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세계의문학』에 「반근대의 정신」, 『작가세계』에 「도시화·산업화시대의 방외인」을 발표하며 평론 활동을 시작한 동국대 국문과 황종연 교수의 첫 평론집, 『비루한 것의 카니발』이 문학동네에서 출간되었다.
밀란 쿤데라는 비평의 의의를 강조하면서 “비평이 없다면 예술이 가져온 발견은 이름을 얻지 못하여 예술의 역사에 부재하는 것으로 남게 된다. (……) 비평이라는 명상의 배경이 없다면 작품들은 고립된 제스처, 몰역사적 우연이 되어 머지않아 잊혀진다”고 썼다. 저자가 ‘책머리에’에서 언급했듯이, “문학비평의 본분은 문학작품에 의해 이루어진 발견을 알아보고 명명하는 것”이다. 이번 평론집에서 황종연 교수는 위의 말처럼, 우리 시대의 문학작품(특히 90년대의 소설들)이 산출하는 새로움을 알아보고 명명하는 작업을 치밀한 텍스트 읽기를 통해 시도한다. 든든한 이론적 배경과 문화사적 지평을 꿰뚫는 폭넓은 시야를 바탕으로, 문학작품의 외재적 측면과 내재적 측면을 아우르는 그의 비평은 중후하면서도 유연한 비평의 진수를 보여준다.
우리 시대, 우리 소설들, 그 다양한 단면
『비루한 것의 카니발』은 총 5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는 「비루한 것의 카니발」 「편모슬하, 혹은 성장의 고행」 「여성소설과 전설의 우물」 「민족을 상상하는 문학」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소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 현대소설의 여러 가지 성격과 경향들을 성장소설, 여성소설, 민족주의 소설 등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 있다. 표제작인 「비루한 것의 카니발」은 장정일 소설과 최인석 소설을 중심으로 도발적인 위반충동을 표출하는 일탈적 인물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해, 기성 문화에 대한 적대감과 반문화적 counter-culture 색깔을 표출하는, 90년대 소설의 주요한 한 경향에 대해 다루고 있다. 저자는 카니발레스크의 위반과 전복의 전통에서 자라나온 이런 경향에 대해 ‘비루한 것의 카니발’이라 명명하며, 이런 작품들에서 개인의 자기 창조적 자유를 실현하려는 ‘진정성authenticity’에 대한 추구를 읽어낸다.
2부는 신경숙과 윤대녕의 소설을 주축으로 하여, 80년대의 거대담론과 리얼리즘의 규율에서 벗어나 개인의 내면과 진실, 개인의 현대적 실존에 집중하는 90년대의 ‘내면성의 문학’에 대해 다양한 분석을 하고 있다.
3부의 첫번째 글 「문제적 개인의 행방」은 90년대 소설에서 문제적 개인(전통적 형식들이 권위를 상실함과 동시에 정체성이 자명하지 않게 되어버린 개인)이 어떻게 발견되고 어떤 특성을 갖고 있는지를 이야기하고, 「삶의 화음과 소음 사이」는 제목 그대로 삶의 화음(이상)과 소음(일상적 현실, 풍속)을 언급하면서 최근 소설들을 대상으로 한국소설의 리얼리즘의 미학에 대해 폭넓게 탐색한다. 3부의 마지막 글, 「진정성, 개인주의, 소설」은 1부와 2부에서도 언급된, 그리고 이 책의 주요 주제 중 하나인, 개인의 ‘진정성’ 문제를 깊이 있게 다룬다.
4부는 90년대에 데뷔해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작가 5인의 소설에 대한 현장비평이다. 전반부는 여성작가들―은희경, 서하진, 전경린―의 소설을 분석한다. 첫번째 글인 은희경에 대한 작가론에서는 그의 소설 인물들의 나르시시즘적 성격(인물들의 이런 나르시시즘적 성격은 비단 은희경의 소설뿐만 아니라 90년대의 젊은 작가들의 소설에 폭넓게 나타나고 있다)과 “사랑은 천상의 약속일 뿐이므로 천상으로 돌려보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랑의 탈낭만화’ 경향에 대해 이야기하고, 「이졸데의 손녀들, 그들의 불륜과 소설」에서는 타성화된 일상을 벗어나는 힘으로서의 내면적 정열(흔히 사랑으로 나타나는)이란 관점에서 서하진과 전경린의 소설에 대한 흥미 있는 분석을 시도한다.
4부의 후반부는 남성작가들의 소설, 80년대의 민중주의적 서사에서 벗어나 서민의 삶을 따뜻한 해학으로 다루는 한창훈의 소설과 최근 나온 소설 중 가장 충격적이라고 할 만한 백민석의 『목화밭 엽기전』에 대한 비평으로 이루어져 있다.
마지막 5부는 ‘근대성’의 문제에 대한 깊이 있는 천착을 보여준다. 마셜 버먼의 저서, 『단단한 것은 모두 녹아 날아간다』를 중심으로 ‘근대성’의 특징에 대해 논의한 후, ‘근대성’의 문제를 끌어들여 새로운 비평을 보여주고 있는 서영채, 이광호의 비평이론과, 반근대성을 드러내는 이형기의 시론, 이태준의 단편소설에 대해 분석한다.
한국문학의 행복한 숨쉬기
황종연이 이번 평론집에서 비평의 대상으로 삼는 텍스트들은 대부분 90년대에 나온 작품들, 특히 소설들이다. 저자 자신이 ‘책머리에’에서 밝혔듯이 “대상작품과 시대를 같이하는 비평”은 덧없는 유행의 제물이 될 수 있다는 저주를 받고 있으며, 예측할 수 없는 문학의 역사에 대한 일종의 ‘도박’이랄 수도 있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새로운 것에 최초의 이름을 지어줄 특권”을 가진다는 축복을 누릴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동시대 작품들에 대한 “비평적 모험을 통해 근대성을 향해가는, 혹은 근대성을 넘어서려는 한국문학의 다양한 정점들을 누구보다 민감하게 그리고 정확하게 포착해”(류보선)내는 황종연의 비평들은 이런 축복을 온전히 누리는 듯하다. 문학적 향취를 잃지 않으면서도 텍스트의 섬세한 결을 탁월하게 읽어내는 그의 비평은 성민엽 교수의 평대로 “한국문학이 행복하게 숨을 쉴” 수 있는 어떤 공간을 빚어내며 “비평의 저주받은 운명을 축복의 그것으로 바”꾼다.
황종연의 비평은 마법의 손을 연상시킨다. 도대체 풀릴 법하지 않은 암호 같은 작품, 작가, 경향들이 그의 비평이 가닿을 때마다 여지없이 그 웅자를 드러낸다. 그의 비평은 작품 속의 단어와 그 해석에 매달려 작품의 내용을 확정짓는 단계를 넘어 작품 속에 은폐된 진리의 내용을 찾아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