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명의 시인, 소설가가 문학에의 사랑과 사유, 습작의 고통 등 나의 문학 이야기를 육성으로 고백했다. 박경리, 신경림, 이제하, 고은, 황동규, 오정희, 신경숙 등이 참여한 이 책은 한국문화예술진흥원에서 2000년 3월 24일부터 주최한 금요일의 문학 이야기 강연 가운데, 작가의 동의를 얻어 새로 가다듬은 원고들을 모은 것이다.
『나의 문학 이야기』는 시인과 소설가는 어떻게 탄생하고 만들어지는가, 글쓰기의 비밀스러운 풍경은 무엇인가에 대한 풍성한 답변이다. 삶 속으로 문득 문학이 들어와버린 첫 접신의 떨림부터 문학에의 외경을 품고 스스로를 단련시켜나가는 습작기의 도정, 창작의 고통과 즐거움에 대한 내밀한 고백 그리고 문학에 대한 다채롭고 깊이 있는 사유의 전개까지 그들이 차근차근 전해주는 문학의 생체험 속에는 작품과는 또다른 감동이 기다리고 있다. 그 감동은 한 사람의 시인, 작가를 탄생시킨 아름다운 시간의 힘으로부터 오는 것이겠지만, 그 순간 독자들은 성큼 문학의 문을 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문학은 어디서 오는가
"새벽에 일어나보니 눈이 다 그쳤어요. 울타리가 없는 시골 뒷간에서 일을 보고 있는데, 하늘에 주먹만한 별들이 가득 달려 있어요. 한참 밑에는 공사장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 공사장에서 불빛이 비쳐요. 마음이 얼마나 슬픈지 시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필기도구가 없었으니까 일단 속으로 시를 썼지요."
시인 신경림은 등단 이후 십여 년을 시골에 묻혀 살다가 다시 시를 쓰게 된 심경에 대해 위와 같이 고백하고 있다. 속에서 뭔가 북받쳐올라 시를 안 쓰면 못 견딜 때. 그것이 바로 문학의 출발점이라는 것이다.
문학을 시작하는 데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한 체험도 제각각이다. 문예반 활동을 하던 고교 시절, 백일장에서 한 번도 수상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강가에서 흐르는 물을 내려다보며 비애의 울음을 터뜨렸던 소설가 전상국은, 그 비애 속에서 본격적인 문학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시인 고은은 어릴 적 하늘에 떠 있는 별을 먹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고백한다. "그게 나에게는 일종의 부끄러움이었습니다. 시인이라면 별을 꿈꾸는 대상으로 노래해야 하는데 나는 별을 밥으로 알았으니 얼마나 무식하고 비시적인 체험입니까." 그러나 이런 회상은 이것이 절실한 삶의 문제에서는 별을 가장 절실하게 만난 행위였다는 깨달음과 함께 문학적 성숙을 가늠하게 한다. 소설가 이문구에게 문학은 살기 위한 방편이었다. "빨갱이 자식"이라는 멍에를 안은 채 살아야 했던 그는 "나는 어떻게 개죽음 안 당하고 살 수 있을까" 하는 문제만을 생각했다. 그리고 유명 문인 L씨가 좌익 혐의로 검거되어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가 풀려난 이야기를 책에서 읽고 문학가의 길을 선택하게 됐다. 그리하여 그의 생체험은 『관촌수필』 『우리동네』로 이어진다. 『객주』 『아리랑 난장』 의 작가 김주영의 경우도 어린 시절 경북 청송에서 자라며 "버스는 언제 오는가, 장날이 언제인가, 옹기도막에서 옹기는 언제 굽는가, 육곳간(정육점)에서 소를 언제 잡는가, 장사꾼은 뭘 하고 살까, 어디에 사는 사람들일까" 등에 온통 관심을 빼앗겼던 경험을 통해 떠돌이의 글쓰기, 그 원점을 탐사하고 있다.
한편 저자들은 문학을 한다는 것에 대하여 충고를 마지않는데, 문학을 공부하는 문청들의 가슴 깊이 자리잡는 한마디 한마디가 될 것이다. 소설가 김원일은 "7세부터 20세까지의 경험세계를 들여다보라"고 강조한다. 모든 소설의 소재가 그 경험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소설가 서영은은 등단하는 것을 제1목표로 하는 습작생들에게 "욕심을 가라앉히고 자기 안에 있는 뭔가를 깊이 들여다보는 자세로 글을 쓰"는 게 중요하다고 충고한다. 시인 강은교는 "오늘 몇 번 전율했는가, 오늘 몇 번 탄성을 질러보았는가, 피그말리온의 살(肉)에 대해 생각해보았는가, 무엇을 보았는가, 당신은 침묵을 지니고 사는가" 등 오늘의 시문학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시인 장석남은 "자신이 앉아 있는 실존 공간이 그 주체와 교감하기 시작할 때, 여러 가지 형태의 사물과 공간이 살아 움직일 때 시가 찾아온다"며 그 순간을 찾는 데 매진할 것을 당부한다. 전상국은 "글 쓰는 일이 즐겁다"는 것이 작가로서 가장 중요한 모습이라 말하며 글쓰기의 즐거움을 잃지 말기를 충고한다.
시인 황동규는 「즐거운 편지」가 고3 때 짝사랑하던 연상의 여자를 향한 연애시임을 고백한다. 소설가 오정희는 "줄거리나 메시지보다 분위기나 이미지에 집착하는 성향의 내게 소설쓰기란 한 단어, 한 문장과의 싸움"이며 "글을 쓸 때마다 갖게 되는, 자모음 하나하나까지도 모조리 뒤집어버리고 싶은 참을 수 없는 파괴 욕구"를 느낀다는 고통스럽고 아픈 고백을 한다.
소설가 신경숙은 "나서 살고 죽는 가운데 가장 찬란한 순간. 그 순간은 상실하게 되어 있기에 우리는 쓰고 만들고 노래하고 새겨놓는 게 아닐까"라고 말하고 있다. 시인, 소설가로서 발 딛기, 스스로를 단련시키기, 즐겁게 글쓰기와 아프게 글쓰기에 대해서 고뇌하는 그들의 목소리는 우리에게 문학에 대한 외경의 다름아닐 터이다.
*2001년 12월 14일 발행/ISBN 89-8281-449-3 03810
*신국판/344쪽/값9,000원
*담당편집: 김현정, 장한맘(927-6790, 내선 217, 214)
시인과 소설가는 어떻게 탄생하고 만들어지는가. 글쓰기의 비밀스러운 풍경은 무엇인가. 17인의 시인, 소설가가 들려주는 문학 이야기는 그 풍성한 답변이다. 시인 소설가로서 첫발 딛기, 스스로를 단련시키기, 즐겁게 글쓰기와 아프게 글쓰기에 대한 그들의 이야기에 독자들은 성큼 문학의 문을 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