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여 잊지 마라.
서로 달라서 아름다운 것임을
그리고
있는 바 그대로 보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함께 날고 싶던 너
하늘과 자유를 꿈꾸던 너
아직도 옛 꿈을 잊지 않았을
내 사랑하는 오리에게
‘작가의 말’에서 비치는 것처럼 『빼빼』는 작은 꿈 하나 믿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진실된 사랑법과 진정한 꿈꾸기의 의미를 일깨워주는 따뜻한 이야기이다.‘왜 오리들은 날지 못하는 것일까?’라는 의문에서 출발해, 잃어버린 꿈을 찾아 떠나는 ‘집오리’들의 투명하고 아릿한 동화 『빼빼』에는 참 자유, 참 사랑, 참 꿈에 대한 간절함이 그득하다. 날개가 있음에도 날지 못하는 눈맑은 꼬마 오리의 자기 찾기 여행에는 『깡통』과 『모랫말 아이들』을 통해 정감 있는 수묵화를 선보였던 삽화가 김세현씨가 동행해주었다.
산다는 것은 꿈을 꾼다는 것, 하늘을 꿈꾸는 꼬마 오리의 힘찬 날갯짓
아득한 옛날, 화산 폭발이 있었다. 북쪽을 향해 날아가던 무리 중 튼튼한 오리들은 화산재와 연기를 뚫고 힘차게 날아갔지만 나머지는 호숫가에 남아야 했다. 데리러 오겠다던 오리들은 돌아오지 않았고 호숫가의 오리들은 사람들에게 붙잡혀 우리 속에 갇혔다. 긴 세월을 갇혀 지낸 오리들은 나는 법을 잊어버렸다. 곧 하늘을 향한 그리움마저 사라지고 집오리의 운명으로 살아간다.
하지만, 어린 빼빼의 꿈은 하늘을 나는 것. 날개가 있다면 당연히 날 수도 있다고 굳게 믿는 빼빼. 자신만의 꿈을 찾아 외롭지만 당당히 길을 떠난다. 곱게 물든 저녁놀 아래 꿈을 찾아 길 떠나는 눈 맑은 꼬마 오리 빼빼를 따라가보자.
빼빼는 맨 처음 두더지를 만난다. 하지만 꿈을 찾아 떠난 오리에게 “내 소원은 말야, 땅강아지를 실컷 먹고 겨울 내내 꼼짝 않고 자는 거야”라고 말하는 두더지가 좋아 보일 리가 없다. 그러나 두더지와의 만남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빼빼는 ‘겨울’이란 단어를 배웠다. 새하얀 벌판 위를 자유롭게 날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리고 새로운 생각들을 만난다.
"사랑이 가득한 세상을 꿈꾸거든 먼저 네 가슴을 사랑으로 채워야 돼. 세상은 네 스스로 가슴에 품고 간직한 만큼이란다" 라며 사랑을 가르치는 비둘기 할머니, "꼬마야, 마음에 새겨둬라! 우리를 옭아매는 가장 질긴 사슬은 우리 가슴에 꼬물거리는 외로움이라는 것을!" 하며 외로운 자유와 그 자유의 힘을 알려주는 코뚜레가 달린 황소 아저씨,
"자기 틀을 버리고 나면, 눈에 띄는 것 모두가 온 우주에 오직 하나뿐인 소중한 것이 되지. 아름답다는 것은 이것이 저것과 다르다" 는 것을 전하는 소쩍새 아줌마. 이들 모두는 빼빼가 꿈을 잃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힘이 된다. 어둡고 위험한 숲길을 따라가는 건 무섭고 외로운 일이지만, 좁은 마음을 버리고 넓은 ‘마음의 하늘’을 날며 나날이 자신의 꿈을 다져간다. “반드시 날고 말 거야” 다짐한다.
몸 안으로 들어온 오리를 몸 밖으로 꺼내 날릴 수 있다면!
빼빼는 드디어 스승들을 만난다. 청둥오리처럼, 철새처럼 나는 수행법을 가르치기 위해 두루미 할아버지는 ‘깃털 명상’을 알려준다. 오로지 깃털 하나에만 매달리게 함으로써 빼빼의 집중력을 향상시키고 집착에서 벗어나게 한다. 올빼미 할아버지는 깃털을 떠올리며 빼빼 자신의 몸을 살피라고 가르친다. 자기 몸과 마음을 들여다보게 하는 과정이다.
외로운 수련 과정을 끝마친 빼빼의 여행길에 나타난 것은 야생 오리떼. 꼬마 오리에게도 이제 민들레, 진달래, 왕발이 같은 친구가 생겼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달빛 할머니의 전설을 통해 하늘을 날았던 오리를 알게 되었다는 것, 우리 속에 갇혀 있는 호숫가 오리들을 위해 길잡이 오리가 되어야겠다는 각오를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긴 방랑 끝에 빼빼는 결국 호숫가의 집오리 무리에게 돌아간다. 그리고 그들을 이끄는 길잡이 오리가 되어 하늘을 날아간다. 자신의 꿈을 무리와 함께 이루어낸다. 하지만 빼빼는 어떻게 날 수 있었던 것일까? 어떻게 집오리는 잃어버린 날개를 되찾을 수 있었던 것일까? 여기엔 ‘꿈을 오래 품은 자에게 깨침은 문득 오고야 만다’는 재연 스님의 전언이 숨어 있다. 소설가 신경숙씨의 지적처럼 『빼빼』는 “한 마리의 오리를 통해 서로 이끌어주고 상승시키는 관계에 대하여, 새하얀 알 같은 꿈을 품고 살아가는 일의 지난함에 대하여, 어떤 상황에서나 발생되는 사랑과 우정의 신비로운 힘에 대하여 다시 성찰하게” 하는 소중한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오리가 우리 몸 속에 들어와 있다. 관습과 제도와 일상에 길들여진 집오리 빼빼는 바로 당신이고, 나다. 집오리처럼 던져주는 먹이만 먹으면서 엉덩이를 뒤뚱거리며 살아갈 것인가, 날아오르기 위해 처연한 방황을 택할 것인가. 재연 스님은 아주 쉽고도 명쾌하게 대답한다. 방황을 두려워하지 마라, 방황의 쓴맛을 본 자만이 날개를 펴고 날아오를 수 있다, 라고 말이다. 이 책을 읽고 몸 안으로 들어온 오리를 몸 밖으로 꺼내 날릴 수 있다면, 당신은 이미 수행자에 가까워졌다는 뜻이다. 안도현(시인)
행여 잊지 마라 서로 달라서 아름다운 것임을
그리고 있는 바 그대로 보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함께 날고 싶던 너
하늘과 자유를 꿈꾸던 너
아직도 옛 꿈을 잊지 않았을 내 사랑하는 오리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