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대 첫 소설집 『묵호를 아는가』 11년 만에 재출간!
소설가 심상대의 첫 소설집 『묵호를 아는가』가 마르시아스 심이라는 작가의 새로운 이름으로 재출간되었다. 11편의 중·단편으로 이루어진 『묵호를 아는가』는 작가 특유의 정교한 언어 감각과 탁월한 기법의 묘를 보여주는 한편, 각 작품마다 뚜렷한 색채를 지니고 있어, 발표 당시부터 무궁무진하고 다양한 화제의 샘을 지닌 프로 이야기꾼의 탄생을 예고하고 있었다. 그후 왕성한 창작활동을 통해 이미 뛰어난 심미주의자이자 재기 넘치는 이야기꾼으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등단 시절 여러 평자와 독자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던 작가 심상대. 이번에 새롭게 선보이는 『묵호를 아는가』는 등단 11년이 지난 지금 마르시아스 심이라는 필명을 내걸고 새로운 문학적 도약을 준비하는 작가의 초기 작품들을 새롭게 접할 기회가 될 것이다.
탐미와 서정, 그리고 이야기-- 다채로운 작품 세계
작가의 데뷔작 중 하나이자 소설집의 첫머리에 실려 있는 「묘사총」은 단 두 가구가―서편엔 절뚝발이 늙은이와 할멈이 어린 딸을 데리고 살고, 동편엔 문둥병을 앓았던 흉한 몰골의 사내가 임신한 열네 살 철부지 계집과 함께 사는― 살고 있는 깊은 산골에서 벌어진 비극적인 사건을 다룬 단편으로 섬뜩한 느낌이 들 정도의 탐미적인 묘사와 분위기가 두드러지는 작품이다.
임동확 시인이 "고등학교 국어책에 실릴 만하다"고 평한 빼어난 단편,「강」은 세 사미니가 이승에서 보내는 마지막 여정을 그리고 있다. 세 사미니가 나누는 선문답 같은 대화와 그들의 신비한 죽음이 공후인 설화와 낙화암에서 몸을 던진 삼천궁녀의 이야기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며 허무적 서정의 한 정점을 보여준다.
중편 「병돌씨의 어느 날」은 알레고리적 성격이 강한 작품으로, 남의 똥을 대신 눠주는일을 하는 대변회사(代便會社) 직원 병돌씨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자본주의 그늘 속의 가난과 물신화로 치닫는 비정한 세태를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다.
표제작이기도 한 네번째 작품, 「묵호를 아는가」엔 작가 심상대의 고향이자 문학적 모태이기도 한 술과 바람의 도시 묵호가 전면에 등장한다. 상처를 안고 고향인 묵호에 들른 주인공의 내면 풍경이 썩은 비린내가 풍기는, 그러나 그 어디보다도 삶의 활력에 가득 차 있는 고장, 묵호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야성적인 생명력으로 일렁이는 이 작품을 두고 소설가 윤후명씨는 "일상의 나날이 곤고하거든, 묵호에 가서 스산한 바람 속에 참 삶을 맞으리라. 참사랑의 뜻을 읽으리라"고 평하기도 했다.
「수채화 감상」은 어느 노(老)작가의 조용한 일상과 문학에 대한 열정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으며, 「야곱의 외출」은 해외입양을 소재로 하여 메말라가는 인간성을 비판한다. 「희복씨의 부동산」은 어촌에서 상경하여 지금은 도시 청소부로 일하는 희복씨를 통해, 지상에 방 한 칸 마련하기 어려운 가난한 도시 빈민의 삶을 리얼하게 묘사한다.
「자전거 도둑」은 시골 초등학교 교사 정숙과 교감 선생과의 어느 가을날의 성적 일탈을, 정숙이 가르치는 반 아이들의 자전거 훔쳐 타기 놀이와 영화의 교차편집처럼 대비시켜가며, 인간의 자기 기만과 위선을 동화 구연풍의 문체로 깔끔하게 풍자해낸 작품이다.
소설집 전체에서 가장 새로운 형식의 글쓰기라고 할 수 있는 「양풍전」은 전체가 어머니와 아들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는 작품이다. 어머니는 옛소설 양풍전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자연스럽게 자신의 가족 이야기로 옮겨가, 가끔 아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일제강점기와 육이오를 겪으면서 온갖 사건을 겪는 자신의 가족사를 길게 사투리로 풀어놓는다. 어머니의 이야기 자체가 한 편의 소설이 되는 이 작품은 평론가 김형중씨의 지적대로 "이야기 자체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를 그 바닥에 깔고 있"다.
모더니즘의 실험적 형식이 돋보이는 작품,「몬드리안과 로스코를 위한 구성」은 인간의 실존과 죽음에 대한 철학적 문제를 초현실적인 독특한 분위기로 풀어내고 있으며, 마지막 작품인 「나무꾼의 뜻」은 우리 전래 민담인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를 심상대 식으로 재해석해 이야기하면서 작가 자신의 인생관을 은근히 드러내고 있는 작품이다.
『묵호를 아는가』에 실린 11편의 작품들은 저마다 뚜렷한 자기 색깔을 내뿜고 있다. 탐미적 색채가 강한 「묘사총」과「강」, 리얼리즘 계열의 소설로 분류할 수 있는 「희복씨의 부동산」과 「야곱의 외출」, 서정적 소설의 세계를 보여주는 「묵호를 아는가」, 그리고 실험적인 형식과 구성을 보여주는 「몬드리안과 로스코를 위한 구성」과 독특한 구성의 「양풍전」...... 이 작품들은 언뜻 보면 한 작가의 한 작품집에 실린 것이라 하기 어려울 정도의 다채로운 작품세계를 보여준다. 이런 다채로움은 이 작품집만 놓고 봤을 때 이 작가를 리얼리즘 계열의 작가로도 혹은 탐미주의나 예술지상주의 계열의 작가로도 분류하기 어렵게 만든다. 이는 또한 심상대란 작가가 지니고 있는 무한하고 다양한 가능성을 암시한다고도 할 수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집의 작품들에선 소설집 전체를 관통하는 마르시아스 심, 심상대 특유의 체취가 풍겨난다. 그 체취, 심상대다움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참삶, 참세상에 대한 갈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묵호를 아는가」의 주인공이 고향 묵호에 와서 찾아 헤매는 것은,「몬드리안과 로스코를 위한 구성」의 주인공이 한편으론 살인 욕구를 느끼면서도 애타게 희구하는 것은, 참다운 삶, 참다운 세상이다. 작가 심상대가 지향하는 참삶, 참세상이 어떤 것인지 꼬집어 말하긴 어렵지만, 그것은 대략 인간과 인간이 진정한 유대를 누리는 그런 삶,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문명과 이성으로 제도화되기 전의 인간 특유의 활기차고 야성적인 생명의 숨결이 살아 숨쉬는 그런 세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을 남의 똥을 대신 누고 사는「병돌씨의 어느 날」의 주인공 병돌씨는 모든 사람들이 제 집에서 제 똥 누고 사는 세상이라고 표현하고, 「나무꾼의 뜻」의 나무꾼은 그런 삶을 찾아 편안하고 안락한 천상의 생활을 마다하고 지상으로 내려온다.
이 작품집에 은연중에 흐르는 도시 문명에 대한 비판이나 작가의 최근작 『떨림』에 드러나는 야성적 성에 대한 탐닉은 작가의 이러한 자연적이고 생명력 넘치는 삶에 대한 추구의 한 일환이라 볼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심상대의 첫 소설집 『묵호를 아는가』는 한국문학에서 독특한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될 심상대란 작가의 탄생을 예고하는 동시에 그의 앞으로의 작품세계를 풍성하게 암시하고 있다.
마르시아스 심
* 신국판 / 368쪽 / 8,000원
* 작가연락처 : 017-207-5264
* 편집담당: 김현정(927-6790, 내선 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