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문학으로 온 시대를 살아낸 세기의 인문학자 도정일의 궁극적 질문
전방위 인문학자 도정일의 문학에세이 『시대로부터, 시대에 맞서서, 시대를 위하여』가 출간되었다. 그간 문학동네에서 펴내온 ‘도정일 문학선’의 4권으로, 『시인은 숲으로 가지 않는다』 이후 5년 만에 내놓은 신간이다. 도정일은 문학평론가이자 문화운동가, 전 경희대 영문과 교수이자 번역가, 인간·사회·역사·문명에 대한 인문학의 책임을 강조하고 인문학적 가치의 사회적 실천에 주력해온 교육자이기도 한 우리 시대의 대표적 인문학자이다. 1994년 출간된 첫 평론집 『시인은 숲으로 가지 못한다』가 평론집으로는 이례적으로 1만 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린 후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 『별들 사이에 길을 놓다』 등 산문집이 스테디셀러가 되며 대중의 사랑과 신뢰를 받았다. 올해로 여든하나의 나이가 된 그가 온 생애를 투신해 연구해온 문학에 대해, 그리고 온몸으로 살아낸 시대에 대해 단 하나의 화두를 던진다. 지금 이 시대에 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그가 20년간 써온 글들을 모아 주제에 따라 세 권으로 묶었다. 3월 문학에세이 『시대로부터, 시대에 맞서서, 시대를 위하여』를 시작으로 4월 문학이론집 『이야기의 바깥은 없다』, 5월 문화에세이 『두껍아 두껍아 헌집 줄게 새집 다오』(가제)로 연이어 독자들을 만날 예정이다.
이야기가 끝나는 날 인간은 최종적으로 소멸하고 이야기의 세상도 끝난다.
이야기의 세상이 끝나면 인간의 역사도 끝난다.
이야기의 종언이 역사의 종언이다.
이야기는 의미 없는 세계에 의미를, 희망이 없는 세계에 희망을, 정의가 없는 세계에 정의를 집어넣으려는 인간의 노력을 대표한다. 오래된 경험들이 인간에게 제기하는 도전치고 이보다 더 큰 것이 있는가? 인간이 이 세계에서 하는 일 중에 그 세 가지 작업보다 더 의미 있는 것이 있는가?
_15쪽, 「오래된 것들의 도전」
1부 ‘지금 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서는 다양한 시각과 방법론으로 부 제목으로 삼은 중요한 화두에 대답을 제시한다. 문학의 근본적인 속성과 그것이 내재한 힘을 설득력 있게 이야기한다. 그에게 문학이란 유한성과 무한성이 교전하는 가운데 발생하는 빛과 같은 것이다. “유한성의 경험에 모순이라는 주사약을 찔러넣는 순간 그 경험에는 드라마가 도입된다. 인간은 자신의 목숨, 자원, 능력이 유한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유한성에 보복하려는 충동과 욕망을 갖고 있다. 그 욕망은 무한하다. 인간은 무한한 생명, 무한한 능력, 무한한 권력, 무한한 지식처럼 무한한 것을 찾고 무한한 것을 그리워한다.” 유한한 존재이면서 무한한 것을 추구하는 인간에게 문학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언어 형식이라는 말이다.
혹자는 지금이 문학하기 어려운 시대라고도 한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다르다. “영상시대란 인간이 ‘세계를 이미지로 바꾸고 그 이미지를 소유하는 시대’로 파악할 수 있다. 그 시대는 시각 쾌락의 시대, 시각에 의한 세계 소유의 시대, 시각의 권력화 시대이다. 영상시대의 문학은 시각의 노예가 아니라 시각 쾌락의 시대에 대한 반역이다.” 문학이 시각의 노예가 아니라 시각 쾌락의 시대에 대한 반역이라는 그의 선언이 자못 신선하다. 이와 같은 논의는 오천 년이 넘게 이어져온 텍스트 예술이 디지털과 영상시대, 그리고 뉴미디어시대에 어떤 변화를 겪고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진다. 또한 그는 이러한 시대에도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 그 효용과 가치를 역설하고, 그와 같은 사유는 21세기의 통합학문적 문학교육과 인문학교육에 대한 방향으로 나아간다.
2부 ‘이론은 문학을 죽이는가?’는 동 제목의 영문학회 발제문으로 시작한다. 비스와바 쉼보르스카가 말한 시인으로서의 ‘환희와 절망’을 빌려 문학을 읽고 향유하고 비평하는 이의 ‘환희와 절망’에 관해 이야기하는 그는, 그 두 가지 감정의 기원을 깊이 탐구한다. 그리고 문학예술의 가장 큰 힘이 ‘존재의 확장’에 있으며 이론이란 ‘도식적이고 기계적인’ 구조 분석이 아니라 작품의 이해를 확장함으로써 독자를 새로운 지평으로 안내하는 일이라 역설한다. 이를 증명하듯 이후에는 ‘뉴욕 테러로 생각해보는 정치와 문학’ ‘오바마의 스토리텔링’ ‘문화예술의 번역 문제’ 등 현실세계의 원리가 구동하고 있는 장 안에서 문학이 변모하는 모습을 흥미로운 주제들을 통해 구체화한다.
마지막으로 3부 ‘시대로부터, 시대에 맞서서, 시대를 위하여’에서는 현재 사회의 쟁점으로 부각된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문제들이 문학이라는 형식과 어떤 방식으로 유기적으로 관계 맺고 영향을 주고받고 있는지를 고찰한다. 이 과정에서 제기되는 의외의 화두는 ‘문학성’이다. 그는 “문학은 정치 선언문도, 팸플릿도, 구호나 성명도 아니다. 그러므로 문학작품이 당대의 역사적 세력들과 맺는 관계는 정치적 입장의 직접 표현을 통한 관계 맺기일 수도 있지만(이 방식은 대부분 비효율적이고 비예술적이다)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이야기하는 한편 “문학예술 생산자가 반드시 자기 시대의 곤혹과 딜레마에 대한 인식 혹은 통찰을 갖고 있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비평적 견해는 좌우 살필 것 없이(사실은 살피지 않을 수 없지만) ‘그렇다’이다”라고도 말한다. 그에게 문학성은 ‘가치이면서 문제’이다. 문학은 시대에 영합하지 않지만 시대를 반영한다. 그러므로 그에 따르면 문학성이 이 시대의 문학에 요구하는 것은 오직 ‘시대로부터, 시대에 맞서서, 시대를 위하여’ 소리내고 웃고 울고 노래하고 이야기하라는 것이다.
“이야기가 끝나는 날 인간은 최종적으로 소멸하고 이야기의 세상도 끝난다. 이야기의 세상이 끝나면 인간의 역사도 끝난다. 이야기의 종언이 역사의 종언이다”라고 말하는 도정일에게 문학이란 신앙에 가깝다. 따라서 “지금 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회의가 아닌 가능성을 전제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대에 문학은 우리에게 무엇을 주는가? 그리고 우리는 그것으로 어떻게 나아질 수 있는가, 혹은 어디로 나아갈 수 있는가? 저자는 이에 대해 평생을 문학에 몸담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신뢰할 수 있는’ 대답을 제시한다. 다소 대담해 보일 수 있는 제목(‘시대’가 세 번이나 들어간)을 단 이 책을 믿음을 가지고 따라 읽을 수 있는 이유는, 그가 문학에 대한 진실한 애정을 가지고 한 시대를 살아온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한마디 덧붙이자면 무엇보다 그의 글이 지닌 미덕은 어려운 글도 쉽게 읽히도록 하는 탄력적인 문장이라 할 수 있다. 그의 문장을 마음놓고 따라가다보면 어느덧 책 속에 깊이 빠져들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