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우 맘을 이해해. 얼마나 속상할까?
나도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적이 있어. 내 보물은 말이야…
화창한 날씨가 무색하게 하늘을 뒤흔드는 울음소리. 수도꼭지처럼 눈물을 쏟고 있는 아이는 놀이터 붙박이 정연우다. 하루밖에 가지고 놀지 못했는데 장난감 칼이 감쪽같이 사라졌다나. 걱정 반 궁금증 반으로 연우를 둘러싼 동네 아이들은 칼의 행방에 대해 추측을 늘어놓는다. 그러다 자못 심각한 얼굴로 자신들도 보물을 잃어버린 적이 있다며 그 경험을 들려준다. 목을 세 바퀴나 감을 수 있었던 할머니표 목도리, 달콤한 사탕 냄새가 나던 오리 인형, 주차장에서 데려와 동생 삼았던 고양이, 승부를 내지 못했는데 고장 나 버린 게임기, 비밀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 준 사촌 언니, 나날이 묵직해졌던 돼지저금통, 그리고 엄마…… 한때 가장 가까운 데에 있었지만 저마다의 이유로 지금은 곁에 없는 존재들, 그리고 그것과 함께해서 충만했던 시간들이 아홉 개의 목소리로 펼쳐진다. 이제 아이들은 환상의 팀워크로 장난감 칼을 찾는 광고지를 만드는 데 골몰한다. 단 하루지만 장난감 칼이 연우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헤아리고도 남으니까. 모두의 바람대로 연우는 잃어버린 칼을 찾을 수 있을까? 연우 홀로 힘겨운 일을 겪게 두지 않는 아이들의 깜찍한 우정은 어떤 결말을 맞을까?
잃어버렸지만 잊혀지지 않는 소중한 보물들
손바닥만 한 전단지에 담은 9인분의 희망
“소중한 무언가를 잃어버렸나요?
간절히 기억하고 그리워하고 있다면 잃어버린 것이 아닐지도 몰라요.”_유준재
누구에게나 잃어버린 것이 있다. 잃어버린 것을 찾기 위해 끙끙 앓으며 왔던 길을 되짚거나 결국 찾지 못해 지금 그것은 어디에 있을까 사뭇 골똘해진 적도 있다. 조립로봇 부품이라도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경험은 거듭 쌓여도 무감해지지 않고 수식으로 명쾌한 답을 찾을 수 없는 난제다. 이 책은 내용과 질감은 다를지라도 상실을 겪은 아이들이 마음 깊이 간직한 보물을 꺼내어 그에 얽힌 추억을 다독이고 공감과 우정을 동력으로 희망을 쏘아 올리는 이야기다.
연우와 아이들의 사연을 졸졸 따라가다 보면 수미상관처럼 다시 연우의 잃어버린 칼로 돌아오는데 그즈음엔 “나에게 잃어버린 칼이란 무엇일까?” 자문해 보게 된다. 그리고 한밤중 잠자리에서 그립고 소중한 것들이 아이들을 포근히 감싸 안는 장면에 이르러 모든 것이 하나의 문장으로 수렴하는 것을 목도한다. 되찾지 못할지라도 잊지 않는 한 그것은 나와 언제고 연결되어 있을 거라고. 이따금 마음속 보물을 꺼내어 손때를 묻히고 안부를 묻는 일은 그래서 필요한 것이라고.
실제 아이들의 경험을 하나하나 모아
아기자기한 만화 형식으로 구성한 책
『파란파도』로 볼로냐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로 선정된 바 있는 유준재 작가가 글을,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의 일 년을 담은 『껌딱지 독립기』의 이주희 작가가 그림을 맡았다. 안아 주고 싶을 만큼 귀엽고 여린 사연들이 만발하는 이 책은 장난감 칼을 찾는 실제 전단지에서 출발했다. 의정부 모 아파트 곳곳에 붙은 전단지를 본 순간 분주하게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고 오죽 찾고 싶었으면 이렇게 했을까 안쓰러움이 생겼다는 유준재 작가. 투병 중이던 가족과의 헤어짐이 마음을 어지럽히던 시기였기에 아이들의 간절함이 오롯이 전해지는 전단지는 소중한 것과의 이별이란 질문으로 다가왔다. 단지 분실물이 아닌 ‘상처’를 함의하는 ‘칼’은 이야기의 밑바탕이 되었다. 작가의 아이를 비롯해 동네 아이들은 소재를 제공해 주었다. 작가는 매 장면 새로운 주인공 아이를 등장시켜 제 몫의 이야기를 생생히 들려주는 인터뷰 구성을 택했고, 이주희 화가는 다감했던 추억들을 여러 컷의 만화 형식으로 담아내 재미와 흡입력을 높였다. 규칙적인 리듬과 변주, 적절한 유머와 따스함, 무엇보다 심오한 주제가 말랑말랑 녹아든 이 책의 감동은 순간 휘발되고 마는 것이 아니라 스며들어 번진다. 번지고 부드러운 자국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