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시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시인이자 문학평론가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남진우의 평론집 『그리고 신은 시인을 창조했다』가 문학동네에서 출간되었다. 1989년부터 2001년까지 발표된 스무 편의 시론을 수정·보완하여 묶었다. 그는 책머리에서 시의 위기 시의 죽음이란 말을 "유행하는 풍문"이라 규정하며 시는 그 기원에서부터 위기를 먹고 죽음을 사는 독특한 생존방식을 택해왔다고 말한다.
시에게 위기는 일용할 양식이며 죽음은 일종의 운명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시의 위기라 할 때 그 위기는 상황적 의미에서의 위기가 아니며 시의 죽음이라 할 때 그 죽음은 세기말의 불안의식이나 엽기적 성향의 발현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결국 시란 절대에의 욕망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책머리에 중에서
저자의 말에 따르면 시쓰기란 죽음을 향한 매혹과 그것의 유예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와 같다. 결국 이 책은 이같은 위기의 시간 속에서 시의 죽음과 싸워온 우리 시대의 주요 시인들에 대한 성찰의 기록인 셈이다.
저자는 "나의 글이 대상이 된 시인들에 대한 매혹을 일깨우고 그 시인들의 작품에 대한 관심과 이해의 지평을 확장하는 데 조금이라도 이바지할 수 있다면 더이상 바랄 게 없다"고 책을 출간한 소감을 밝히고 있다.
시적 상상력으로 투시하는 시적 근원
『그리고 신은 시인을 창조했다』는 저자로 하여금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을 불러일으킨" 황동규, 정현종, 오세영, 강은교, 차창룡, 김언희, 윤의섭 등 총 스무 명의 시인을 다루고 있다. 이들의 각기 다른 색채와 시선의 시세계는 『그리고 신은 시인을 창조했다』에서 저자의 눈을 통해 "위기의 시간 속에서 시의 죽음과 싸워왔다는 점"에서 하나의 동일선상 위에 놓이게 되었다.
스무 명의 시인 중 서두는 미당론이다. 미당의 죽음을 맞아 그의 「자화상」을 재평가하는 「집으로 가는 먼길」에서 그는 미당이 "자신의 생애의 처음과 끝을 꿰뚫어보고 이를 극화할 줄 아는 예언자적 면모를 보여주고 있으며 자신의 치부마저 가감없이 드러내는 고백체의 어법 속에 향후 자신의 일생을 결정짓게 될 운명의 표정을 조각해놓았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그의 끝없는 떠돎은 세계와 타자를 향한 개방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부단한 자기 동일성의 확인으로 귀결되며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을 읽고 가고/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를 읽고 가나/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에서 드러나는 것은 저주받은 시인의 후예로서의 오만함만이 아니라 완강한 자기 집착을 통한 자아의 건설과 보존에 대한 욕구라고 정리하고 있다. 또한 "보유―고은의 미당 비판에 대하여"에서 저자는 "고은은 서정주 시에 접근하는 데 아무런 반성적 거리도 취하고 있지 않"으며 고은의 미당론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정작 미당이 아니라 미당에 대한 고은의 감정일 따름"이라고 말한다.
2001년 46회 현대문학상(비평 부문)을 수상한 정현종론 「행복의 시학, 유출의 수사학」은 디오니소스적 열광이라고 할 만큼 생의 환희를 노래한 시인의 시적 작업이 "삶의 불합리성과 세계의 무의미성"과의 싸움에서 얻어진 성과이자, "절망적인 순간에서도 희망의 언어를 채굴"하려는 시적 정신의 발현임을 밝힌 글이다. 문학평론가 오생근 교수는 심사평에서 저자의 글을 "비평적 대상으로 삼는 시인과 작가를 선택하는 데 일관된 원칙을 보여주고, 주관적인 틀에서 출발하면서도 대상의 문학적 특성을 밝히는 데 감각적인 예민함과 섬세한 시각을 발휘한다. 특히 시인을 대상화하면서 시인의 상상력과 이미지의 구조적 특징을 분석하고 종합하는 그의 능력은 뛰어나다"라고 평가한 바 있다.
황동규론 「한 삶의 끝, 한 우주의 시작」에서는 연작시집 『풍장』을 하나하나 조명하며 그의 시가 "죽음의 망각과 배제를 단호히 거부함은 물론 죽음을 향한 실존에게 부과된 운명의 무거운 짐으로부터도 자유로워짐으로써 삶과 죽음 사이에 새롭고 바람직한 관계를 정립시키고자 하였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풍장 70」에서 시간의 현상적인 나(ego)는 죽고 지상적 존재에게 부과된 일회적 죽음의 운명에서 벗어나 영원한 현재(Eternal Now)를 사는, 초시간의 절대적인 나(Self)로 다시 태어난 것이라고 결론짓는다.
오세영론 「우리 시의 정통과 전통을 찾는 작업」에서 저자는 그의 시가 "계속되는 형이상학적 질문과 응답을 통해 한국 서정시가 그 동안 다루지 못한 미답의 영역으로 나아가고 있"으며 "존재의 해석자로서 일상인들이 놓치고 지나가는 사소하고 범상한 것들에게 감추어진 의미를 이끌어낸다"고 평가한다.
또한 저자는 「천사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서 강은교의 시를 발터 벤야민의 「역사철학테제」의 천사 이미지와 동일선상에 놓고, "세계가 서서히 어둠 속으로 잠겨드는 황혼녘, 천사 한 명이 사람들 주위를 배회하며 그들의 고단한 일상과 꿈을 엿듣고 있다. 처음 그 천사는 잔해 위에 또 잔해가 쌓이는 몰락의 현장을 지켜보며 이를 묵시록적 풍경화에 담아냈지만 지금은 훨씬 따뜻하고 연민에 찬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다. 그 천사의 시선이 머무는 곳마다 작은 사랑의 드라마가 펼쳐진다"고 그의 시를 평가하고 있다.
김언희론 「메두사의 시」에서 저자는 김언희를 "현실이 허용하는 안전선 이편에 머물지 않고 인습적으로 유지되어온 각종 금기를 위반하는 모험 속으로 뛰어들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극단의 시인들(extremist poet)" 중 하나로 평가하였다.
이 밖에도 저자는 정진규(「몸의 신비 상처의 꽃」), 김형영(「관능과 죽음」), 임영조(「탈속과 통속 사이의 길」), 조정권(「신성(神性)을 찾아서」), 김영석(「별과 감옥의 상상세계」), 김기택(「알을 품고 있는 어둠」), 이진명(「저물 무렵의 산책자」), 고진하(「연옥의 밤 실존의 여명」), 장경린(「자의식의 변주」), 주창윤(「수평적 시선의 깊어지기」), 유하(「도시 속의 풀무치 한 마리」), 차창룡(「스카톨로지, 분뇨의 시대 쟁기질의 언어」), 이갑수(「속도전 시대의 자맥질」), 윤의섭(「죽음의 현상학 삶의 고고학」) 등의 시세계를 섬세하고 뛰어난 통찰력으로 투시한다. 날카로운 지적 언어와 섬세한 감성 언어를 결합시키며 빚어낸 그의 비평은 물과 공기, 꿈, 자연을 가로지르는 바슐라르적 분석을 통하여 텍스트의 속살을 경험케 한다. 문학평론가 최동호 교수의 말처럼 "시적 언어의 영역을 넘어서 상상을 저편을 바라보게 하는 그의 비평적 언어들은 문화의 변방에서 문화의 핵심으로 직핍하려는 열정으로 가득 차 있다는 점에서 죽음의 위기에 몰린 우리 시에 풍요로운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이 책에 대하여
자신이 다루고 있는 시인들보다도 더 뜨거운 언어와 그 언어로 지질 살을 지니고 있는 사내가 여기 있다. 그 지짐 속에서 시인들과 시들이 새로운 빛과 새 고통/쾌감을 획득한다. ―황동규(시인·서울대 영문과)
비평가는 많아도 참다운 비평은 드물다는 이 시대에 남진우의 비평을 만날 수 있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그는 비평적 대상으로 삼는 시인과 작가를 선택하는 데 일관된 원칙을 보여주고, 주관적인 틀에서 출발하면서도 대상의 문학적 특성을 밝히는 데 감각적인 예민함과 섬세한 시각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특히 시인을 대상화하면서 시인의 상상력과 이미지의 구조적 특징을 분석하고 종합하는 그의 능력은 뛰어나다. ―오생근(문학평론가·서울대 불문과 교수)
남진우의 비평에는 불가해한 매력과 신비가 있다. 시적 상상력으로 가득 찬 그의 뛰어난 통찰력은 불사의 생명을 갈망하는 시적 근원을 투시하여 섬세하고 날카로운 문장으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다. 시적 언어의 영역을 넘어서 상상의 저편을 바라보게 하는 그의 비평적 언어들은 문화의 변방에서 문화의 핵심으로 직핍하려는 열정으로 가득 차 있다는 점에서 죽음의 위기에 몰린 우리 시에 풍요로운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최동호(문학평론가·고려대 국문과)
남진우의 비평에는 불가해한 매력과 신비가 있다. 시적 상상력으로 가득 찬 그의 뛰어난 통찰력은 불사의 생명을 갈망하는 시적 근원을 투시하여 섬세하고 날카로운 문장으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다.-최동호(문학평론가, 고려대 국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