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에 대해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
공부한다는 것은 가장 먼저 자기 자신의 노력에 의지해야 한다. 그래서 스스로 수양하고, 스스로 깨닫고, 자득하고, 스스로 반성하고, 스스로 새로워지고, 스스로 살피면서 찾고, 스스로 체득한다는 여러 주장들은, 비단 아주 오랫동안 전해 내려온 가르침일 뿐만 아니라, 실제로 체현되는 경우도 흔히 보인다.
공부의 효율이 서로 다른 것은 공부법의 차이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된 우수한 학습법은 응당 제153항의 “배우고 익히기學習”를 꼽아야 할 것이다. 『중용』 제20장의 “널리 배우고, 자세히 따지고, 신중하게 생각하고, 분명하게 판단하고, 충실하게 행하라”1라는 표현에 근거해 보면 “널리 배우고 분명하게 판단하고”까지의 네 구절은 과학적 요소를 함축하고 있다. 이른바 ‘널리 배운다博學’는 것은 관찰과 실험의 뜻이 있다. 연구 주제에 대해 두루 믿을 만한 자료를 수집하여 사용하면서, 그중 자연스레 도출되기 쉽지 않은 자료에 대해서는 인위적인 처리를 가해서 결과 도출을 촉진하여 연구에 사용하는 것이다. ‘자세히 따진다審問’는 것은 분석, 종합, 분류, 비교 등의 방법으로 처리한다는 의미가 있다. ‘신중하게 생각한다愼思’는 것은 사유를 통해 처리한다는 의미다. 즉 가설을 추리하고 상상하는 등의 방법을 말한다. ‘분명하게 판단한다明辨’는 것은 결론을 내리는 일이다. 제89항의 “청대 학자들의 학문하는 방법淸代學者治學方法”은 객관적인 고증을 중시하고, 더 나아가 상술했던 학습법들을 더욱 구체화시켜준다.
학문함에 있어서 성취가 있고자 한다면, 전적으로 제120항에서 말한 “전심전력 정신을 집중하기專精”에 의지해야만 한다. 유가의 책에서, “동중서가 『춘추』를 읽을 때, 전심전력 『춘추』에 정신을 집중하면서 다른 것에 뜻을 두지 않다보니 3년 동안 채마밭에조차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고 한 일화가 비록 사리에 완전히 맞는 것이 아니고, 그 표현도 과장되었지만 정신을 집중했었다는 점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전심전력 정신을 집중하기”와 상대되는 것이 “두루 배워 많이 알기博學”다.
전심전력으로 공부하려는 이들을 위한 고전
제121항의 “전심전력 한 가지에 정신을 집중하기와 두루 배워 많이 알기專精與博學”에서, 후스는 학 분야의 학문에 천착하는 전문가들은 대부분 다른 분야에도 두루 능통하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즉 전심전력 집중하는 것이 두루 많이 아는 것에 손상을 가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교육의 목적은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의 사물이 모든 사물이고 모든 사물이 하나의 사물임을 깨닫게 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전심전력 정신을 집중한 결과, 제90항에서 말하는 “깊이 파고들어가기深入”가 가능해진다. 이른바 “깊이 파고들어가기”란 주희가 말한 “책을 읽다가 견해를 갖췄다 해도, 그것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기에 그것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 그 견해를 옆에 미뤄두고 더 책을 읽다보면 새로운 견해가 나오기 마련이다. 만약 한 가지 견해에만 집착하면 자신의 마음이 자신의 그 견해에 뒤덮이고 만다. 오로지 많은 책을 읽어야만, 서로 계발시켜주면서 매사에 지극한 부분까지 궁구할 수 있다”란 의미다. 제136항의 “날마다 새로워지기日新”도 바로 이러한 의미다. 정이程頤는 “군자의 학문은 반드시 날마다 새로워야만 한다. 날마다 새로워진다는 것은 날마다 발전한다는 뜻이다. 날마다 새로워지지 않는 자는 반드시 날마다 퇴보할 수밖에 없다. 발전하지 않으면서 퇴보하지 않는 자는 없었다”라고 말했다. 왕수인은 제37항의 “앞으로 나가지 않으면 퇴보다不進卽退”에서 “사사로운 욕망은 나날이 생겨나는 것이 마치 땅에 쌓이는 먼지와 같다. 하루만 쓸어내지 않아도 바로 한 겹이 쌓인다”라고 여겼다. 전심전력 정신을 집중하는 자는 장소도 가리지 않고 때도 가리지 않고 일도 가리지 않는다. 제142항의 “어디서라도 배우기隨地爲學”에서 여조겸은 이를 “학자는 비단 강의와 토론을 통해 학문을 시작할 뿐만 아니라, 길거리에서 돌고 도는 말도 들어보면 구구절절 모두 귀담아 둘 부분이 있고, 미천한 하인이나 몸종을 살펴봐도 모두 배울 면이 있다”라고 표현했다. 또 제145항의 “언제든 배우기隨時爲學”에서 육세의는, 바야흐로 천하가 어지러워지다보니 사람들 중 어떤 이들은 학문할 여가가 없을까 저어했지만, 사실 천하는 저절로 어지러워졌고, 자신의 마음은 스스로 다잡는 것이며, 현자라면 바로 이러한 난리가 난 곳에서도 응당 최선을 다해 학문을 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또 제144항의 “무슨 일에 대해서든 배우기隨事爲學”에서 오징吳澄은, 성현이 사람을 가르칠 적에 각기 자신이 하는 일에 맞춰 힘을 기울였고, 그렇게 힘을 기울인 결과, 그 어떤 일에도 완벽하지 못한 경우가 없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왕수인은 제42항의 “결과를 따지지 않기不問結果”에서 이렇게 말했다. “뜻을 확고히 세워 열심히 공부하는 것은 마치 나무를 심는 것과 같다. 처음 뿌리에서 싹이 날 땐 아직 줄기가 없다. 줄기를 갖췄어도 아직 가지가 없다. 가지나 난 뒤에 잎사귀가 자라고 잎사귀가 자란 뒤에야 꽃이 피고 열매가 열린다. 당초 뿌리를 심을 때는 그저 잘 심고 물을 주는 것만 신경 써야지, 가지를 떠올리거나 잎사귀를 떠올리거나 꽃을 떠올리거나 열매를 떠올려서는 안 된다. 그런 것들을 떠올려봤자 무슨 보탬이 있겠는가! 그저 잘 심으려는 노력을 잊지 말아야지, 어찌하여 가지나 잎사귀,
꽃, 열매가 없을까봐 걱정한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