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제된 언어와 따뜻한 감성으로 사소한 일상 속에서 깨달음을 성취하는 시인의 세번째 시집
어린 시절의 추억을 보듬어 안는 언어로 존재의 심연까지 가 닿았던 첫번째 시집 『하늘밥도둑』 이후, 작고 가벼우며 순간적이기만 한 일상 속에서 삶의 의미를 포착해온 심호택 시인의 세번째 시집 『미주리의 봄』이 출간되었다.
이 시집에 실린 60편의 시들은 모두 미국을 무대로 하고 있다. 시인이 미국에서 일 년 동안 교환교수로 체류하면서 겪은 체험과 그곳에서 만났던 사람들, 그곳에서 다시 보게 된 시인 자신, 그리고 미국 문화에 대한 비판 등이 어우러져 있는데, 이 ‘미국 이야기’는 시를 읽어나가는 동안 어느새 ‘한국 이야기’로, ‘나의 이야기’로 전환된다.
이 시집은 전체적으로 ‘하나의 작품’으로 읽힌다. 출국 인사를 하는 술자리에서 시작되는 이 시집은 타고 다니던 자동차를 폐차시키고, 미국 미주리에 도착해 집을 얻고, 교회에 나가고, 그곳에 살고 있는 교포와 시인들을 만나고, 자본과 문명으로 대표되는 미국 문화를 바라보고, 성탄절을 앞두고 짐 꾸릴 채비를 하는데서 끝난다. 미국 속의 ‘나’는 그리움과 안타까움, 애잔함과 심상함 등으로 ‘나’와 ‘미국’을 들여다보지만, 시인의 시선은 일상 속에 숨어 있는, 혹은 일상에 의해 가려져 있는 삶의 의미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서, 그의 시어들은 현란하거나 과장되어 있지 않다. 멀리 떨어져 있는 친구에게 편지를 쓰듯 낮고 다감한 목소리다.
느릿느릿, 심상하게 자유로움의 경지에 도달한 시어
심호택 시인의 이번 시집을 관류하고 있는 주제어는 앞에서도 말했듯이 일상(성)이다. 현대인의 삶은 거의 전적으로 일상적인 것들로 채워져 있다. 문명화가 진전된 사회일수록 축제와 같은 탈일상은 사라지고 없다. 그 축제 또한 일상화되고 말았다. 그리하여 일상을 주목한다는 것은 곧 현대인의 삶 전체를 들여다본다는 것이다. 일상은 작고 가볍기도 하지만, 그것은 매우 빠르다는 특징을 지닌다. 현대인에게 일상은 따라가고 적응해야 할, 주어진 삶의 형태이지, 그것을 관찰하고 비판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일상에 대한 관찰과 비판은 시인에게만 주어진 임무이자 권리이다.
“성탄절 가까운 세인트루이스/외곽에서 마음 바쁜 나그네 하나/제법 무감한 척/눈 내려 쌓이는 것 바라본다” 시집 후반부에 실린 시 「성탄절 가까운」의 마지막 연이다. 이 시는 눈 내리는 날, 이제 곧 귀국을 앞둔 시인 가족들과 눈을 맞는 나무들, 그리고 어디서 사고가 났는지 ‘질주하는 사이렌’ 소리가 한 화면 속에 들어 있다. 그러나 짐짓 시인 자신은 ‘나그네’가 되어 ‘무감한 척’한다. 일상적 현실은 물론, 일상적 현실에 반응하는(‘마음 바쁜’) 자신의 마음에서도 한 걸음 물러나 무감한 척하는 나그네! 이것이 바로 시인이다. 바로 이 입장과 관점에서 일상적 삶의 이면에 대한 성찰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성찰은 깨달음과 자유를 지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