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코 모레티는 문학사 연구에 있어 위대하고 상징적 인물이다. 종종 언급되듯 모레티의 담론은 움베르토 에코에 비견되는 섬세함과 예측불가능성을 지닌 것으로 평가받는다. _가디언
프랑코 모레티는 계량적 역사학, 지리학, 진화론이라는 서로 다른 분과학문을 결합해 문학사에 관한 전례 없이 참신한 접근을 시도한다. _뉴욕타임스
프랑코 모레티의 『그래프, 지도, 나무』는 강력한 지적 자극을 품은 매혹적인 작품이다. 연구하는 분야는 다르지만 문학의 도전에 응대하고 싶은 한 사람으로서 모레티의 성취에 찬사를 보낸다. _알베르토 피아차(이탈리아 토리노 대학 교수)
대중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문학평론가는 드물다. 그건 문학을 다루는 방식 자체에 의문을 던지기로 작심한 사람이 드물기 때문이다. _타임스 문예부록(T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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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한 찬사와 비판을 동시에 불러일으킨 프랑코 모레티의 문학사 연구
정전이 문학사 전체에서 발표된 작품의 1퍼센트 정도라면,
문학사에서 잊힌 혹은 읽지 않은 나머지 99퍼센트의
방대한 작품을 포함하는 문학 연구를 어떻게 진행할 것인가
이탈리아 출신의 영문학자이자 전 스탠퍼드 대학교 영문학과 교수인 프랑코 모레티는 문학사 연구 분야의 독보적인 학자다. 그는 19~20세기 세계문학사, 독서사, 소설과 내러티브 이론 분야에서 폭넓은 시야와 심도 있는 분석을 제시해왔다. 특히 모레티 연구의 가장 독특하고 중요한 점은 문학사 연구에 정량분석을 도입․적용한다는 것이다. 『그래프, 지도, 나무』에서 프랑코 모레티는 계량사학에서 그래프를 지리학에서 지도를, 진화론에서 계통도를 끌어와 방대한 문학사를 정리하는 ‘과학적인’ 방법론을 펼쳐 보인다.
『그래프, 지도, 나무』는 몇 권의 정전으로만 나열되는 문학사 해석에 반대하며, 살아남은 몇 권의 정전으로 장르 전체를 규정하는 식의 문학사 연구에 도전한다. 정전은 세계 문학사 전체에서 발표된 작품의 약 1퍼센트에 지나지 않으며, 나머지 99퍼센트의 작품을 포함해 다시 정리되어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렇다면 99퍼센트의 문학을 어떻게 파악하고 체계화할 수 있을까. 간학문적 데이터를 활용한 정량분석이 필요한 이유다.
몇몇 장르들은 형태학적으로 좀더 중요하거나 좀더 인기가 있거나, 혹은 둘 다일 것이다. 이 부분에 관해 좀더 설명할 필요는 있겠지만, 그 장르가 현존하는 유일한 장르인 것처럼 설명하는 식은 곤란하다. 이론들은 소설 장르를 하나의 대표 형식(사실주의 소설, 변증법 소설, 로맨스, 메타 소설……)만으로 정교하게 환원시켜왔다. 이 환원으로 인해, 위의 이론들은 우아함과 권위를 얻었지만, 문학사의 10분의 9가 사라졌다. 너무 많다. _본문41~42쪽
그래프에서 문학사를, 지도에서 문학과 사회의 관계를,
진화의 나무에서 문학 장르의 분화를 살펴보다
문학 장르를 집적화해 살펴보기 위해 모레티는 ‘멀리서 읽기distant reading’라는 방법론을 제시한다. ‘멀리서 읽기’는 문학연구 대상과 거리를 두고 의도적으로 추상화해 멀찍이 독해하는 방식이다. 그렇게 연구 대상을 바라봤을 때 그 형태, 관계, 구조, 형식, 모델 간의 상호연결성을 조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제1장 그래프’에서 모레티는 18세기부터 20세기까지 영국, 일본, 이탈리아, 스페인, 나이지리아에서 신간 소설이 발간된 추이를 살핀다. 소설이라는 장르가 발흥한 시차는 있지만 그래프가 나타내는 추이는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다. 이는 근대 문물으로서의 소설이 유럽의 전유물이 아니라 나름의 역사를 통해 각 지역에서 개별적으로 발전해왔다는 것을 뜻한다. 이로써 영미문학 중심의 문학사가 아닌 모든 지역을 포괄하는 비서구적, 탈중심적 해석의 문학사로 변환될 수 있다.
모레티는 또한 1740년부터 1900년 사이의 영국 문학 장르를 다룬 연구 100여 건을 살펴본 끝에 30년의 시차를 두고 44개의 장르가 나타난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장르의 등장과 소멸에 나타나는 일정한 주기와 리듬은 일정한 패턴을 그려내면서 개별 장르들의 명멸이 거대한 문학사의 한 주기임을 알려준다.
‘제2장 지도’에서 모레티는 더욱 독특한 방법론을 시도한다. 바로 지도와 지리학을 활용해 작품의 내러티브를 파악하는 것이다. 예컨대 모레티는 ‘촌락 서사’에 속하는 영국 작가 메리 밋퍼드의 『우리 마을』 속 생활공간과 지형의 변화에 따른 원형의 다이어그램을 통해 내러티브를 분석하는 한편, 기존의 목가적인 삶에서 새로 생긴 방적공장에 의한 노동의 분화와 도시들 간의 위계, 책이나 신문과 같은 신문물의 유입에 따라 지형학적 변화를 띠는 양상을 다이어그램으로 도해하여 파고든다. 다시 말해, 모레티에게 있어 지도는 특정한 사회적 세력이나 산업이 등장하고 쇠락하며 그 가운데 삶이 양식이 변화함을 보여주는 지표로서의 도구인 것이다.
기존의 문학사에서 밝히기 어려웠던 문학 장르의
반복과 패턴을 꿰뚫는 새로운 접근법!
마지막 제3장에서 모레티는 다윈의 진화의 나무 모형을 통해 장르가 어떻게 분화했는지 살펴본다. 그는 영국 추리소설을 예로 들어 ‘가지치기’를 해나간다. 실마리가 있는지, 작품 속에 숨겨두었는지 드러나는지, 실마리를 해독할 수 있는지의 여부에 따라 어떤 작품이 독자의 선택을 받아 살아남고 어떤 작품은 그렇지 못했는지 살펴보고 이를 통해 추리소설이라는 장르가 어떻게 세분화되어갔는지를 파악한다. 번역자인 울산과학기술원의 이재연 교수는 그가 진화생물학의 개념인 계통수(나무)까지 끌어온 것은 “문학사에서 잊힌 99프로의 비정전을 포함하는 문학사를 써야 한다는 모레티의 주장이 단지 문학사의 복원 차원이 아니라, 장르라는 생명의 탄생과 진화를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웅변하고 있는 듯하다”라고 분석한다.(「프랑코 모레티의 세계문학론 비판―매체론의 관점에서」, 『비교문화연구』, 2017)
프랑코 모레티는 책의 말미에서 독일의 시인 노발리스의 “이론은 그물이다. 그리고 그물을 던지는 자만이 물고기를 잡을 것이다”라는 말을 인용한다. 모레티의 독특한 문학사 연구 방법론은 그물로 물고기를 잡아 올리는 방식 자체에 의문을 던지며, 꼭 그물 외에 다른 방법은 없는지 우리에게 되묻는 듯하다. 그가 펼쳐 보이는 새로운 방법론과 제안을 통해 방대한 문학장을 탐사할 더 세밀한 도구들을 갖게 될 것임이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