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파괴되는 것들
그럼에도 이를 넘어서 전해지는 보편적인 아름다움
『소금 1톤의 독서』는 스가 아쓰코가 읽은 책들에 관한 기록이다. 그중에는 고전으로 평가받는 책도 있고, 비교적 최근에 나온 책도 있다. 책과 작가에 대한 정보, 대강의 줄거리, 그에 대한 감상이라는 서평적 요소에 스가 아쓰코 자신의 인생 경험과 철학이라는 에세이적 요소가 중첩되어 있다. 책과 관련된 그녀의 추억에서 우리는 특정 장면을 함께 떠올리고, 눈앞에 펼쳐지는 유려한 이야기에 귀 기울이게 된다. 어린 시절부터 방에 틀어박혀 책을 놓지 않았고, 학창 시절은 물론이고 엄혹한 전쟁 시기에도 그녀는 항상 책과 함께했다. 이탈리아와 일본, 두 공간을 살아내며 그녀는 타인과 함께하기도 했고, 때로는 세상에 홀로 서서 고독의 시간과 마주했다. 늘 읽고, 쓰고, 이야기하는 삶을 살아가는 그녀의 곁에는 책이 있었고, 이제 그녀의 글은 한 권의 책이 되어 우리를 위로한다.
그녀는 이탈리아에서 서점을 운영하며 책 속에 파묻혀 살았고, (서점의 안주인이 되면 집안 곳곳에 책이 넘쳐나니 눈앞에 놓여 있을 때 읽지 않으면 언제 다시 만나게 될지 몰라요. _스가 아쓰코의 편지 중) 오랫동안 번역을 하며 언어에 대해 고민했는데, 이는 이탈리아와 일본을 오간 그녀의 인생사와 맞닿아 있다. 그녀의 글 곳곳에는 언어 사이를 오가는 번역이라는 일의 모순과 한계, 그럼에도 옮겨 전해져야 하는 언어에 대해 고심한 흔적이 묻어난다. (번역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파괴될 수밖에 없는 것들을 넘어서 시가 전해진다. _「사진의 예감에 이끌려」) 이탈리아 문학 번역가로서, 모국어권 바깥의 체류자로서 그녀는 전해지지 못한 언어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작업에 공을 들였다. 다른 언어와 문화 사이의 교류에서 생겨나는 문화적 생산물에 관심을 보였고, 국경을 넘나드는 언어와 문화의 교차점에서 발현되는 자기완성의 기회와 새로운 고전의 탄생에 주목했다.
종주국이라고 하는 국가들이 이야기를 잃어버린 듯한 지금, 이 작가들이 오래된 언어로 된 이야기를 새로운 수법으로 부단히 이야기해나가는 현상은 (…) 이 또한 하나의 위대한 문화가 다음 문화에 자리를 양보한 시기의 상징적인 문학으로 읽을 수 있다. (_「매혹적인 ‘외국어’ 문학」)
쓸쓸하지만 담담하게, 모노가타리적 글쓰기
스가 아쓰코 특유의 문학성
“황금빛 보리밭에 핀 빨간 양귀비가 꿈같이 아름다웠어요.” 시어머니께 어딘가에서 본 풍경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러면 농촌 출신의 시어머니는 무엇인가 이상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보았다. “망측해라, 양귀비가 피어 있는 보리밭이 아름답다니. 우리에게는 수치야. 그건 잡초에 지나지 않으니까.”
「로렌초의 밤」에 나오는 보리밭을 보면서 나는 시어머니와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농민이 들인 노고의 보람찬 결실인 보리밭에 빨간 양귀비꽃이 피어 있으면 영 체면이 서질 않는 법이다. 이 주변 땅에서 자란 타비아니 형제라면 당연히 그걸 알고도 남았을 터. 그래서, 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 영화는 양귀비꽃 대신에 자신들의 손으로 자유를 고수하려던 사람들의 빨간 피로 보리밭을 물들인다. (_「보리밭에 핀 빨간 양귀비꽃」)
스가 아쓰코는 황금빛 보리밭에 핀 빨간 양귀비가 남이탈리아인들에게는 망측하고 수치스러운 잡초에 불과하다는 시어머니의 말과 나치에 협력하는 무솔리니에 대항해 서투른 총격전을 펼치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을 담담히 배치시킨다. ‘빨강’은 양귀비꽃과 흩뿌려진 피의 연결고리가 되고, 마치 직접 장면을 보는 듯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작가는 영화를 통해 자신이 느낀 전쟁의 시대를 살아낸 이들의 역사성과 깊은 상흔을 모노가타리적 구성을 통해 전달하고 있다. 한 문예평론가는 스가 아쓰코의 글쓰기를 두고 모노가타리적 방식이라 규정했다. 이는 직설적인 감정 표현을 자제하고 특유의 담백한 언어로 절제된 글쓰기를 지향하는 것을 말한다. 어딘지 모를 쓸쓸함에 함몰되지 않고 행간에 스며 있는 삶의 아이러니와 그것을 비집고 나오는 단단함 같은 것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게끔 하는 것은 그녀의 문체적 특성에서 비롯된다.
“침략 전쟁의 기억을 담담한 회한이나
다정한 진혼가 정도로 끝내선 안 된다”
스가 아쓰코의 글이 유려한 수사로 가득 찬 에세이와 결을 달리할 수 있는 것은 역사적 통찰력과 비판력을 겸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곳곳에는 전후戰後의 개인사뿐 아니라 근대사까지 아울러 성찰적 지식인의 자세가 담겨 있다. 십대 무렵에 제2차 세계대전을 겪었고, 1960년대 격동하는 이탈리아 사회에서 좌파 인사들과 어울렸던 스가 아쓰코는 ‘앞서 살았던 사람들의 뼈로 이뤄진 이 대지 위를’ 딛고 서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녀가 전쟁과 파시즘에 대한 비판의 끈을 놓지 않는 문학작품을 읽고 쓴 것이 그 방증이다.
‘야마토는 침몰하지 않는다’라고 배운 대로 굳게 믿고 있는 소녀에게 ‘가라앉지 않는 배는 배가 아니란다’라고 진실을 알려주며 소녀의 밀선을 묵인했던 장교가 그 나름대로의 진심으로 군부를 비판하고 있음을 넌지시 암시하는 설정이다. 비판의 강도가 약해서(그것이 현실 속 일본 ‘지식인’이 할 수 있는 저항의 한계였다고 하더라도) 불만이 남긴 하지만, ‘속았던’ 오키나와 소녀를 개입시킴으로써 명쾌하고 깊은 상징성을 획득하고 있다. (…) 침략 전쟁의 기억을 담담한 회한이나 다정한 진혼가 정도로 끝내선 안 된다. 현재 우리 주변에, 그리고 내면에 그 당시와는 여전히 살아 있는 전체주의나 배타주의와 매일매일 싸우고 있기는 한 건가. (_「『여름 소녀 ‧ 들어라, 바다의 소리를』 하야사카 아키라」
과연 선택과 의지에 따라 인생이 흘러가는 걸까
: 인생에서 잃어버린 것에 대한 애도와 슬픔
독립적인 삶을 꿈꾸며 바다 건너 유럽으로 향했고, 외국인과 결혼한 스가 아쓰코의 삶은 1960년대라는 배경에서 보면 ‘파격적’이었다. 대학을 나와도 결혼하지 않으면 수도원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할 정도로 전쟁 직후 일본 여성들의 삶은 제한적이었다. 그녀의 글에는 자신이 살아온 시대에 대한 회고와 함께 뜻대로 되지 않는 인생 여로가 녹아난다. 그녀는 ‘섬세하지만 심란하지 않게’ 인생에서의 상실과 선택의 무용성을 담담히 이야기한다. 스가 아쓰코의 씩씩한 문장 배후에는 인생에서 잃어버린 것에 대한 애도와 슬픔이 고요히 깔려 있다.
젊은 시절 우리는 모든 것에 대해 자신의 선택이 인생의 갈림길을 결정해나간다고 믿었다. (…) 하지만 인간은 어느 정도 나이가 되면 자신의 선택에 대해 타인에게, 그 자신에게조차 설명하지 않게 된다. 설명하기에는 인생이 너무나도 불합리하게 진행되고 있음을 진저리 날 정도로 깨닫기 때문이다. (_「소설 속의 가족」)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소금 1톤의 이야기’는 스가 아쓰코의 시어머니가 그녀에게 이따금 말해준 것이다. 보통 소금은 요리할 때 조금만 쓰기에 소금 1톤은 어마어마한 양이다. 소금 1톤을 핥는 것만큼 오랜 시간만큼 함께 보내야 어떤 사람을 제대로 알 수 있다는 시어머니의 말씀이 스가 아쓰코에게로 와서 책들과의 관계로 변주된다. 그녀는 좋은 책은 시간이 지나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독자와 오랫동안 함께하면서 성장한다고 믿는다. 읽을 때마다 새로운 것이 고전이라는 이야기처럼 독자의 상황에 따라 달리 읽히기도 하고, 독자의 경험에 따라 이해의 폭도 넓어지기 때문이다. 스가 아쓰코는 소금 맛이 잘 배어든, 세월에도 녹슬지 않은 언어로 수많은 책을 논했다. 그녀가 한 권 한 권의 책들을 매개로 전한 이야기는 우리 마음과 현실에 깊은 울림을 남긴다. 독서는 소금을 집어먹듯 때로는 괴롭지만, 우리 인생의 진정한 맛을 위해 없어선 안 되는 존재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