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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나온 책 Book

다산과 강진 용혈

저자
정민
출판사
글항아리
발행일
2020-06-29
사양
304쪽 | 140*200 | 무선
ISBN
978-89-6735-795-5 93900
분야
역사
정가
18,000원
신간안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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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년 전 천책 스님이 머문 이후 폐허로 변했다
200년 전 다산이 용혈을 다시 호명했지만, 잡초에 파묻혔다
200년이 지나 이 책을 통해 용혈이 다시금 되살아난다

·승려 아암 혜장과 만나 천주교에서 불교의 세계로 이끌리다
·다산이 직접 발굴하고 재조명한 고려 8국사는 어떤 인물들이었을까
·『만덕사지』와 『동문선』으로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강진 용혈

이 책은 두 개의 이야기가 200년의 시간 간극을 두고 각각 600년 전 고려, 800년 전 고려로 거슬러 올라가 나란히 펼쳐진다. 전자는 처음 발굴했다는 의미에서 탁월했다. 후자는 800년 전 인물과 200년 전 인물을 동시에 만나면서 둘의 이야기를 중첩시켜 전개하기에 의미 깊다. 전자는 다산 정약용이고 후자는 저자 정민이다. 정민 교수는 다산의 오랜 연구자로서 이 책을 통해 다산의 면모를 더 환히 밝히면서, 역시 다산과 마찬가지로 800년 전의 고려 불교 성지에 마음을 빼앗긴다. 다산이 이정 등의 제자들과 600년 전 자료를 발굴했다면, 저자는 200년 전 다산의 자료를 발굴해 다산이 거슬러간 시간을 그대로 되밟고, 또 다산이 잘못 밝힌 것까지 바로잡았다. 이것은 어떻게 가능했던가. 바로 그 인물에게 끌려 들어갔기 때문이다. 시간을 초월한 그 세 사람의 만남으로 인해 고려의 사라진 역사가 곧 드러난다.


다산, 유배지에서 고려 불교의 자취에 이끌리다

오랫동안 다산 관련 자료를 발굴하고 연구해온 정민 교수는 근년에 강진을 중심으로 다산과 교유관계를 맺었던 이들의 자료들을 새롭게 발굴함으로써 『강진 백운동 별서정원』 『잊혀진 실학자 이덕리와 동다기』를 펴내 조선 후기 실학사의 감춰진 면모들을 밝혀냈다. 『다산과 강진 용혈』은 그 연장선상에서 강진의 ‘용혈’이라는 장소가 다산을 불교의 세계로 끌어들였고, 천주교 신자임에도 다산이 고려 불교의 빛나는 성취들을 좇은 자료들을 새롭게 발굴함으로써 800년간 묻힌 역사의 단면을 환히 밝힌다.
강진에 유배되어 있던 1805년 다산은 만덕사 승려 아암 혜장을 처음 만났는데, 둘은 자석처럼 서로를 끌어당겼다. 아암은 온 힘을 다해 다산의 정착을 도왔고, 밤 깊도록 둘은 『주역』 등을 토론하며 학문의 세계로 빠져들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아암이 다산에게 『호산록湖山錄』이라는 낡은 책을 한 권 내밀었다. “고려 때 이곳 만덕사에서 백련결사白蓮結社의 주맹으로 계시던 진정국사 천책 스님의 시문집이올시다.” 시를 읽은 다산의 눈은 놀란 빛이 되었다. “이런 시인을 몰랐다니! 이럴 수 있는가.” 다산은 시의 필자를 신라의 최치원과 고려의 이규보에 견주면서 천책이 누구냐고 다그쳤다. 아암은 그 스님이 만년에 머물던 용혈암 터가 근처에 있으니 한번 같이 가자고 청했다. 이로써 1806~1807년경 다산은 천책에게로 끌려 들어갔고, 후에 고려시대 백련결사의 자취를 좇아 『만덕사지』를 편찬하게 된다.
용혈암은 고려 때의 암자 터이며 당시 스님을 뵙고자 조정의 고관들이 수레를 잇대어 기다리던 불교의 성지였다. 용혈암은 강진군 만덕산의 만덕사를 창건한 원묘국사 요세 때 처음 암자로 조성돼 백련결사에 속한 승려들의 수행처가 되었다. 그들은 여기 들어와 바깥세상을 차단한 채 한 글자 쓰고 세 번씩 절을 올리며 『법화경』을 사경하는 등 수행을 했다. 특히 천인, 천책, 정오 3국사가 거쳐가면서 이곳은 성지로 우뚝 섰다. 용혈 구역은 절벽 아래 물이 쏟아져 내리는 용천을 곁에 둔 용혈 굴이 있었고, 그 동편의 넓은 평지에 용혈암이 있었다. 그 아래쪽에는 축대를 쌓은 누대가 있었다. 또 괘탑암 구역은 예전에 천인이 중창한 괘탑암이 동서 3칸의 규모로 자리잡았고, 남쪽 봉우리에 대를 쌓아 세운 능허대가 있으며, 동쪽 시냇가에 초은정이란 작은 정자가 있었다. 특히 용굴 안에는 감실이 꾸며져 부처님을 모시는 등 용혈암에는 꽤 큰 규모의 사찰이 자리했던 듯하다.
하지만 다산이 이곳에 갔을 때는 신우대 덤불 속에 파묻혀 고려 때의 성대한 자취는 없고 온통 폐허가 되어 있었다. 건물터에 우뚝 솟았던 층층의 누대와 경사로를 타고 둘러쳐진 섬돌이나 계단은 모두 무너진 채였다. 다산은 『호산록』의 저자 천책 스님을 흠모하며 간 곳에서 버려진 땅을 목격한 뒤 해마다 봄철이면 이곳 용혈로 소풍을 갔고, 이곳을 둘러싼 문헌들을 하나둘 발굴하면서 그 자신도 용혈과 관련한 기록들을 남기게 된다.

다시 200년간 파묻힌 성지를 발굴하다

고려 이후 유일하게 다산만이 기록과 시문으로 역사의 뚜렷한 시간들을 복원해냈건만 용혈은 다시 폐허로 파묻히는 비극을 면치 못했다. 그것은 아마도 다산이 유배지에서 자신을 숨기고 가탁하여 기록을 남겼을 뿐 아니라 자신의 문집에 그것을 올리지 않음으로써 후대에 미처 드러나지 않은 것이리라.
그러나 다산 이후 200년간 다시 잡목과 풀에 둘러싸인 이곳을 이 책의 저자가 발굴하게 된다. 이는 다산의 발자취를 그대로 닮아 다산과 저자의 행보를 동시에 되밟아가는 독자들을 흥분케 한다. 저자는 지난 10여 년간 다산에 이끌려 강진 땅을 수없이 밟았다. 다산이 봄마다 용혈로 소풍을 갔듯이 저자도 강진에 갈 때마다 용혈을 서성였다. 다산 등의 용혈 관련 기록을 손에 들고, 길이 온통 막힌 곳의 수풀을 헤치며 암자 터를 찾았다. 눈앞의 시야가 확보되지 않자 더 높은 반대편으로 가 용혈의 공간과 지형을 가늠하려던 중 벼랑길에서 구르기도 했다.
기록과 현장을 비교하던 저자는 둘의 아귀가 잘 맞지 않자 주요 지점들을 찾으려 온갖 방법을 시도했다. 사실 용혈 입구는 1983년부터 만덕광업이 채석장으로 운영해와 늘 먼지가 부옇게 쌓여 있다. 2013년 민족문화유산연구원이 용혈암지 발굴조사를 했지만 이는 지표조사에서 그쳤을 뿐이다. 저자는 분진 가루 속에서 그 너머 상사곡上寺谷에 있었다는 괘탑암과 능허대, 초은정의 위치를 잡아보려고 아슬아슬한 등반을 몇 차례 했다. 하지만 기록이 모호하고, 세월은 800년이 흘러 지형도 변한 데다 우거진 수풀로 인해 이런 시도는 명확한 결론을 내지 못한 채 끝났다.
그러던 중 삼성미술관 리움의 「표피장막책가도」 속 서첩에 적힌 글귀에서 ‘자하산인紫霞山人’과 ‘다창茶傖’이란 호를 쓴 이가 천책의 시에 차운한 시를 발견했는데, 지은이는 놀랍게도 다산 정약용이었다. 또 만덕사고려팔국사각의 상량문에 철경 응언이라는 인물이 고려 백련결사 8국사의 사적을 밝혀두었는데, 이 역시 다산이 응언의 이름을 빌려 쓴 글임을 밝혀내게 된다. 저자는 또한 조선 초기 서거정이 찬집한 『동문선』이 『호산록』에 수록된 시문을 대거 녹여 담고 있음을 확인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동문선』에는 이외에도 만덕사와 용혈을 거점으로 했던 백련결사에 대한 글이 놀랍도록 많이 수록되어 있었다. 터만 남은 용혈암에 관한 기록이 이처럼 풍부해 다산이 놀랐던 것처럼, 이 자료들을 발굴한 저자 또한 놀랄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저자는 19세기 후반 윤치영의 문집에서 용혈에 보관되었던 고려 국왕이 하사한 금동 향로에 대한 기록을 찾아냈다. 그 외에 국왕이 하사한 바리때와 용혈굴에 원래 있었던 용이 깃들었다는 깊은 연못에 대한 증언도 확인했다. 모든 기록이 한자리에 모이자, 백련결사의 4대 주맹이었던 진정국사 천책뿐 아니라, 이곳을 거쳐간 고려의 3국사와 여러 고승의 고결한 행적들이 드러났다. 새로 만난 용혈암은 그저 그런 수백 수천의 암자 터가 아닌 고려 불교의 성지였다.

「유용혈기」와 「만덕사고려팔국사각상량문」을 짓다

고려 이후 용혈에 관해 유일하게 기록을 남겼던 다산의 글을 살펴보자. 가장 구체적인 글은 「유용혈기」로, 수많은 정보를 담은 중요한 산문이다. 여기서 다산은 자신이 용혈을 매년 찾게 된 사연과 용혈암 주변의 지형, 곳곳에 남은 자취 등을 묘사하고 있다.

“용혈로 놀러 가는 것을 해마다 상례로 삼았다. 다만 마치 소라 껍질처럼 휑하니 깊게 패여 괴상하게 보이는 것이 용혈이다. 쟁글대며 쏟아지는 물이 절벽을 따라 흘러서 내려가는 것은 용천龍泉이다. 용천의 동편에 한 구역의 평탄한 땅이 있는데, 이곳이 용혈암의 옛터다. (…) 당시에 공경과 학사 및 수령들이 다들 속제자라 일컬으며 용혈대존숙龍穴大尊宿에게 시를 바쳤으나, 두 승려는 바야흐로 누워 쉬면서 가벼이 움직이지 않았다. 떠올려보면 골짝 어귀 밖에 덮개를 벗기고 안장을 푼 인마가 늘어서고, 손을 맞잡고서 명을 기다리던 자가 벌떼처럼 빽빽했을 터이니 이 얼마나 성대한가…….”

다산의 제자 이정은 서울에 갔다가 만덕사의 천인과 정오의 실적實跡을 얻어 돌아왔다. 다산은 이 자료와 천책의 『호산록』을 더해 만덕산 백련사의 옛 역사를 파악하게 되었고, 1814년 봄 만덕사의 승려로 아암의 제자였던 삼초 정오와 기어 자굉을 데리고 만덕사의 또 다른 역사 현장인 용혈암 터로 이들을 안내했던 것이다.
다산은 또한 「만덕사고려팔국사각상량문」을 지었는데, 여기서 만덕사에 고려 팔국사각을 세우게 된 과정과 8국사의 전기를 정리하고 있다. 이것은 그동안 학술 자료로 활용되지 못했는데, 존재 자체가 널리 알려지지 않았을뿐더러 함축적인 표현과 중층적 의미를 띠는 고사 때문에 이해하기 쉽지 않았던 것이다. 이 상량문은 아암의 제자이자 다산에게서 배웠던 철경 응언이 지었다고 적혀 있지만 실제 작자는 다산임을 저자가 밝혀내고 있다. 그 논거는 이렇다. 달리 예를 찾기 힘든 다산 특유의 표현이 문장에 반복해서 등장하는 점, 다산이 특별히 인용했던 『호산록』의 해당 구절이 글 속에 녹아든 사실, 상량문의 형식이 다산 외에는 전후로 아무도 쓰지 않은 방식이라는 점, 글의 행간에 자신을 암시하는 표현을 군데군데 끼워넣은 것, 젊은 철경이 무심결에 늙었다고 말하고 있는 점……. 더욱이 다산은 만덕사 8대사의 비문 4편과 그 외 불교 관련 글 여러 편을 다른 승려의 이름으로 대신 지은 적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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