쿰란 1
- 원서명
- Qumran
- 저자
- 엘리에트 아베카시스
- 역자
- 홍상희
- 출판사
- 문학동네
- 발행일
- 2000-01-22
- 사양
- 343쪽| 210*148mm (A5)
- ISBN
- 89-8281-254-7 03830
- 분야
- 장편소설
- 정가
- 8,000원
-
도서소개
프랑스 천재 여성작가 엘리에트 아베카시스의 첫 장편소설. 2천 년 전 예수의 죽음과 이스라엘 쿰란 사해 문서에 얽힌 20세기 말 연쇄살인 사건의 비밀을 박진감 넘치는 지적 추리와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펼쳐낸 대담하고 매혹적인 신학 스릴러! 책장을 넘기는 동안 `누가 예수를 죽였는가? 왜 죽였는가?`라는 가장 불가해한 수수께끼의 물음표들을 따라 시종일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한다.
-
저자
1969년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태어난 엘리에트 아베카시스는 프랑스 최고의 지성인을 양성하는 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최연소로 철학교수 자격증을 취득한 천재 여성작가이다. 그녀는 27세 때 발표한 첫 소설 『쿰란』에서 예수의 죽음을 문제삼는 대담한 발상, 풍부한 고증학적 지식, 신비주의와 종교적 광신에 대한 명석한 성찰, 그리고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며 이 모두를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아우르는 놀랍도록 참신한 소설적 기교 등 천재적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여 프랑스와 세계 출판계의 비상한 주목을 받고 있다. 그 밖의 작품으로 『성전의 보물』『나의 아버지』『살인에 관한 형이상학적 고찰』등이 있으며, 99년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오른 아모스 기타이의 영화 <카도쉬, 성스러움>의 시나리오를 공동 집필하기도 했다.
-
목차
-
편집자 리뷰
27세 천재적 여성 작가에 의해 씌어진 대담하고 매혹적인 신학 스릴러!
2천 년 전 예수의 죽음과 이스라엘 사해 육필 두루마리에 얽힌 20세기 말 연쇄살인 사건이 비밀스럽게 맞물려 있는 『쿰란』은 엘리에트 아베카시스(Eliette Ab cassis)가 27세 때 발표한 첫 소설이다. 1969년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태어난 엘리에트 아베카시스는 프랑스 최고의 지성인을 양성하는 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최연소로 철학교수 자격증을 받은 천재적 여성 작가이다. 그녀는 첫 소설 『쿰란』에서 예수의 죽음을 문제삼는 대담한 발상, 풍부한 고증학적 지식, 신비주의와 종교적 광신에 대한 명석한 성찰, 그리고 이 모두를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아우르는 놀랍도록 참신한 소설적 기교 등 천재 작가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여 프랑스와 세계 독서계의 비상한 주목을 받고 있다. 또다른 작품으로는, 대담하고 독창적인 필체로 유태인 대학살 이후의 신과 악의 문제를 제기한 장편소설『황금과 재Lor et la cendre』, 철학 에세이 『살인에 관한 형이상학적 고찰M taphysique de meurtre』등이 있다.
『쿰란』은 예수에 관한 현실적이며 역사적인 질문들을 중심으로 써낸 놀라운 신학적 소설이다. 그렇다고 해서, 심각한 신학적 논쟁으로 점철된 지루하고 무거운 소설은 전혀 아니다. 또한 예수의 내면 세계를 그린 전기적 소설도 아니다. 『쿰란』에는 2천 년 전 예수의 죽음과 20세기 말의 연쇄살인 사건들이 비밀스럽게 맞물려 있다. 그리하여 독자는 그 피의 소용돌이를 숨가쁘게 따라가면서, 소설 곳곳에서 제공되는 신학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기독교의 역사적 기원과 예수의 현실적 죽음을 흥미진진하게 추리하게 된다. 이렇듯 『쿰란』은 스릴과 박진감이 넘치는 지적 추리소설인 동시에 신학적 모험소설이다.
유다 사막의 한 모퉁이, 성서의 땅 쿰란. 그곳에 감추어진 2천 년 기독교 역사의 비밀
쿰란은 이스라엘 사해 북서 연안에 위치한 바위 지대이다. 1947년 이곳 쿰란 동굴에서, 베두인 족의 한 양치기 소년에 의해 구약성서 사본들과 사해 육필 두루마리들이 무더기로 발견되었다. 쿰란 근처에 산재한 많은 동굴들 가운데 두루마리들이 발견된 곳은 모두 11개 동굴이며, 그중 가장 많은 문서가 나온 곳은 1952년에 발견된 4호 동굴로 약 550개의 문서가 발견되었다. 이 두루마리들 중에는 동전만한 크기로 바스러진 조각들이 많아 아직도 연구중이다. 옥스퍼드 대학 출판부를 통해 80퍼센트 정도가 시리즈로 출간되었고, 2000년에는 전체 내용이 공개될 예정이다.
쿰란 두루마리는 기원전 200년부터 서기 50년 사이에 씌어진 기록들로, 가장 오래된 구약성서 등 성서 관련 기록들만 해도 127점에 이른다. 전문가들의 분석 결과, 수세기 동안 필사를 거치는 과정에서도 성서 내용이 비교적 온전하게 이어져왔고, 고대 유태교의 형태가 다양했으며, 유태교가 초기 기독교에 끼친 영향이 상상 외로 컸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 과정에서 예수와 같은 시대에 존재했던 에세네 파 공동체가 쿰란에서 은둔생활을 했던 사해 두루마리의 소유자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예수와 기독교의 기원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었고 지금까지도 숱한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사해 육필 두루마리에 얽힌 불가해한 이야기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놀라운 상상력!
1947년 4월의 어느 날 아침, 사해 연안의 쿰란 동굴에서 베두인인들에게 우연히 발견된 쿰란 육필 양피지 두루마리가 등장하면서 소설은 시작된다.
첫번째 두루마리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시간은 1999년. 예루살렘의 고고학 박물관에서 쿰란 두루마리들 중 하나가 사라지고, 그 두루마리의 최초 보관자로 그 안에 담긴 비밀을 알고 있던 예루살렘의 정통 가톨릭 사제가 십자가에 못박혀 참혹하게 살해당하면서 사건은 미궁 속으로 빠져든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고고학자 다윗 코헨과 그의 아들 아리는 극비리에 이스라엘 군당국으로부터 사라진 쿰란 두루마리를 되찾는 임무를 맡게 된다. 그리하여 소설의 주인공인 초종교적인 젊은 유태인 아리는 예루살렘의 하시드 거주 구역인 메아 셰아림을 떠나 아버지와 함께 유다 사막에서 뉴욕, 런던, 파리로 사라진 두루마리의 흔적과 사해 두루마리를 접하고 해독할 수 있었던 사람들을 찾아 나선다. 그러나 코헨 부자의 임무는 곧 십자가의 고행길로 바뀐다. 사라진 두루마리에 접근했던 사람들이 하나씩 하나씩 십자가 살해의 희생양이 되었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쿰란 두루마리를 손에 넣었던 페렌크 교수의 아들 마티, 신부였던 고고학자 피에르 미셸, 고문서학자이며 국제 발굴팀의 일원이었던 암흑의 천사 토머스 아몬드, 예루살렘에서 동굴 발굴 작업을 하며 파리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도미니크 회 수도사, 자크 미예…….
이 일련의 죽음 뒤에는 누가 있는가? 사해 육필 두루마리에는 어떤 엄청난 비밀이 담겨 있기에 그것을 접한 사람들마다 죽음을 맞는 것일까? 바티칸과 교황 성서위원회는 왜 이 사라진 두루마리 찾기에 몰두하는 것일까?
숨가쁘게 연속되는 1999년부터의 사건들은 독자를 2천 년 전 예수가 살아 있던 당시 유태의 정치적, 종교적, 역사적 상황으로 이끌고 간다. 의문을 푸는 열쇠가 거기 있기 때문이다.
예수는 누구인가? 그는 진정 존재했는가? 누가, 왜, 그를 죽였는가?
고문서학자이며 고고학자인 다윗 코헨과, 그의 아들이며 메아 셰아림의 수도사인 아리, 이 두 부자가 비밀에 도전한다. 이스라엘에서 미국으로, 영국에서 프랑스로 이어지는 탐문의 여로에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엘리에트 아베카시스는 그러한 탐문의 여로를 통해 기독교 세계의 근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만일 사라진 쿰란 두루마리가 유태교의 발생과 기독교의 기원에 대한 가공할 사실을 담고 있다면, 연속 살해의 주범은 사실의 폭로를 두려워하는 광신도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육필 두루마리에 묘사된 에세네인들의 보물을 찾으려는 야비한 강도들일지도…….
한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하는 『쿰란』에는 풍부한 고증학적 지식, 작품 곳곳에 점점이 박혀 있는 성서 인용문들과 쿰란학자들의 발췌문들 사이로 과거와 현재가 끊임없이 교차한다. 그리고 근원적인 물음들이 제기된다. 예수는 누구였을까? 그는 진정 존재했을까? 존재했다면 그의 삶은 어떠했을까? 그는 유태교와 예루살렘 성전의 숭배와 단절하고 에세네 종파에 속해 있었던 것일까? 그의 죽음은 진정 누구의 책임인가? 왜 그를 죽였을까? 사해 연안 쿰란 동굴에 숨어 있던 필사생들, 에세네인들은 누구였는가?
신의 시간을 앞당기고자 한 인간 욕망의 묵시록!
『쿰란』은 신앙과 가톨릭의 교리, 광신의 기원에 대한 흥미진진한 고찰이다.
이 소설의 대담한 상상력에 따르면 예수를 죽인 자는 바로 예수 자신과 에세네 교인들이다. 메시아를 기다려온 수천 년의 시간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그리하여 신의 시간을 앞당기기 위해 에세네 교인들은 자신들의 일원인 예수를 죽음의 상황에 처하게 했던 것이다. 또한 예수 자신도 그런 계획을 알고도 순순히 응했기에 그의 죽음은 자발적으로 선택한 죽음이 된다. 에세네인들은 예수를 메시아라고 믿었기 때문에, 가장 독실한 에세네 교인인 유다로 하여금 예수를 밀고하도록 하여 로마군에게 넘긴다. 예수 또한 사형이라는 극형을 피할 수 있었음에도 스스로 죽음을 자초한다. 그들은 그렇게 하여 신이 개입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을 만들었던 것이다. 에세네인들은 이런 엄청난 일을 꾸미면서 죽음 바로 직전에 신이 예수가 메시아임을 만인에게 드러내줄 거라고 굳게 믿었다. 그러나 일은 계획처럼 진행되지 않았다.
아베카시스는 에세네인들의 동굴 은둔생활이 현재까지 은밀히 지속되어왔다고 상상한다. 그리하여 2천 년 전 일어난 예수의 죽음과 관련된 믿음의 문제를 20세기 말로 옮겨 생각하게 한다. 작가의 가설에 따르면 예수를 죽인 것은 현실과 타협하지 않은, 오로지 신앙만으로 가장 독실하게 살았던 에세네인들이었다. 또 그중에서도 가장 믿음에 흔들림이 없었던 유다가 최고 악역을 맡았다. 한편 소설 속에서 20세기 말 유태교 신도들이 메시아라고 믿던 랍비를 죽이게 되는 자도, 부모의 신앙까지 신랄하게 비판하는 초정통 유태교인 하시드, 자신의 순수성을 추호의 의심도 없이 확신하는 주인공 아리이다.
왜 작가는 가장 두텁고 흔들림 없는 믿음을 가진 자들로 하여금 극단적인 살인을 저지르게 하는 것일까? 왜 아리로 하여금 메시아라고 자처하는 랍비를 후려쳐 죽게 만든 것일까? 아마도 작가는 광신에 대한 성찰을 일깨우고자 했던 게 아닐까?
역자 후기
‘거룩한’ 죽음에 대한 질문
『쿰란』은 프랑스 최고의 지성인을 양성하는 고등사범학교 출신이며, 철학 교수 자격증을 딴 27세의 젊은 여성, 엘리에트 아베카시스의 첫 소설이다. 이 소설의 출발점은 기독교의 기원에 대한 비신자 입장에서의 의문, 혹은 합리적 사고를 하는 신자 입장에서의 의문이라고 할 수 있다. 기독교는 지난 이천 년간 가장 많은 신자를 가져온 종교이며, 서구 문화와 서구 정신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다. 기독교에서 예수는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말해진다. 하느님이 인간을 너무나 사랑하여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내주었으며, 그로 하여금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숨을 거두게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예수의 죽음에 관한 성경의 구절에는 모호하고 모순된 점도 적지 않다. 아베카시스는 여기서 출발한다. 그리하여 예수에 관한 현실적이며 역사적인 질문들을 중심으로 놀라운 신학적 소설을 써낸다. 그 출발점이 되는 의문 사항들은 다음과 같다.
예수는 실존 인물인가?
누가 예수를 죽였는가?
왜 죽인 것일까?
예수는 정말 신의 아들이었을까?
그렇다고 해서 『쿰란』이 심각한 신학적 논쟁으로 점철된 지루하고 무거운 소설인 것은 아니다. 또한 예수의 내면 세계를 그린 전기적 소설도 아니다. 예수의 ‘거룩한’ 죽음에 관한 ‘현실적인’ 의문 사항들을 규명하고자 하는 이 소설의 시간적 배경 또한 예수가 살았던 이천 년 전 과거만은 아니다. 『쿰란』에는 이천 년 전 예수의 죽음과 20세기 말의 연쇄살인 사건들이 비밀스럽게 맞물려 있다. 세기말의 잔혹한 살인 사건들의 열쇠를 풀기 위해서는 예수의 죽음에 관한 의문점을 풀어야 하기 때문에 『쿰란』에는 고고학적, 신학적 토론이 동원된다. 그러나 그것은 한가로운 탁상공론이 아니다. 신학적 담론들은 예루살렘뉴욕파리런던을 오가며 벌어지는 살인 사건과 긴밀히 맞물려 있다. 그리하여 독자는 그 피의 소용돌이를 숨가쁘게 따라가면서, 소설 곳곳에서 제공되는 신학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기독교의 역사적 기원과 예수의 현실적 죽음을 흥미진진하게 추리하게 된다. 이렇듯 『쿰란』은 스릴과 박진감이 넘치는 지적 추리소설인 동시에 신학적 모험소설이다.
소설의 사건은 1999년에 시작된다. 예루살렘의 정통 가톨릭 대주교가 끔찍한 십자가형에 처해져 살해된 채 발견된다. 그후 이 십자가형 살인은 연속적으로 일어난다. 그리고 일련의 사건 배후에는 쿰란의 사라진 두루마리가 있다.
이스라엘 군당국은 극비리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고고학자 다윗 코헨과 그의 아들 아리에게 사라진 두루마리를 되찾는 임무를 맡긴다. 소설의 주인공이자 화자인 아리는 예루살렘의 메아 셰아림에 사는 초정통 유태교인 하시드다. 그는 부친과 함께 유다 사막에서 뉴욕, 런던, 파리로 잃어버린 두루마리의 흔적을 찾아 떠난다. 그런 와중에 연속적인 살인, 미행, 납치, 유폐, 난투극, 연애 사건들이 벌어진다. 두 주인공은 사해 두루마리를 접하고 해독할 수 있었던 사람들을 찾아 나선다. 그러나 그들이 접근하기 전, 혹은 접근한 후에 그 사람들은 하나하나 십자가형에 처해진다. 누가 이들을 십자가형에 처하는 것일까? 사라진 육필 두루마리 속에는 예수에 관한 어떤 굉장한 비밀이 숨겨져 있기에 그것을 접한 사람마다 죽는 것일까? 바티칸과 교황 성서위원회는 왜 또 이 사라진 두루마리 찾기에 끼어드는 것일까? 숨가쁘게 연속되는 사건과 의문들은 독자를 이천 년 전 예수가 살아 있던 당시 유태의 정치적, 종교적, 역사적 상황으로 이끌고 간다. 정리하면 이렇다.
신학적·고고학적 대발견:쿰란의 사해 두루마리
쿰란 두루마리는 예수에 대해 말하고 있는가?
누가 예수를 죽였는지 말하고 있는가?
또한 이 소설은 실제의 고고학적 발견을 토대로 한 신학적인 주장들 위에 세워진 것이다. 소설의 제목 ‘쿰란’은 중대한 신학적·고고학적 발견이 이루어진 이스라엘의 한 지명이다. 1947년 사해 연안에 위치한 쿰란의 동굴에서 양피지 두루마리들이 발견되었다. 한 목동이 잃어버린 양을 찾으러 그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가 커다란 항아리들과 그 속에 보관되어 있던 두루마리들을 발견했던 것이다. 이 두루마리들과 조각 난 단편들을 신학계에서는 사해 문서(두루마리) 혹은 쿰란 텍스트라고 부른다. 그것을 쓴 사람들은 에세네 파 교인들로 추정되고 있다. 에세네 파는 바리새 파, 사두개 파와 함께 유태교의 한 종파로서, 공동체 생활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에세네 파 교도들이 손으로 베껴쓴 이 문서들은 성서와 유태교, 기독교의 초기 사건들을 담고 있는 사본들 중 가장 중요한 발견물이다.
쿰란 두루마리의 발견에 얽힌 이야기들과 그 두루마리들이 밝혀주는 예수와 기독교의 기원에 관한 새로운 사실들 또한 이 소설의 뼈대와 살을 이루고 있다. 그리하여 작가는 묻는다. “이 쿰란 텍스트는 예수에 대해 말하고 있는가? 예수를 죽인 자가 누구인지 말하고 있는가? 그 당시 예수를 죽일 수밖에 없었던 정치·사회·종교적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가?”
이 소설에서 소개되는 쿰란 두루마리의 발견과 그 내용, 쿰란 공동체에 관한 사실들은 『기독교 대백과 사전』(대한 기독교 서회 간행)이나 『신약성서 배경사』(E. 로제, 박창권 옮김, 대한 기독교 출판사, 1984) 등에서 읽을 수 있는 것과 놀랄 만큼 일치한다. 쿰란 문서 발견 당시의 이스라엘과 그 주변 국가들의 정치적 상황, 발견한 자들과 그것을 해독하는 과정도 인명만 제외하곤 거의 일치한다. 위의 질문들은 쿰란의 고고학적 발견에 접하는 사람들이 자연스레 품게 되는 의문점이자, 이 소설의 주인공이 풀려고 하는 의문의 핵심이다.
에세네인 공동체의 중심이었던 거주지의 발견과 그 거주지의 묘사, 그리고 쿰란에서 발견된 중요 두루마리의 내용(‘정의의 스승’에 대해 언급하는 〈찬양의 노래 두루마리〉, 어둠의 아들들과 빛의 아들들에 관한 싸움을 이야기하는 〈전쟁의 두루마리〉, 숨겨진 보물 목록과 보물 지도를 그리고 있는 〈청동 두루마리〉) 또한 『기독교 대백과 사전』이나 『신약성서 배경사』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과 일치한다. 다만 이 소설은 이러한 사실들을 단순히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탁월한 소설적 구성으로 20세기 말의 십자가 연쇄살인 사건의 비밀을 풀고, 그 단서와 범인을 찾는 일 속으로 독자를 끌어들인다. 그리하여 독자로 하여금 쿰란 두루마리를 추적하고 그것이 기독교에 대해 밝혀주는 새로운 사실과 유태교에 미치는 현실적인 파장을 추리해나가도록 유도한다. 이것이 이 흥미진진한 소설의 플롯이다.
사해 두루마리들을 인용하면서, 작가는 예수에 관한 신학적 의문들을 독자에게 일깨운다. 쿰란 텍스트에는 예수라는 이름이 언급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이름이 명명되지 않은 ‘정의의 스승’(『기독교 대백과 사전』에는 ‘의로운 교사’로, 『신약성서 배경사』에는 ‘의(義)의 선생’이라고 번역되어 있음)에 대한 구절이 있으며 그는 유태교를 정면으로 비난한 ‘불경한 사제’라고 되어 있다. 이 ‘정의의 스승’을 예수라고 해석할 수 있을까? 이러한 신학적인 의문을 소설 『쿰란』은 한 인물의 입을 통해 이렇게 제기한다.
가톨릭 교회는 두루마리들을 통해 밝혀진 사실들의 중요성을 더이상 부정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자면 이름없는 정의의 스승, 공식적인 유태교와 여호와의 성전의 숭배와 분명하게 결별한 그는 어떤 ‘불경한 사제’에게 박해를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누구였을까요? 그는 죽임을 당했거나, 혹은 ‘나무에 산 채로 매단’이라는 두루마리의 표현이 암시하는 대로 십자가에 못박혔을까요? 그는 예수와 관계가 있을까요? 어쩌면 정의의 스승과 예수는 동일인일지도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 신을 모독하는 걸까요?(1권, 200쪽)
사실 『기독교 대백과 사전』의 설명에 의하면 사해 두루마리에 이름이 없이 ‘정의의 스승’이라고 언급된 사람이 예수라는 극단적인 주장이 타이커라는 신학자와, 보다 최근에는 바에르라는 신학자에 의해 제기되었다고 하며, 또한 기독교는 에세네 파의 파생체이며, 예수는 ‘의로운 교사’의 후계자라는 중간적 입장의 주장도 있었다고 한다.
소설 속에서 쿰란 두루마리 해석에 참여했던 한 인물은 위의 가설의 증거로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밝혀준다.
에세네인들과 초기 기독교 교단 사이에 놀랄 만한 유사성이 있다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다. 이 유사성은 결코 우연의 결과일 수 없습니다. 두 공동체는 그들의 재산을 공동으로 관리했습니다. 일종의 총괄 금고 속에 공동 재산을 보관한 것입니다. 보물 금고였죠. 공동체의 구매를 위해 필요한 것은 정식 자격을 갖춘 재정관이 다시 나누어주었습니다. 예수는 어느 부자에게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고 말했습니다. ‘가난한 자들’이라는 칭호를 통해 예수가 가리킨 것은 자기 형제들, 즉 에세네인들이 분명합니다. ‘가난한 자들’이라는 용어는 바로 에세네인들이 그들 공동체의 회원들을 부르기 위해 사용하던 단어들 중 하나였던 것입니다. 에세네 종파에 합류하는 부유한 사람들은 그들의 부를 포기하고, 공동 재산에 개인 재산을 헌납해야 했습니다. 예수가 그 부자를 초대할 때 한 말은 바로 “이리 와서 우리와 함께 하자”라는 말이었고, 그것은 ‘예수 자신이 속해 있던’ 에세네인 공동체에 합류하기를 격려하는 말이었던 것입니다. (……) 특히 에세네인들과 초기 기독교인들은 똑같은 방식으로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에세네인들은 도시를 피해 시골에 살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들은 동물을 제물로 희생시키는 것을 거부했지요. 그들의 가르침은 경건함, 정의, 성스러움, 신과 미덕과 인간에 대한 사랑에 근거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에세네인들은 많은 유태인들에게 존경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신앙이 없는 점령군들과 내통하고 있던 여호와의 성전의 사제들에게는 해가 되는 일이었습니다.
게다가 이 두 공동체는 유사한 세계관을 갖고 있었습니다. 둘 다 종말에는 큰 재앙이 닥칠 것이라 예언하며, 메시아가 신의 왕국을 열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자기 공동체를 신에게 선택받은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 우주적 갈등의 핵심에 자신들을 위치시켰습니다. (……) 그들은 똑같은 메시아 신앙 체계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들 공동체 조직도 똑같이 종교 운동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우주관도 똑같았습니다. 이런 사실을 확인하려면 〈계율 개론서〉와 신약성서를 비교하십시오. (……) 여러분께 말씀드리건대, 에세네인들과 기독교인들은 하나의 종파였습니다.(2권, 43∼45쪽)
또한 작가는 기독교의 기원을 역사의 관점에서 그리고 기독교 기원 당시 동시대에 존재한 다른 종교와의 관계에서 생각하게 한다. 아울러 기독교 교리와 다른 종교 교리의 상호 유사성을 제시함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종교 교리 발전사 속에서 기독교를 바라보는 시각을 이해하게 한다.
신자들은 어떻게 생각할까요? 예수는 복음을 전파했고 메시아처럼 죽어 다시 부활하였고 사도들의 주선으로 기독교 교회를 창설하여 전세계에 퍼뜨렸다고 생각하오. 혹시 부활을 믿지 않는 신자라면, 예수의 정신에 감동된 사도들이 복음서를 펴낸 후 교회를 창설했다고 가정할 수도 있어요. (……) 어쨌든 신자들은 기독교 교리의 독창성을 믿소. 그들은 자기들 이전에 일어났던 것에 대해선 거의 모르오. 모세가 성취해놓은 일과 그리스도의 재림을 예언한 선지자들에 대한 것은 예외죠. 그리고 성경에 나오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아무 생각이 없었소. 신자들이 알지 못하는 것, 그러나 학자들은 알고 있는 것이 하나 있소. 그것은 예수가 살던 시대엔 수많은 이교의 신들이 있었고, 그 신들의 이름으로 비슷비슷한 교리들이 설파되었다는 것이오. 미트라 신도 인간의 구세주였소. 타무즈, 아도니스, 그리고 오시리스도 마찬가지요. 유태교적 시각으로는 예수는 구세주가 아니오. 또한 그것은 팔레스타인에서 일어난 초기 기독교에 친숙한 테마도 아니오. 유태인들, 그리고 유태 기독교인들이 기다리고 있는 메시아는 신의 아들이 아니오. 신이 보낸 자요. 그리고 그 메시아는 자신의 육신과 피를 줌으로써 세상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지상에 메시아의 왕국이 도래함으로써 세상을 구원하는 자요. 유태 기독교인들이 바라는 것은 그들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해방이 아니오. 설령 불멸성을 믿는다 할지라도, 그들이 바라는 것은 지상에 새로운 질서를 수립할 수 있는 해방이오. 구세주 예수라는 개념이 생겨난 것은 이교도 세계에 기독교가 확산된 후였소. (……) 만약 예수가 실제로 존재했었다면, 그는 분명 에세네 종파와 만났거나, 마주쳤거나, 부딪쳤을 것이 틀림없소. 게다가 에세네 종파 소속이었을 수도 있을 것이오.(1권, 225∼227쪽)
예수의 모습은 사실상 그 이전에 이미 존재했던 미트라 신 같은 또다른 인물들에게서 영감을 얻은 것이오. 초기 기독교인들이 택한 예수의 탄생일 12월 25일은, 이교도들에게는 동지(冬至)에 가까운 미트라 신의 탄생일이기도 하오. (……) 성모 마리아의 모습은 죽은 아들의 모습과 조화를 이루고 있소. 이런 모습은 기독교가 전파되던 시대에 지중해의 어느 나라에서나 보편적으로 존재하던 것이었소. 성모 마리아는 근본적으로 대지의 표상이오. 해마다 봄이 되면 생명을 잉태하는 성(聖)처녀인 동시에 어머니인 대지를 나타내오. 성모의 아들은 대지의 결실이외다. 이 아들은 태어나지만, 그건 단지 죽기 위해서요. 죽어서 대지와 결합해야만 새로운 순환이 시작되는 것이지요. ‘만약 한 알의 밀이 죽지 않으면……’이라는 구절을 기억하시지요. ‘구세주이신 신’과 ‘고통의 어머니’ 이야기는 모두 식물의 신화이외다. 계절의 순환은 천국의 주기와도 유사하오. 또한 시리우스가 동쪽에서 떠서 태양이 다시 솟아오름을 알릴 때 동방에 처녀좌가 뜨오. 다시 말해서 이교의 신화를 보면 지평선에서의 처녀좌의 이동은 태양과 더불어 출산하는 성모 마리아와 일치한다는 것이오.(1권, 227∼228쪽)
사라진 두루마리의 비밀
놀라울 정도로 정확한 쿰란 문서에 관한 사실들과 아직도 논란이 되고 있는 신학적 추정들 위에 작가 아베카시스는 1999년 예루살렘의 고고학 박물관에서 사라진 두루마리 하나를 상상해냈고, 그것을 중심으로 예수의 죽음과 기독교의 기원에 관한 새로운 가설을 제안한다. 결국 아리는 사라진 두루마리를 손에 넣게 되고, 그것을 아버지와 함께 해독한다.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구축된 허구의 이야기라고 볼 수 있는, 사라진 두루마리에 담긴 비밀은 무엇인가?
이 소설에서 예수를 죽인 자는 바로 예수 자신과 에세네 교인들이다. 몇천 년 동안의 메시아에 대한 기다림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그리하여 메시아의 도래를 앞당기기 위해 에세네 교인들은 자신들의 일원인 예수를 죽음의 상황에 처하게 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아베카시스가 상상해낸 놀라운 가설이다. 에세네인, 그들은 엄청난 일을 꾸민 것이다. 예수도 그것을 알고 그 계획에 가담했기에 예수의 죽음은 자발적으로 선택한 죽음이 된다. 에세네인들은 예수를 메시아라고 믿었기 때문에, 가장 독실한 에세네 교인인 유다로 하여금 예수를 밀고하도록 하여 로마군에게 넘긴다. 예수 또한 사형이라는 극형을 피할 수 있었음에도 스스로 죽음을 자초한다. 그들은 그렇게 하여 신이 개입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을 만들었던 것이다. 에세네인들은 이런 엄청난 일을 꾸미면서 죽음 바로 직전에 신이 예수가 메시아임을 만인에게 드러내줄 거라고 굳게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일은 ‘계획’처럼 진행되지 않았다.
광신에 대한 성찰:가장 독실한 신자에 의한 살인?
아베카시스는 에세네인들의 동굴 은둔생활이 현재까지 은밀히 지속되어왔다고 상상해낸다. 그리하여 이천 년 전 일어난 예수의 죽음과 관련된 믿음의 문제를 20세기 말로 옮겨 생각하게 한다.
작가의 가설에 따르면 예수를 죽인 것은 현실과 타협하지 않은, 오로지 신앙만으로 가장 독실하게 살았던 에세네인들이었다. 또 그중에서 가장 믿음에 흔들림이 없었던 유다가 제일 악역을 맡았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 소설 속에서 20세기 말 유태교 신도들이 메시아라고 믿던 랍비를 죽이게 되는 자도, 부모의 신앙까지 신랄하게 비판하는 초정통 유태교인 하시드, 자신의 순수성을 추호의 의심도 없이 확신하는 주인공 아리이다. 그리하여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광신에 대한 성찰을 일깨운다. 왜 작가는 가장 두텁고 흔들림 없는 믿음을 가진 자들로 하여금 극단적인 살인을 저지르게 하는 것일까? 왜 아리로 하여금 메시아라고 자처하는 랍비를 후려쳐 죽게 만든 것일까?
이에 대한 답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둔다.
다만 이 소설 속에 작가가 숨겨놓은 해답의 열쇠들을 열거해보자. 타락한 세상에서 은둔하여 이상적인 선(善)을 추구하며 사는 에세네인들과 하시드들은 스스로를 빛의 아들이라고 생각하고 다른 이들은 어둠의 아들이라고 확신하면서 금욕생활을 한다. 따라서 이들은 선한 자와 악한 자를 분명히 판가름해줄 메시아의 출현과 어둠의 아들들을 전멸시킬 최후의 전쟁을 고대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금욕주의는 장중하고 즐거운 기다림이었다. 최후를 얼마나 원했던가! (……) 매일 그들은 열렬히 기다림의 말을 읊조렸다. 별 하나가 야곱 앞으로 떨어졌도다. 이스라엘에서 왕홀이 일어섰도다. 그는 모압의 시대를 깨고 세트의 모든 아들들을 죽이리라. (……) 시대의 종말과 신의 지배의 도래와 불경한 자들의 전멸을 희망했다.”(2권, 199쪽)
그러나 랍비를 내려친 후 아리는 동굴 속 에세네인 사제에게서 새로운 지혜를 배운다. 그는 아리에게 ‘인간의 본성과 우리 각자가 가지고 있는 두 가지 마음’, ‘진실한 마음과 사악한 마음’을 구별하는 분별을 가르친다. “선한 마음과 사악한 마음, 이 두 마음이 이 시대에서 저 시대로, 대대로 모든 세대에 걸쳐 투쟁한다”(2권, 198쪽)고 아리에게 가르친다. 그리고 아리는 이제 공동체 모임에서 이렇게 고해한다. “저는 부당한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반항했고 죄를 지었으며, 불경한 자였습니다.”(2권, 200쪽)
이제 아리와 에세네인들은 ‘나와 우리’는 빛의 아들이며 ‘나, 우리’와 대립하는 타인들은 어둠의 아들이라는 확신에서 벗어나게 된다. 이제는 스스로를 “사랑의 형제인 동시에 죄악의 형제들”, “빛의 아들들인 동시에 어둠의 아들들”로 생각하게 된다. 그리하여 빛의 아들들과 어둠의 아들들의 전쟁은 ‘나’ 속의 선한 마음과 악한 마음의 투쟁으로, 메시아를 기다리는 것은 초조함 없는 영원한 기다림, 구도의 길이 되는 것이다.
이 책의 번역 대본으로 1996년 프랑스 랑세Ramsay 출판사에서 간행된 Qumran을 사용했다.
2000년 1월
홍상희
용어 해설
쿰란
이스라엘의 사해 북서 연안에 위치한 바위 지대. 사해에서 약 1.6킬로미터 떨어진 키르베트 쿰란에서 행해진 발굴을 통해 건물 유적이 발견되었다. 가장 중요한 건물은 직사각형의 대규모 건축물로서, 위층에는 문서실이 있고, 북서쪽 모서리에는 2층으로 된 거대한 석조 방어탑이 있다. 그후에도 여러 개의 물웅덩이와 저수지, 대장간, 제분소, 1200여 개의 묘지, 공동 식사 때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방 등이 발굴되었다.
쿰란 두루마리(사해 두루마리)
1947년, 베두인 족의 한 양치기 소년에 의해 쿰란 동굴에서 구약성서 사본들과 사해 육필 두루마리들이 무더기로 발견되었다. 쿰란 근처에 산재한 많은 동굴들 가운데 두루마리들이 발견된 곳은 모두 11개 동굴이며, 그중 가장 많은 문서가 나온 곳은 1952년에 발견된 4호 동굴로 약 550개의 문서가 발견되었다. 이 두루마리들 중에는 동전만한 크기로 바스러진 조각들이 많아 아직도 연구중이다. 현재까지 옥스퍼드 대학 출판부를 통해 80퍼센트 정도가 시리즈로 묶여 출간되었고, 2000년까지 전체 내용이 공개될 예정이다. 쿰란 두루마리는 기원전 200년부터 서기 50년 사이에 씌어진 기록들로, 가장 오래된 구약성서 등 성서 관련 기록들만 해도 127점에 이른다. 전문가들의 분석 결과, 수세기 동안 필사를 거치는 과정에서도 성서 내용이 비교적 온전하게 이어져왔고, 고대 유태교의 형태가 다양했으며, 유태교가 초기 기독교에 끼친 영향이 상상 외로 컸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여호와의 성전
예루살렘 성전이라고도 한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예배와 민족 동질성의 중심이었던 두 성전. 제1성전은 기원전 957년 다윗의 아들 솔로몬 왕이 완공했으나, 기원전 586년 바빌로니아의 느부갓네살 왕에 의해 파괴되었다. 바빌로니아 정복자 키루스 2세가 기원전 538년 칙령을 내려 포로로 잡혀온 유태인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성전을 재건하게 하였고, 기원전 515년 제2성전이 세워졌다. 페르시아 헬레니즘 시대(기원전 4∼3세기)에 이민족 군주들은 대체로 성전을 존중했으나,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는 제단에서 제우스 신에게 제사를 드림으로써 하스몬 가(家)의 반란을 촉발시켰고, 반란이 진행되는 동안 유다 마카베오는 성전을 정화하고 다시 봉헌했다. 유태의 왕 헤로데의 제2성전 재건 작업은 46년간 계속되었다. 헤로데 성전은 종교의식의 중심지일 뿐만 아니라, 성서와 그외 민족 문학 자료들을 보관하는 곳이기도 했고, 로마 시대에 유태인 최고 법정이었던 산헤드린의 집회소이기도 했다. 66년에 시작된 로마에 대한 유태인 반란은 성전을 중심으로 전개되었고, 70년 로마군은 성전을 파괴함으로써 반란을 진압했다.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부분은 오직 통곡의 벽(서벽)의 일부로서, 지금도 유태인들의 희망과 순례의 중심이 되고 있다.
에세네 파
기원전 2세기경부터 서기 1세기 말까지 팔레스타인에서 활동한 유태교 분파. 엄격한 규율과 철저한 순수성에 대한 명령을 지키며 공동체를 이루어 살았다. 약 4천 명 정도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개인 재산을 소유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해결하였고, 여자의 유혹을 경계해 대다수는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살았다. 바리새 파와 마찬가지로 모세 율법, 안식일, 정결의식을 철저히 지켰고 불멸과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믿었으나, 바리새 파와 달리 육체의 부활을 부정했고 공공생활을 거부했다. 신원이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은 어느 대사제(‘불경한 사제’)에게 그들의 스승(‘정의의 스승’)이 박해를 받자, 그들은 성전 밖에서 생활하였고, 성전에서 드리는 예배 또한 비판하였다. 쿰란 문서는 세상의 종말, 메시아의 도래에 대한 기대가 지니는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바리새 파
제2성전시대(기원전 515년∼서기 70년) 후반기에 팔레스타인에서 융성했던 유태교 분파. 마카베오 전쟁 직후인 기원전 165년경에 뚜렷한 한 집단으로 등장했다. 전통적으로 유태 민족 지도자들을 독점적으로 배출해온 대제사장 집단인 사두개 파와 달리, 대부분이 평신도와 서기관들이었다. 이들은 원래 정치적 집단이 아니라 주로 학자와 경건한 신자가 모인 집단이었고, 대중적인 지지를 받았다. 바리새 파와 사두개 파 사이에 분열을 가져온 근본적인 원인은 토라에 대한 태도, 법적 종교적 문제에 대한 해답를 토라 안에서 찾는 방식이 서로 달랐다는 데 있다. 바리새 파는 사후의 부활을 믿었고, 이 점은 사두개 파와 완전히 구별되는 점이다.
사두개 파
서기 70년 로마군에 의해 여호와의 성전이 파괴당하기 전 약 2세기 동안 번성했던 유태교 제사장 분파. 사두개 파는 문서화된 〈모세 오경〉(토라) 외에는 인정하지 않았으며, 바리새 파와 달리 죽음 이후의 영혼 불멸성, 몸의 부활, 천사 같은 영적 존재를 부인했다. 현상 유지를 옹호하여 기독교의 출현을 크게 경계했으며, 예수를 재판하고 죽이는 데 모종의 역할을 했음이 분명하다.
프랑스 천재 여성작가 엘리에트 아베카시스의 첫 장편소설. 2천 년 전 예수의 죽음과 이스라엘 쿰란 사해 문서에 얽힌 20세기 말 연쇄살인 사건의 비밀을 박진감 넘치는 지적 추리와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펼쳐낸 대담하고 매혹적인 신학 스릴러! 책장을 넘기는 동안 `누가 예수를 죽였는가? 왜 죽였는가?`라는 가장 불가해한 수수께끼의 물음표들을 따라 시종일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