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하는 요리사』(원제 『천육백 개의 배Mille six cents ventres』)는 1998년 ‘고등학생이 뽑은 공쿠르 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공쿠르 상의 권위와 명성에 대해서는 부언이 필요 없지만, 프랑스에서는 ‘고등학생이 뽑은 공쿠르 상’의 명성도 상당하다. 광범위한 설문조사와 토론을 거쳐 고등학생들이 직접 수상작을 고르는 이 상은 심사 과정의 축제성과 선정의 의외성으로 인해 매년 본상 격인 공쿠르 상 못지 않은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독자들의 관심을 모아왔다. 고등학생들의 난상토론을 거치는 만큼, 난해한 문학성보다는 편견 없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문학적 성취에 이 상이 주어지리라는 점은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일이지만, 종종 일반의 예상을 뛰어넘는 선정으로 즐거운 독서 이벤트를 제공하기도 해왔다.
뤽 랑Luc Lang 역시 1998년의 이 상 수상으로 단숨에 프랑스와 전 유럽이 주목하는 작가로 떠올랐다. 교도소 폭동을 둘러싸고 전개되는 흥미진진한 스토리 라인과 주인공인 교도소 주방장 헨리 블레인의 예측할 수 없는 인간성은 실로 소설읽기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데 부족함이 없고, 프랑스 고등학생들의 열광적 지지를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이 소설은 1990년 4월 영국 맨체스터 스트레인지웨이즈 교도소에서 일어났던 실제 폭동사건에서 소재를 얻어 씌어졌다. 그러나 교도소 폭동에서 떠올릴 수 있는 일반적인 사건의 전개는 작가의 관심사가 아니다. 뤽 랑은 헨리 블레인이라는 교도소 주방장을 등장시켜,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지점에서 인간 욕망의 다중적 만화경을 한껏 펼쳐 보인다. 여기에, 익살스럽고 냉소적인 문체가 가세하면서 기묘한 블랙유머를 빚어낸다. 다음은 작품의 간단한 개요다.
폭동으로 죄수들에게 점거된 스트레인지웨이즈 교도소. 교도소 구내식당 주방장 헨리 블레인은 교도소 바로 앞에 있는 자기 집 정원과 다락방을 보도진과 구경꾼들에게 돈을 받고 개방한다. 열광적인 셰익스피어 팬이자 정원 가꾸기가 취미인 헨리 블레인은 여자를 심하게 탐하긴 하지만 일견 평범한 인물로 보인다. 그러나 소설이 진행되면서 그의 끔찍한 행각들이 하나씩 드러나기 시작한다. 교도소 주방에서 그는 썩은 음식에 향신료를 첨가하여 죄수들에게 주고, 심지어는 자투리 고기에 산화마그네슘을 섞기도 했던 것. 한마디로 1,600명 죄수들의 배는 그의 기분에 좌우되는 실험용 도구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런데 더 끔찍한 것은 그가 엽기적인 살인마란 사실이다. 그의 정원에는 두 명의 전처와 한 명의 정부(情婦) 등 모두 네 사람의 시신이 묻혀 있었던 것. 폭동 보도가 인연이 되어 만난 신문기자 연인 역시 소설의 끝에 가면 엽기적인 관능의 대가로 살해되고 만다. 그러니까, 사회의 부패와 인간 욕망의 끝 모를 바닥을 뒤섞으며 작가 뤽 랑이 연출하고 있는 이 스펙터클한 인간 만화경은 시종 공포와 웃음을 교차시키면서 독자를 심문하는 듯하다. 그 심문의 요지는 아마도 이러하지 않을까. “자, 헨리 블레인은 과연 누구이며, 무엇인가? 인간의 욕망에는 바닥이 있는 것인가?” 프랑스 현지의 서평 역시 경탄과 놀라움으로 가득 차 있다.
공포스러우면서도 웃음을 자아내는 이 드라마틱한 소설에서, 작가는 독설과 분노를 마음껏 분출시킨다. 끝에 가서는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본 것처럼 박수를 보내고 싶다.
―르 누벨 옵세르바퇴르
주연배우인 헨리 블레인은 모든 인간 영혼의 뉘앙스를, 그 비열함을 물질화시킬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한 편의 비장한 희극처럼 소설을 짜나갔다. 연출 또한 훌륭하다.
―페엠아
작가 소개
뤽 랑Luc Lang
1956년 파리 근교 쉬렌에서 출생.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현재는 퐁투아즈의 세르즈 고등공립미술학교에서 미학과 예술사를 가르치고 있다. 32세 때 갈리마르에서 출간한 첫 소설 『수평선으로의 여행』(1988)은 어리숙한 농부를 주인공으로 한 강렬한 유머를 선보이면서 뤽 랑을 단숨에 주목받는 작가로 만들었다. 이후, 안개 가득한 항구에서 펼쳐지는 추리소설 『리버풀 밀물』(1991), 과거에 사로잡힌 인물의 복잡한 행로를 탐사하는 『분노』(1995) 등을 잇달아 펴내면서 대중적 명성을 굳혔다. 1990년 4월 영국 맨체스터의 스트레인지웨이즈에서 일어났던 교도소 폭동사건에서 소재를 얻어 씌어진 네번째 장편 『고문하는 요리사(원제:천육백 개의 배)』(1998)는 실로 뤽 랑의 대표작이라 할 만큼, 인간 군상의 뒤엉킨 욕망을 공포와 유머가 교차하는 흥미 만점의 이야기 솜씨로 그려냈다. 이 작품으로 그해 ‘고등학생이 뽑은 공쿠르 상Prix Goncourt des Lyc럆ns’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