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의 각오』―‘진정한 작가의 길’에 바치는 겐지의 이력서
일본 문학의 영향에서 가장 먼 지점에 존재하면서도 동시에 유일무이한 독창적인 작품세계로 일본 문학에서 가장 특출하고 소중한 작가로 인정받는 마루야만 겐지는 일체의 직장생활을 하지 않고 오직 원고료 수입만으로 창작생활을 하는 20세기의 대표적인 전업작가로 잘 알려져 있다. 일본의 북알프스 산맥 한 자락에 자리잡은 조그만 산 마을에서 삭발을 하고 틀어박혀 자기만의 소설세계를 고집하는 이 소설가는 어떤 현실적 문학적 타협도 용납하지 않는다. 이같은 결곡함과 오연함으로 하여 그는 일본의 ‘살아 있는 작가정신’으로 불리며 발표하는 매작품마다 문단과 대중으로부터 각별한 주목과 사랑을 받고 있다. 산문집 『소설가의 각오』는 바로 그와 같은 마루야마 겐지의 정신세계와 문학관이 오롯이 담겨 있는 책이다. 나날의 생계를 걱정해야만 하는 삶을 살면서도 문학에 대한 들끓는 애정과 투지를 한시도 버리지 않았던 자신의 내면과 예술혼을 처절하게 토해놓고 있는 이 산문집은 한 위대한 작가가 탄생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고 어떤 각오를 다져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우리에게, 아니 우리 시대의 모든 소설가들과 작가 지망생들에게 던지고 있다.
마루야마 겐지가 이십대 초반의 나이로 소설가로 입문하게 되는 과정과 「여름의 흐름」으로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하면서 화려하게 등단한 사연, 그리고 전업작가로서 금욕적인 집필활동을 해나가면서 겪는 생활의 애환 등을 세세히 그리고 있는 이 산문집에서 겐지는 자신의 전 존재를 완전히 알몸으로 드러낸다. 무역회사에 다니던 중 감원 대상이 된 상황을 타파하려고 처음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는 사실도 밝히고 생활비를 쪼개고 쪼개는 한이 있더라도 오로지 쓰고 싶은 작품만 쓰겠다는 결연한 의지도 토로한다. 창작과 책의 출판에 관련된 주변의 인물들, 예를 들면 출판사 편집자, 언론사 기자, 다수의 독자들 등과 얽힌 흥미로운 일화들도 가감없이 소개되어 있다. 일본의 문단 현실과 출판 관행은 한국과 흡사한 점이 많아 마루야마 겐지가 털어놓는 얘기는 우리에게도 매우 친숙하게 다가온다.
“절제된 생활만이 새로운 문학을 탄생시킬 수 있다”
무엇보다 이 산문집의 특기할 만한 매력은 거침없고 올곧은 겐지의 어투에 있다. 그는 동시대의 작가들은 물론 편집자와 언론 기자들의 관행과 태도에 대해 신랄하게 질타한다. 특히 진정한 작가정신을 잃고 글이나 쓴답시고 작가연하는 얼치기 작가들의 타락한 정신과 생활태도에 대해서는 한치의 양보도 없다. 겐지는 문학이라는 험준한 산맥을 중단 없이 오르기 위해서는 퇴폐와 허무를 벗삼을 것이 아니라 깊은 고독 속으로 침잠하여 자신과 부단한 싸움을 치러여만 한다고 말한다. 또한 권력과 권위에 오염되지 말 것이며 유행과 시류에 편승해서도 안 되며 오직 문학 그 자체, 언어 그 자체에 생의 전부를 걸어야만 한다고도 말한다. 겐지는 자신이 주장하는 바를 스스로 실천하며 ‘진정한’ 작가의 길을 걷고 있는 거의 유일한 작가이다. 그의 신랄한 비판은 ‘문학의 죽음’이니 ‘위기’니 하며 엄살을 떨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왜냐하면 영상 문화와 컴퓨터 문화에 밀려 문학이 점차 소멸해가고 있다는 진단은 그야말로 어불성설이며, 오히려 지금 문학은 더욱 살아 있으며 진정한 작가정신을 지키고 언어의 본령을 고수할 때만이 문학은 살 수 있다고 겐지는 포효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소설가의 각오』에는 제목이 시사하는 바대로 겐지의 문학관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그는 말한다. “나는 데뷔한 이래 줄곧 영화에 대한 대항의식을 갖고 소설을 써왔다. 언젠가는 반드시 영화보다 더 좋은 소설을 쓸 것이라고. 소설이 영화와 경쟁을 하다니 어리서기 짝이 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나는 그러고 싶었다. 영화로는 절대로 표현하기 어려운 시각적 이미지를, 문자이기에 가능한 선열한 이미지를 창출해내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영화를 뛰어넘는 소설, 시각적 이미지가 강렬한 ‘시소설’을 완성했다.” “영화로는 절대로 표현하기 어려운 시각적 이미지”는 겐지 문학의 핵심을 이루는 요소이다. 그의 소설에 자주 나타나는, 달빛이 내리비치는 개천의 어두운 밤의 풍경 묘사는 아마 결코 스크린으로는 담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영화를 뛰어넘는 소설”이라니, 이 얼마나 옹골차고 자신만만한 주장인가. 겐지의 소설은 실제로 자신의 말을 그대로 증명하고 있다.
겐지는 신경숙, 윤대녕 등 국내 작가들에게도 매우 인기 있는 작가이다. 그의 열렬한 독자들인 그들은 겐지 문학의 경이로움에 같은 작가로서 찬탄을 금치 못하고 있다. 작가 신경숙은 겐지의 문학이 “내가 마음속으로부터 동경했던 글쓰기의 태도를 완벽하게 실천하고 있”다고 말한다.
30년 넘게 쉬지 않고 작품을 발표해온 마루야마 겐지가 자신의 삶과 문학에 대해 거짓없이 토로하고 있는 산문집 『소설가의 각오』는 겐지 문학의 투명한 이력서이다. 그와 동시에 겐지가 타락한 이 시대의 작가들을 향해 던지는 신랄한 비판이자 피맺힌 호소이며, ‘진정한 작가의 길’을 꿈꾸는 작가 지망생이 반드시 읽어야 할 삼엄한 ‘문학개론’이다. 그가 이 산문집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 한마디일지도 모른다. 무한한 문학의 세계에 도전하고 싶은 자이거나 이미 글을 쓰고 있는 자에게 꼭 필요한 한 가지는 “절제”라는 것. 새로운 문학을 탄생시키기 위해서는 “절제된 생활”, 엄격한 생활태도를 유지해야만 한다는 것.
마루야마 겐지(丸山健二)는 1945년 나가노 현(縣) 이에야마 시(市)에서 태어났다. 1966년「여름의 흐름」으로 제23회 『문학계』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이듬해 같은 작품으로 일본의 대표적인 문학상인 아쿠타가와 상(제56회)을 수상했다. 이는 아쿠타가와 상 사상 최연소 수상이었다. 마루야마 겐지는 철저히 일본 문학의 영향 바깥에 존재하면서도 일본 문학에서 가장 중요하고 가장 특출한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현재 그는 생활비를 줄여서 쓰고 싶은 작품만 쓰겠다는 각오로 고향 오오마치에 거주하며 오직 소설 창작에만 전념하고 있다. 주요 작품으로, 장편소설 『붉은 눈』 『화산의 노래』 『안령 산갈매기』 『뇌신(雷神), 비상하다』 『물의 가족』 『천일의 유리』 『봐라, 달이 뒤를 쫓는다』와 소설집 『어두운 여울의 빛남』 『아프리카의 빛』 『달에 울다』 등 다수가 있다.
옮긴이 김난주는 1958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경희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을 수료한 후, 1987년 쇼와 여자 대학에서 일본 근대문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이후 오오츠마 여자 대학과 도쿄 대학에서 일본 근대문학을 연구하였다. 현재 일본 문학 번역가로 활동하며 명지대학교 사회교육원 번역작가 양성과에 출강하고 있다. 『천국에서 내려오다』 『일각수의 꿈』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노르웨이의 숲』 『N·P』 『멜랑코리아』 『먼 북소리』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1973년의 핀볼』 『가족 시네마』 『타일』 『렉싱턴의 유령』 『키친』 『골드 러쉬』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