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처럼 피어서 꽃이 되고
산문처럼 펼쳐져 돗자리가 되는 글
김용택 시인의 글 『나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면, 좋겠어요』를 펴낸다. 이 책이라 하면 일단은 징검돌과 같다 하겠다. 우리로 하여금 건너가야 할 여러 순간마다 안전하게 안도하여 발을 밟게 하는 단단하면서도 평평한 그 돌과 같다 하겠다. 이 책에 실린 글은 그 징검돌로 오갈 수 있는 시와 산문 사이라 하겠다. 어느 순간은 시처럼 피어서 꽃이 되는 글이라 하겠고, 또 어느 순간은 산문처럼 펼쳐져 돗자리가 되는 글이라 하겠다. 이 책에 실린 글은 그 징검돌로 오갈 수 있는 일기와 편지 사이라 하겠다. 어느 순간은 일기처럼 꼿꼿하니 나무가 되는 글이라 하겠고, 또 어느 순간은 편지처럼 다정해서 아내와 딸이 되는 글이라 하겠다. 이 책에 실린 글은 그 징검돌로 오갈 수 있는 전화와 문자 사이라 하겠다. 어느 순간은 전화처럼 솔직하니 사랑도 고백하게 하는 글이라 하겠고, 또 어느 순간은 문자처럼 은밀하니 사랑도 삼키게 하는 글이라 하겠다.
세상에 이런 글이 다 있다니! 그런데 정말 이런 글이 여기 다 있다. 그리 말할 수 있는 자신감의 근저에는 평생 “나는 끝까지 어리다”라 말해온 김용택 시인의 변치 않은 동심이 시심으로 뚝심 있게 매 페이지를 채우고 있음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어서다. 그래 그 눈. 그러니까 김용택 시인만의 그 눈.
그는 매순간 보는 사람이다. 그는 제 생각 이전에 제 봄을 우선에 두는 사람이다. 보는 그대로 말하고 말한 그대로를 따르는 사람이다. 생각한 대로 말하려 할 때 끼는 불순물 그대로를 끝내 분출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곧이곧대로, 그 말을 몸으로 보여주는 예는 일견 자연뿐이라 할 때 김용택 시인은 그 자연 속으로 빠르게 스밀 줄 아는 사람이다. 자연 속으로 들어가 자연을 보고 자연을 듣고 자연과 말하고 자연과 다투고 자연과 화해하고 자연을 쓰다듬고 자연에게 멀어졌다 다시금 자연스럽게 자연으로 들어가 자연 앞에서 침묵하는 일로 자연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다.
그 깊은 과정을 스리슬쩍 담아내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책이다. 내용에 어려움이 없고 문장에 막힘이 없으며 사유에 복잡함이 없고 말씀에 가르침이 없는 이 책은 시인 김용택의 집에, 시인 김용택이 산책하는 길에, 시인 김용택이 만나는 사람들에, 시인 김용택이 만나는 자연에 CCTV라도 설치해둔 듯 일단은 너무도 솔직하고 놀랄 만큼 생생한데 그의 그런 일상을 엿보며 문득 나의 일상을 반추하는 나를 발견하게 될 때 우리는 앞서 말한 어떤 사이라 할 때의 징검돌을 다시금 재확인하게도 되는 것이다. 그를 보느라 글의 징검돌을 건넜는데 내가 보이는 일. 그렇게 나로 하여금 나를 만나게 하는 글의 주인이 시인 김용택일 터.
나이 칠십을 넘어서도 시인 김용택은 늘 새롭다 한다. 그가 새롭다 할 수 있는 데는 그 새로움을 발견하러 다니는 그의 부지런함에 기인한 바 클 것이다. 그 발견의 구덩이마다 그는 불쑥 뛰어든다. 거기서 혼자 놀다 나올 때면 해는 떴다 져 있고 계절은 왔다 가 있고 배는 불렀다가 꺼지고 아내는 어느 틈엔가 나이가 들어 있고 딸은 어느 틈엔가 자라 있어 그는 토끼같이 둥근 눈을 더 크게 뜬 채 두리번거린다. 그 눈 가득 호기심이야 이루 말할 수 없는 깊이다.
글에도 자주 등장하는 시인 김용택의 딸 김민해가 그림을 그렸다. 글과 그림이 묘하게 닮아 있는 데는 서로가 서로의 결을 빼닮아서일 거다. 욕심이 없고 잘 버리고 그러나 곧고 그리하여 심플하다. 나무라 비유해볼까나. 만만한 게 나무인 줄 알았는데, 내 아는 게 나무라 여겼는데, 만만치 않은 게 나무임을, 세상 어떤 나무도 간단치가 않음을 알게 한 이 책의 힘은 한 구덩이 속 제자리에서 평생을 사는 나무의 그대로 거기 있음, 가면 늘 거기 있음의 묵묵함에서 또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게나, 이 쉬운 게 그렇게나 어렵다는 얘기일 거다. 나무가 되지는 못하더라도 나무를 보게는 하는 책, 시인 김용택을 좇아보니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