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커지고 더 웅숭깊어진 눈으로 세상 읽기
혼란스러웠던 80년대를 지나오면서 독특한 상상력과 감수성으로 시대적 고뇌를 탁월하게 시화했던 하종오 시인의 『님』이 출간되었다.
이번 시집은 은거하듯 세간과의 연을 끊어버렸던 그가 94년 발표했던 『님시편』의 연장선에 자리한다. 『님시편』이 외편에 해당한다면 그 내편에 속할 『님』은 더 커지고 더 웅숭깊어진 눈으로 사물과 세상을 읽고 있는 서정의 깊이를 보여준다. 외편이 핵심에 들기 전의 주변적인 이야기라면, 내편은 이야기의 간류 즉 중심에 해당되는 것이다.
‘님’과의 합일, 삼라만상과의 만남
육십 수의 시편으로 이루어진 이 장시에는 산자락에 오체를 내던지고 뼈아픈 자기 성찰을 거듭하는 ‘인간’의 일생이 오롯이 담겨 있다. 이 구도적 자아는 무변(無邊), 자연과 인간 사이의 그 가없는 경계에서 자기 모멸과 회한에 몸서리치기도 하고, 두엄이 되어 풀뿌리에 스며들기를 갈망하기고 하고, ‘님’과의 합일로 몸을 떨기도 하지만, 마침내 자신을 낮추어 수평을 이루는 ‘저수지’에서 자신의 길을 찾아낸다. 거기에는 더이상 찾아 헤매어야 할 님이 따로 없고, 우주와 하나가 된 자아가 있을 뿐이다. 시인은 만상이 한데 어우러져 서로가 서로의 님인 세계의 가장 낮은 자리에서 제 거처를 새롭게 발견하고 있는 것이다.
많은 시인들이 ‘님’을 노래해왔지만, 하종오 시인에게 있어 ‘님’은 시인이 자신의 본래적 자아를 찾아가는 고투의 일지라고 할 수 있다. 이 시집의 연작 시편에서 시적 자아가 끊임없이 탐색하고 갈구하는 대상으로서의 님은 시인 자신이라고도 할 수 있다. 외편에서 시인은 ‘님’을 다양하게 존재하는, 인간을 포함한 삼라만상에서 찾았다면, 내편에 해당하는 이 시집에서는 자신의 참모습에서 ‘님’을 발견해내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님’ 연작 시편은 일상적 현실에서 억압적 존재로 살아가야 하는 순환 반복의 무위한 일상인으로서의 자세를 벗어나, 자연과 합일된 존재 혹은 자연의 일부로서의 존재인 본성을 찾는 과정의 일지라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