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독일문학의 대표작가, “새로운 문학의 사제” 페터 한트케의 새 장편소설 출간!
현대 독일문단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하나로 손꼽히는 페터 한트케의 신작 장편소설 『어두운 밤 나는 적막한 집을 나섰다』(원제:『In einer dunklen Nacht ging ich aus meinem stillen Haus』, Suhrkamp, 1997)가 출간되었다. 작품을 발표할 때마다 파격적 형식과 내용으로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켜온 한트케는, 이 작품을 통해 다시 한번 자신의 문학적 독창성을 과시하고 있다.
절제된 언어, 신중한 서술, 정교하면서도 꾸밈없는 묘사. 한트케의 온갖 시적인 소품들로 가득 찬 한 편의 동화 같은 이야기. -디 차이트
디 차이트 지(紙)의 서평처럼 온갖 시적인 소품들로 가득한 이 소설은 잃어버린 자아를 찾아가는 환상적 여로를 펼쳐 보인다.
영혼을 치유하는 환상의 편력, 이제껏 들어보지 못한 기막힌 모험과 사랑 이야기!
잘츠부르크 근방, 잊혀진 도시 탁스함에 중년의 약사가 살고 있다. 한 집에 사는 아내와는 각자 자기만의 영역을 정해두고 별거 아닌 별거 상태, 집 나간 아들은 소식조차 모른다. 약국과 집, 점심과 저녁을 해결하는 지하 레스토랑을 벗어나지 않는 건조한 일상 속에 그가 유일하게 몰두하는 것은 버섯과 중세 서사시이다. 어느 날 숲속에서 머리에 심한 타격을 입고 실어증에 걸린 약사는 레스토랑에서 우연히 만난 두 남자(옛 올림픽 영웅과 한때 유명했던 시인)와 길을 떠나게 된다. 상상의 도시 산타 페를 찾아가는 여행에서 갖가지 기괴하고 우스꽝스러운 모험을 겪은 약사는 홀로 황량한 초원인 스텝 지역을 횡단한다. 여행을 하는 동안 그는 잃어버린 아들을 만나고 새로운 여인과 사랑에 빠지기도 하면서 가족에 대한 죄의식, 깊은 고독의 미로로부터 서서히 놓여난다. 현실과 환상,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이 그로테스크한 여행과 편력이 끝날 무렵 그는 말하는 힘을 되찾고 자신의 진정한 얼굴과 대면한다. 이러한 그의 여행을 뒤쫓다 보면, 우리는 어느새 그 어느 때도 존재하지 않았던 시간,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공간 속으로 빠져 들어가게 된다.
환상과 현실, 과거와 현재, 독자와 화자가 교차하는,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
환상적인 모험소설인 동시에 사랑의 이야기이기도 한 이 소설은 탁스함의 약사로부터 이야기를 전해들은 서술자에 의해 전달된다. 작품을 발표할 때마다 기존 형식을 파괴하고 새로운 형식을 창안해내는 것으로 유명한 한트케의 이번 작품은 그의 전 작품들에 비해서는 전통적인 이야기 형식을 많이 받아들이고 있지만 이야기 속의 이야기,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로 여전히 새로운 면모를 보여준다. 방랑과 기행(奇行), 과거에 대한 풍자, 위트, 돈 키호테적인 발상과 낭만적 소재, 한트케는 이 모든 것들을 한 텍스트 안에 섞어놓고 있으며, 이를 독특한 서술 형식에 담아냄으로써, 전혀 새로운 차원의 소설을 완성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소설의 묘미는 그 독특한 형식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한트케는 시인의 입을 빌려 ‘요즘 젊은이’들의 사랑의 행태를 비웃는 등 작품 곳곳에 작가 특유의 날카로운 시선을 숨겨놓고 있다. 약사의 실어증은 “새로운 시선을 획득하기 위한 전제”가 되며, 말을 되찾는 과정은 스스로에게조차 기억되지 못하던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에 다름아니다.
『어두운 밤 나는 적막한 집을 나섰다』는 또한 한트케가 지난 이십여 년간 쓰고 있는, 이야기에 대한 끝없는 이야기의 일부라고 할 수 있다. 탁스함이라는 지명은 이전에 씌어진 『고통받는 중국인』이라는 소설에 등장했던 장소이며, 이 작품에서 서술자의 친구로 등장하는 안드레아스 로저 역시 『고통받는 중국인』에 등장한 바 있다. 이외에도 이전 작품에 나타나는 황량한 장소, 석회암으로 된 태고시대 같은 풍경 등이 이 소설 속에서 거듭 변형되어 나타난다. 한트케의 최신 장편소설 『어두운 밤 나는 적막한 집을 나섰다』는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면서 동시에 자기 작품에 대한 패러디이기도 한 것이다. 한트케는 이처럼 끊임없이 새로운 변주를 시도하며 자신이 추구하는 내면화된 주관주의와 고향으로의 귀환을 서술한다.
▶ 페터 한트케 Peter Handke
1942년 오스트리아 그리펜에서 출생한 한트케는 그라츠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다 첫 소설 『말벌들』(1966)이 출간되자 학업을 중단하고, 이후 창작에만 전념하고 있다. 파격적인 문학관과 거침없는 독설로 등단 초기부터 많은 화제를 뿌려온 그는, 기존의 형식을 파괴하며 매번 새로운 형식의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큰 화제를 불러일으킨 희곡 『관객모독』(1966)과 『카스파』(1967) 이외에도, 소설 『페널티 킥을 앞둔 골키퍼의 불안』(1970) 『긴 이별 짧은 편지』(1972), 『느린 귀향』(1979), 예술이론 에세이 『나는 상아탑의 거주자』(1967), 시집 『긴 시간에게 바치는 시』(1986) 등 다수의 작품이 있다. 그의 작품들은 빔 벤더스 등 유명 감독들에 의해 영화화되었으며, 자신이 직접 연출하기도 했다. 하우프트만 상(1967), 실러 상(1972), 게오르크 뷔히너 상(1973), 카프카 상(1979), 그릴파르처 상(1983) 등을 수상했다.
* 변형판/256쪽/값 8,000원
* 출간일:2001년 1월 31일
* 책임 편집:이진영, 정미영, 조연주(02-927-6790∼5, 내선 203, 205, 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