회한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닌 듯하다. 스무 살 무렵엔 단편소설을 써 소설가가 되고 싶었던 적이 있었지만, 번번이 거절당하자 원고는 오래전 창고에 처박아두었다. 자신의 소설이 인정받지 못한 건 문단의 독단적이고 적대적인 시스템 때문이라는 피해망상 속에서 살아가던 그는 결국 자신의 마흔번째 생일날 자살을 결심한다. 그런데 빗속에 꾸역꾸역 출근을 하고 퇴근 무렵 사무실을 정리하고 떠나려는 순간, ‘구세주’라는 이름으로 메일 한 통이 도착한다.
발신자는 마르크의 계획을 모두 알고 있는 듯하다. 인생을 바꿀 기회가 있으니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기 전 연락을 달라며 ‘두번째 기회’를 제안한 사람, 그는 어떻게 마르크가 누구에게도 털어놓은 적 없던 계획을 알고 메일을 보낸 것일까? 마르크는 결국 최종 선택을 잠시 미루고 그에게 전화를 건다. 그리고 “정부를 위해 일한다”는 그의 기이하고 새로운 제안을 선뜻 받아들이기로 한다. 어차피 포기해버리기로 마음먹었던 삶이었으니.
“아주 간단한 질문 한 가지를 드리죠. 이 지구상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불만족스러운 삶을 살아가고 있을 것 같습니까? 얼마나 많은 이들이 독단적인 우연이 강요한 삶을 못 견뎌하고 있을 것 같은가요?”
난 불완전한 군상의 모습을 막연하게 떠올렸다. 진창 같은 보잘것없는 일상의 변덕에 휘둘리며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 (84쪽)
그에게 메일을 보낸 남자, 대통령이 거느리는 거대 미디어 회사를 위해 일한다는 피에르앙드레 노벨리는 마르크에게 ‘인생을 완전히 바꿔주겠다’고 제안한다. 마르크처럼 자신의 삶을 포기하려거나 인생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어하는 다른 지원자들과 함께 정부 프로젝트의 일환인 리얼리티쇼에 출연해 수백만의 시청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무작위로, 아무런 대가 없이 타인과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는 것. 마르크 바라티에는 자신을 좀먹던 절망과 고통, 공허감 속에서 아주 작게 빛나던 호기심을 발견한다. 그리고 사회적 불평등을 개선하고자, ‘기회의 균등한 분배’를 위해 구상되었다는 이 정부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로 결심한다.
“바꾸는 겁니다, 선생님, 모두 바꾸는 거죠. 당신이 응한다면, 이 실험이 끝난 후 당신의 호적과 그에 귀속된 모든 권리는 다른 사람에게 이양될 것입니다. 여기서 공권력이 개입하는 것이고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실험을 법적으로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죠. 최고 권력을 이용해 공공의 안녕을 실현하는 것입니다!” (88쪽)
티브이 리얼리티쇼에 출연한 열 명의 지원자들은 ‘운명의 수레바퀴’를 돌려 무작위로 삶을 맞교환한다. 그들은 각자에게 주어진 ‘기회’를, 우연을 통해 공평하게 재분배하여 내가 아닌 전혀 다른 사람의 삶을 살아간다. 마르크 역시 완벽해 보이는 새로운 직업, 새로운 신분증, 새로운 아내, 새로운 집에 적응하며 그가 삶을 승계받은 남자 아르노 드몽탈이 되어간다. 그리고 모든 것이 뒤바뀐, “잘 짜인 한 편의 멋진 소설 같은 삶”에 다시 한번 희망을 걸어본다. 정부의 첫 ‘실험 대상’이 된 그의 사생활을 일거수일투족 감시하려는 미디어, 변해버린 옛 가족들, 살가운 듯하면서도 어딘지 그늘이 엿보이는 새 딸의 눈빛 등 그가 극복해나가야 할 부분은 전보다 더 많지만, 마르크 바라티에는, 아니 아르노 드몽탈은 자신에게 주어진 두번째 기회를 헛되이 날려보내지 않으려 고군분투한다.
그러나 아르노 드몽탈의 기이한 취미와 그가 감춰온 비밀, 그리고 국가가 감춰온 더 커다란 비밀이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이야기는 전혀 다른 국면에 접어든다. 그는 점차 희미해져가는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자신이 아닌 또다른 자아에 잠식당하지 않으며 자신이 꿈꾸던 “소설 같은 삶”을 이어갈 수 있을까?
책 속에서
그러는 동안 노벨리의 감미로운 목소리가 계속해서 내 머릿속에 울려퍼졌다. 어쩌면 내가 이미 시공간적 방황의 상태로 넘어간 것은 아닐까? 존재의 어느 한 군데에 난 구멍 속으로. 어쩌면 유예 상태의 자살자, 죽은 자이자 동시에 산 자와 같은 내 상태가 이러한 평온함의 경지로 이끈 것은 아닐까? 더이상의 두려움도, 불안도, 아주 사소한 형이상학적 의문조차도 나를 괴롭히지 못했다. 난 이제 자동차 뒷좌석에 내팽개쳐진 아직 온기가 남아 있는 시체나 다름없었다. 어떤 타격에도 상처를 입지 않는 무기력한 몸뚱이에 불과했다. (69쪽)
“모든 국민들은 태어날 때부터 똑같은 성공의 기회를 누려야 한다는 말입니다. 불평등이란 출생의 임의성이나 그와 관련된 사회적·경제적 요인 때문이 아니라, 각자 다른 노력이나 재능이 이유가 되었을 때에만 용인될 수 있는 것입니다. 스포츠에 비유해 얘기하자면, 우리가 결승점에 모두 동시에 도착할 수 없다는 것은 정당하고 공평한 것이죠. 하지만 거기엔 우리 모두가 똑같은 출발점에서 달린다는 조건이 전제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81쪽)
자유주의는 한 가지 근본 원칙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죠. 최적의 자원 분배라는 원칙. (…) 우린 지금까지는 경제에만 적용되었던 이 원칙이 존재론적이고 사회적인 영역에까지 확대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삶이라는 아주 소중한 자원에 시장과 유연성의 규칙을 적용하는 것이죠. 그것이 삶을 최적으로 재분배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요? (84쪽)
“우선 당신이 우리 제안을 받아들인 것을 진심으로 기쁘게 생각합니다, 선생님. 이 기회를 받아들임으로써 국가에 엄청난 공헌을 한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이 놀라운 실험에 동참하기로 결정한 당신과 또다른 선구자들 덕분에 이제 곧, 어쩌면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새로운 삶을 살게 될 테니까요. 기회의 평등이 마침내 실현되는 것이지요. 그리하여 우리의 경제적·사회적 시스템은 더욱 공고해지는 것입니다.” (109쪽)
여전히 나한테는 누군가에게 양도하거나 남겨줄 게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다. 나 자신에 대해 어떤 얘기를 해야 하나? 내 삶의 짐을 떠맡을 가엾은 사람에게 무엇을 알려줘야 하나? 난 상자를 품에 안고 곰곰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사십 년을 살아오는 동안 난 대체 무엇을 하고, 무슨 생각을 하고, 무엇을 만들어냈던 것일까? (121쪽)
난 그가 방금 말한 대로 내가 시작한 새로운 삶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 삶이 내게 선사하는 그 모든 놀라운 혜택에 대해서도. 난 노벨리의 비전에 반박하거나 이견을 제시할 어떤 근거도 찾지 못했다. 그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 그런다고 해도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난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내 영혼을 잠식해가는 고통의 본질을 이해할 수 없을 터였다. (277~278쪽)
“간단히 말하면, 하나의 창작품은 어떤 방식으로든, 심지어 의도하지 않아도 창작자의 신체적, 정신적인 상태를 반영한다는 게 그 사조의 핵심 사상이에요. 그림은 화가의 몸짓을 유도하는 생체 에너지와 더불어, 그림을 구성하는 재료와 색상 자체의 고유한 반응으로부터 비롯된다고 믿는 거죠. 따라서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작품의 원동력이자 의미 자체인 것으로 간주되고요. 작품은 그 순간의 충동에 따라 움직이는 신체의 증거가 되는 셈이죠. 사실 이 모든 것은 초현실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객관적 우연의 개념과도 아주 유사하다고 볼 수 있어요. 하지만 거기에 무의식의 개념이 섞여 있는 거고요.” (29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