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혀 있는 일상을 깨우는 따뜻한 언어의 힘
『아내 일기』 『아이들의 풀잎노래』 등의 시집으로 생활 현장에서 우러나온 따뜻한 시세계를 보여주었던 양정자 시인의 세번째 시집 『가장 쓸쓸한 일』이 출간되었다. 양정자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평이하고 단조로우면서도 친숙한 우리네 일상을 시의 공간 속으로 끌어들여 새롭게 눈뜨고 귀 열게 하고 있다.
이 시집에 실린 총 67편의 시들엔 시인의 생에 대한, 시간에 대한,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사유와 성찰이 따뜻하고도 섬세한 언어에 담겨 있다. 소설가 현기영 선생의 부인으로 살아온 특별한 고단함과 기쁨도 여러 곳에서 엿볼 수 있다.
흘러가는 시간, 그러나 사라지지 않는 순간들
『가장 쓸쓸한 일』에서 두드러지는 것 중의 하나는 ‘시간’에 대한 사유이다. 모든 것을 휩쓸어가버리는 시간은 “어떤 의식의 단단한 제방으로도 막을 수 없는” 거센 “허무함의 물결”(「시」)이다. 이 물결 앞에서 우리들 삶의 순간순간들은 가뭇없이 소멸해갈 수밖에 없다. 아무리 슬프고 기뻤던 일도 세월이 오래 지나면 흐릿해진다. 하물며 매일 반복되어 일어나는 듯 보이는 작고 사소한 일상의 순간순간들이야 손쓸 새도 없이 시간의 물살에 휩쓸려 망각의 세계로 빨려들어가게 마련이다. 우리들 삶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면서도, 너무나 쉽게 지나쳐버리고 잊어버리게 되는 소소한 일상들, 양정자 시인은 이런 일상의 순간들을 섬세하게 포착해내 한 편, 한 편의 시에 담아넣는다. 마치 사라져가는 한순간을 영원 속에 붙잡아두는 사진 한 장을 찍듯이.
양정자 시인에게 시의 소재가 되는 것은 앞서도 언급했듯이, 일상의 작은 것들이다. 화분에 심은 고추모, 출근길에 우연히 마주친 한 아주머니, 집 안 청소중에 눈에 띈 개미 한 마리, 어느 날 불쑥 찾아온 남편의 술친구, 소화가 안 돼 오랫동안 씹게 된 질긴 껌…… 무심코 지나쳐버릴 이런 사소한 일상의 뒤편에 숨은 진실을 양정자 시인은 예리하게 포착해낸다. 그의 일상시는 얼핏 평범해 보이지만, 그 속에선 “용광로처럼 항상 부글부글 끓는”(「자화상」) 시인의 내면적 열정이 느껴진다. 다음과 같은 시편은 그의 이런 특징을 잘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