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한 이야기꾼의 슬픈 농담!
이 소설은 외할머니, 어머니, 형과 형수, 큰누나와 매형, 사돈어른, 작은누나, 나, 그리고 나중에는 조카 머꼬 등 십여 명의 가족들이 한데 뭉쳐서 아등바등 살아가는 평범한 가족 세태 소설의 외양을 띠고 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가족들 한 사람, 한 사람은 한국 사회의 사회사를 이루는 장면들을 상징하도록 조립되어 있으며, 소설 속의 사건들은 한국 사회를 긁고 지나간 지난한 역사의 한 장면을 떠올리도록 정교하게 배치되어 있다.
화자인 나의 할아버지는 종이었다가 일제 강점기에 풀려나 농사꾼 반, 술꾼 반으로 살다 죽었고, 배운 것 없고 가진 것 없는 아버지는 목수로 떠돌다가 병들어 죽었으며, 어머니는 공장에 나가면서 집 한쪽을 사글세로 놓아 사남매를 키워냈다. 형은 일류 대학을 나온 과거의 운동권 학생으로 지금은 대기업에 취직해 주식 투자에 혈안이 되어 있으며, 큰누나는 가죽 공장에 다니면서 돈을 벌어 동생을 공부시키다가 결혼해 고깃집을 하고 있으며, 작은누나는 아마도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회사에 취직해 다니고 있으며, 막내이자 화자인 나는 군에 갔다 와서 어학연수를 준비중이다. 그러나 때마침 IMF가 터져 졸지에 계획이 뒤틀리고 가족들은 순식간에 파탄 상황에 빠진다. 공장에 다니던 어머니의 근무 조건은 극도로 악화되고, 형과 작은누나의 임금은 대거 삭감되며 갈빗집으로 호황을 누리던 큰누나는 파산해버린다. 어학연수의 계획이 좌절된 나는 가족들의 고달픈 나날과 아르바이트 경험을 통해 현실에 절망하면서도 예쁜 조카 머꼬와 멋진 여자친구 해연을 갖는 행운을 얻는다.
이렇듯 이 나라의 가장 변두리에 위치해 있으면서도 언제나 그 한복판의 상처를 받고 정치경제사의 불운과 맞닥뜨리고 심지어 천재지변까지 그냥 지나치지 않는 머꼬네집.
작가는 이 가족의 보잘것없는 가족사를 통시적으로 엮고, 별 볼일 없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공시적으로 아우르면서 그 안의 꿈과 고통을 몽환적이면서도 따뜻하게 감싸안는다.
아무리 어려운 환경에도 어딘가에 숨어 삶을 지탱하게 하는 웃음. 소설 초반부의 장수와 같은 기운과 머슴의 근성이라고 하는 이중성으로 포착된 할아버지의 모습과, 집과는 반대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것이 결국은 뒤로 물러나는 것에 불과해 종당엔 언제나 귀가하고야 마는 아버지의 독특한 보행법은 이러한 역설적 상황을 은유적으로 암시하고 있다.
『머꼬네 집에 놀러 올래?』는 비애감이 묻어나는 상황을 웃음으로(그러나 슬픔이 묻어나는) 소화하면서 사회사와 개인사간의 밀접하면서도 어긋나고 불일치하면서도 맞물리는 미묘한 관계를 포착해낸 작가의 역량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첫 장편 『결혼은, 미친 짓이다』를 내놓은 후“영화만큼이나 빠르게 읽히면서 만화만큼이나 킥킥대는, 그러나 소설답게 독자를 깊은 생각에 빠뜨려놓는 글"을 쓰고 싶다던 작가의 의도가 유감없이 발휘된 이 소설은 단층이 다른 세대의 감수성을 독자들에게 선사할 것이다.
작품에 대한 평
이만교의 가벼움은 가벼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가볍게 말하기에서 오는 것 같다. 나는 그의 가볍게 말하기에서 소설의 희망을 읽는다. 이만교 소설의 맛은 그가 가볍게 뱉아낸 것 같은 말의 배후에 숨어 있다. 그는 슬픔조차도 농담에다 버무려놓는데, 그 농담은 무시무시하다. 나의 독법에 따르면 『머꼬네 집에 놀러 올래?』는 슬픈 소설, 이만교가 웃으면서 들려주는 매우 슬픈 농담이다. (이윤기-소설가·번역가)
이만교의 소설은 일상의 지루함에 눌리고 접혀서 스스로 순수의 그림자로 전락한 우울증적 생리에 감염되어 있지 않으며, 이념에 눈이 멀었던 세대가 현실의 냉혹함과 마주치면서 빠져들었던 지식인적 음습함과도 관계를 맺고 있지 않다. 또한 소여된 세계의 폭력을 벗어나려고 세계와 자아를 동시에 비틀어버린 지독한 야유에도 익숙하지 않으며, 가능성의 신비를 딱딱한 현실과 겹쳐 짜면서 리얼버추얼한 세계의 문법을 만들어가고 있는 은밀한 냉소와도 결별한다. 그의 소설은 우울하지 않고 유쾌하며, 음습하지 않고 청명하며, 야유하지 않고 유머러스하며, 냉소하지 않고 긍정한다. 그럼으로써 그는 지난 연대의 주류 소설가들이 혐오했던 역할인 이야기꾼의 자리를 단숨에 떠맡는다. (장은수-문학평론가)
신국판/264쪽/값 7,500원
출간일: 2001년 4월 16일
책임편집: 김현정, 김미영 (927-6790, 내선 217/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