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타유와 마네
조르주 바타유Georges Bataille(1897~1962)는 프랑스 현대 사상의 원천이 된 독보적인 사상가이자 작가이다. 그는 철학, 문학, 사회학, 인류학, 종교, 예술을 넘나든 위반과 전복의 사상가이면서 ‘20세기의 사드’라 칭할 만한 에로티슴의 소설가이기도 하다. 평생 도서관 사서로 일하면서 한편으론 잡지 『도퀴망』『아세팔』『크리티크』를 창간하며 사상계를 주도하고 초현실주의와 공산주의 활동에 참여하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론 사창가를 드나들며 방탕한 생활을 하고 가명으로 외설적인 소설을 쓰는 이중적 삶을 살았다. 방대한 글을 남겼지만 그의 사상은 당대에 제대로 이해받지 못하고 사후에 푸코, 바르트, 데리다, 낭시, 라캉, 보드리야르, 크리스테바 등에 의해 재평가된다. 바타유 사유의 핵심을 이루는 ‘과잉’ ‘위반’ ‘소모’ ‘주권’ 개념은 특히 포스트모던 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롤랑 바르트는 『텍스트의 즐거움』에서 바타유를 ‘분류할 수 없는’ 작가로 규정한다. 이 분류 불가능성은 바타유의 삶이, 그의 다양한 글쓰기가 그대로 증명해준다. 바타유의 사유는 정의할 수 없는 것, 이성의 끝, 침묵하는 언어를 지향했다. 그는 언제나 경계 너머를 사유하고 실제로 이를 경험하고자 했다.
바타유는 예술에 관한 책 두 권을 1955년에 나란히 출간했다. 『라스코 혹은 예술의 탄생』은 예술 자체의 기원을 이야기한 책이고, 『마네』는 한 화가를 통해 현대 예술의 탄생을 다루고 있다. 19세기 미술계 최대의 스캔들을 일으킨 마네는 바타유가 보기에 현대 예술의 출발점에 있는 화가다. 예술을 사치, 도박, 종교, 성행위, 시와 더불어 ‘소모’의 활동으로 간주하는 바타유는 마네의 그림에서 새로운 예술의 어떤 징후를 보았던 것일까?
현대 예술의 탄생과 <올랭피아> 스캔들
에두아르 마네Edouard Manet(1832~1883)는 흔히 인상주의의 아버지로 불리지만 실제로는 인상주의의 틀에 묶이지 않는 다양성을 보여주었다. 마네는 그 누구보다도 대담하게 기존의 관습과 전통을 거부하고 예술의 지평에 파란을 불러일으킨 인물이다. 바타유는 그런 마네의 개성을 비일관성과 비개인성에서 찾는다. “일종의 변모를 위한 우연의 도구가 아니면 마네는 도대체 무엇일까?”(38쪽) “그 앞에 차례차례 나타났지만 그를 안착시키지 못한 가능성들의 무질서와 비교할 때 인상주의는 차라리 빈약한 것이었다.”(39쪽)
마네는 기존 세계의 기반이 무너져가는 변화의 한가운데 있었다. 그 기존 세계는 신의 교회와 왕의 궁전이 군림하던 세계다. 과거에 예술은 그런 주권적 형태들(신이나 왕에게 속하는 것)을 표현하는 도구였다.
마네가 주도한 변화는 주제의 파괴, 형태 및 색채의 해방과 긴밀하게 관련된다. 르네상스 이래 서양을 지배해온 근대적 재현 양식이 더이상 유효하지 않게 된 시점에 마네가 제시한 새로운 회화는 그 자체로서 자율성과 자족성을 갖는, 비개인적이면서 비개성적인 “형태와 색채의 노래”(49쪽)로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