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상성은 동시를 수직적 상상력으로 끌어올리는 역동적인 도르래다. 임수현은 이완된 언어의 관절에 힘을 불어넣으며 작품의 긴장을 한껏 끌어올리고 있다. 열렬한 독자와 치열한 작품은 미래에서 만난다. 문학동네동시문학상의 의의가 거기에 있다. _송찬호(시인)
● 『외톨이 왕』은 우리가 염원하고 꿈꾸는 세계로 우리를 안내한다. 자신만의 문법으로 질문하고 응답하고 달아나는 마술적 동심 언어를 가진 새로운 시인의 탄생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_유강희(시인)
● 임수현의 동시는 직접음이 아닌 반사음에 가깝다. 위안과 희망에 접속되는 시간을 최대한 지연함으로써, 시적 상황을 더 오래 독자의 내면에 울리게 하는 힘을 갖는다. 자기만의 동시 영토를 확보하려는 모습이 동시 세계에 신선한 자극을 주리라 믿는다. _이안(시인)
외톨이야, 하고 부르면 외톨이가 되는 나라
제7회 문학동네동시문학상 대상 수상작, 임수현 『외톨이 왕』
임수현 시인은 “세상 모든 외톨이 왕들에게” 보내는 초대장으로 책의 문을 연다. 외톨이야, 하고 부르면 외톨이가 되는 나라의 수문장을 자처하며. 이곳에 입장하기 위해서는 “뭉게뭉게 귀 잘린 구름 토끼라든가 욕조를 타고 가는 고양이, 나무에 걸려 있는 셔틀콕” 같은 통행권을 보여 주면 된다. 대단한 걸 하자는 건 아니고, 그저 따끈하게 쪄 낸 술빵이나 뜯으며 외로운 그 마음이 쓸쓸한 주황빛으로 흩어지는 것을 함께 바라보자고 말한다.
임수현의 『외톨이 왕』은 “환상성”을 “동시를 수직적 상상력으로 끌어올리는 역동적인 도르래”로 삼아 시의 긴장을 한껏 끌어올렸다(송찬호)는 평을 받으며 문학동네동시문학상의 일곱 번째 대상을 수상하였다. 그의 안내를 따라 탄력 있는 골조로 지어진 자그만 쉼터로 들어서 보자. 밀림의 나뭇가지들처럼, 어디로 향할지 모르는 팽팽한 장력을 내재한 언어가 우리의 타성을 저 먼 우주로 날려 줄 예정이다. 작은 존재들이 나누는 수줍은 인사,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조용한 파티가 시작된다.
원래는 뭐였는데요?
고양이였어 얼룩 고양이
고양이가
내 새끼발가락을 살살 잡아당기지 뭐야
올이 풀리더니 복숭아뼈가 풀리고 무릎이 풀리고 배꼽이 풀리더니 까르르
웃음소리도 풀려 버렸어
고양이는
동그란 실뭉치를
돌돌 굴리며 다시 나를 뜨기 시작했어
-「고양이 뜨개질」 중에서
고양이가 살살 풀었다가 돌돌 뭉친 뒤에 다시 뜬 ‘나’는, 그전의 나와 같은 존재일까 다른 존재일까. 길어졌다 짧아지는 코(「코가 점점」), 바짝 말랐다 살아나는 지렁이(「지렁이를 부탁해」), 가죽처럼 질긴 울음소리와 다리를 숨기고 있던 물소(「달려라 소파」), 지느러미가 나오고 물고기가 될 때까지, 삼십 년 아니 오십 년이 걸릴지도 모르는 시간을 눈을 감고 기다리는 작은 도토리(「퐁당퐁당 도토리」). 동시집 곳곳에는 물리적인 질서와 무관하게 모습을 바꾸는 존재들이 등장한다. 맨발에 작살로 사냥을 하던 때로부터 지금까지 아득한 시간을 가로질러, 사바나 초원에서 도시 어느 거실까지 광활한 공간을 달려 눈앞에 맞닥뜨린 존재들은 강렬한 만남의 쾌감을 선사한다. 동시에 내가 어디로부터 왔는지에 대해 상상하게 한다.
메아리는 아주 작고 귀엽게 생겼더래요
갈래머리를 하고 땡땡이 반바지를 입고 있더래요
작은 새가 전한다. 메아리를 본 적이 있는데 아주 작고 귀엽게 생겼더라고. 갈래머리를 하고 땡땡이 반바지를 입고 있더라고. 작은 새의 깃털같이 가벼운 목소리를 알아들은 뒤에 우리에게 전하고 있는 이 아이는 어디에서 왔을까.
새싹처럼 돋아난 손가락을
입 속에 넣어 보고 요리조리 빨아 봤어
아, 짭짤해
멀리서 배꼽을 타고
접시를 닦으며 흥얼거리는
엄마의 노랫소리
발을 동동 구르며 헤엄쳐
바다 저 밑
알록달록 산호초 사이
예쁜 눈을 주웠지
돌 틈에서 빨간 심장도 얻어 왔어
—「내가 아주 작았을 때」 중에서
아이는 놀랍게도 자신이 기원에 대해 노래한다. 손가락을 빨아 보며 놀고, 예쁜 눈과 빨간 심장을 주워 스스로 자신을 완성한다. 빨간색의 심상은 동시에 「눈 빨간」 「상상사전2」-신호등, 「뭉게뭉게 구름 토끼」 등의 시들을 통해 아이에게 사고처럼 닥친 결핍과 아픔을 상징하기도 한다. 실수로 싹둑싹둑 토끼의 한쪽 귀를 잘라 버렸고, 빨간약을 찾으러 갔지만 짝짝이 귀는 울음을 그치지 않았고, 얼른 “눈이 빨개진 엄마 토끼를” 오려 주자 하늘로 뛰어갔다는 이야기는 늦여름의 석양과도 같이 뭉클한 감정의 파고를 몰고 온다. “갸우뚱 기우뚱” 뛰는 모습이 오랜 잔상으로 남는다.
따뜻한 코코아를 타 놓고 어서 오렴
두 손 벌려 반겨 주는 곳이야
아이는 자신의 몸과, 엄마의 엄마의 엄마로부터 축적된 이야기, 꿈속과 꿈 바깥이 이어진 세계를 몽땅 데리고 우리에게 왔다. 남윤잎 화가의 보드라운 필치가 그 세계를 따스이 감싸 안는다. 새로운 눈으로 포착한 일상의 장면들도 평범하지만은 않다. 배가 아파 학교에 못 간 날 예정에 없던 방문자의 초인종에 가만히 숨죽인 순간(「10초 고양이」)이나 낯설 만큼 깜깜한 어둠을 한 발 한 발 걸으며 “키키 큭큭” 웃던 밤에 반짝, 반딧불이를 만나는 순간(「여름 캠프」), “팔 하면 팔/ 다리 하면 다리를” 내놓으며 엄마와 목욕하는 순간(「동글동글」) 등은 쨍하고 독특한 인상으로 각인된다.
함께 놀고 싶은 유쾌한 친구, 버들치든 새든 뭐든 담긴 항아리, 눈을 감아도 보이는 그곳으로 데려다줄 열차, 가장 오목하고 가장 어두운 곳에서 나를 기다려 주는 민들레 하나인 이 아이는, 그저 자기는 외톨이 나라의 수문장이라고만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