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진실 앞에서 소설은 이상과 현실의 괴리, 기대한 것과 이룬 것의 낙차라는 반어적 구조로 대응한다. 소설은 기대와 결과의 반어적 어긋남을 가차없이 보여줄 수밖에 없다. 그 어긋남은 비평가가 작가에게 강요하는 사항이 아니며, 또 작가의 개인적 선의와도 무관한 결과, 근대적 삶의 논리적 결과이다. 터무니없이 미끄러짐이 바로 역사이며 리얼리티가 아니겠는가. 내가 우리 시대 소설의 표정을 살피면서 유독 아이러니를 삶의 진실이며 소설의 방법이라 여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책머리에 중에서
미시적 읽기와 구체적 쓰기
저자는 소설의 서사란 공유하고 있는 현실의 본질을 형상화하고 경험적 사건을 재현함으로써 우발적이고 비완결적인 삶에 질서와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라고 규정하면서 이를 중요한 비평적 준거틀로 삼는다. 「내성적 신변소설 비판」에서 90년대 소설의 한 징후라 할 수 있는 자기 고백적 소설을 "내성적 신변소설"로 칭한 저자는 이 경향의 원인을 소설쓰기에 대한 작가의 자기 모멸이라 보고 하창수, 양귀자, 주인석, 박상우 등의 작품을 분석한다. 작가가 자신의 맨얼굴을 내밀고 글쓰기 이전의 자기 의식을 글쓰기의 대상으로 삼아 소설쓰기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내성적 신변소설이 가지고 있는 한계를 지적하는 이 평문에는 내성적 신변소설이 작가 자신을 반성적으로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고, 새로움을 기약하는 자기 갱신의 몸짓이 되어 새로운 소설세계를 독려해야 한다는 저자의 기대가 반영되어 있다.
「90년대 소설의 환상성, 그 상상력의 모험」에서 저자는 양귀자, 김탁환, 김경욱 등으로 대표되는 환상소설을 타자를 발견 복원하려는 상상력의 모험이라 본다. 환상소설이 무기력에 빠진 90년대 소설에 대한 예술적인 혁신, 기존의 서술체계로는 획득할 수 없는 존재에 관한 새로운 통찰이 되리라 기대하는 반면, 매체나 장르의 경계가 해체됨으로써 오는 문학의 키치화 혹은 문화소비의 키치적 상황을 경계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한창훈(『세상의 끝으로 간 사람』)과 은희경(『마이너리그』), 김영하(『아랑은 왜』)의 소설을 함께 읽은 「경험의 가치와 서사의 모럴」은 서사적 목소리가 개입할 수 없는 경험세계와 경험에 대한 허구의 우위를 대비함으로써 경험 재현의 가치를 음미하고 있다. 하성란론 「소설적 방법과 삶의 진실」에서 저자는 "작가의 거칠고 자의적인 호흡을 정지하고 현상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 사물의 존재방식을 있는 대로 그려내는 것"을 하성란의 소설적 방법이라 특징짓고 낯섦과 어긋남을 포착할 수 있는 그의 능력은 죽을 수밖에 예술가의 운명을 가까스로 유지한다고 평가내린다.
「『혼불』론을 위한 각서」는 『혼불』에 대한 기왕의 평가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사건 시간이 30년대 후반에서 40년대 전반에 이른다는 점이나 예술이 예술지상주의나 예술을 위한 예술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우선 대하 예술소설이라는 기존의 지칭이 모호하다는 것, 전개방식 혹은 구성방식 면에서 중심줄기에 비해 곁가지가 너무 많고 그들의 연계가 유기적 인과적 선조적이지 않다는 것, 『혼불』에 등장하는 민속 정보가 인물의 성격이나 행동과 무관한 형태로 존재한다는 것 등이 그것이다.
이 밖에 저자는 김영현의 최근 소설, 공지영의 『존재는 눈물을 흘린다』, 정도상의 『푸른 방』, 김하기 이송여의 생태소설, 성석제의 『재미나는 인생』, 신경숙의 『기차는 7시에 떠나네』,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등에 대한 예리한 비평을 선보인다. 또한 시대적 상황과 함께 소설에서 복권된 아버지-가부장의 삶을 해석하고 비판하며(「아버지 이야기의 역설」), 사십대 작가―김영현, 윤영수, 최윤, 박상우 등의 소설을 들어 사십대 작가들의 세대론적 사유와 그 다채로운 작품세계를 검토하는(「불혹, 세대론적 사유와 표정」) 등 다양한 비평담론을 펼친다.
이 책에 대하여
작품을 꼼꼼하게 따져 읽는 일은 비평의 기본이지만, 그런 기본조차 귀해진 요즘평단에서 황국명의 성실한 글읽기는 인상적이다. 그가 대충 읽고 적당히 써대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 사소함의 의미도 놓치지 않으려는 그는 욕심스러운 비평가지만, 그 욕심 덕분에 텍스트의 빈틈과 이면까지 탐사하게 된다. 미시적인 읽기와 구체적인 쓰기의 미덕을 갖춘 점에서 황국명은 우리 시대 비평이 나아갈 한 방향을 지시한다. 아이러니를 통해 삶과 소설에 관한 통찰을 얻어낸 이번 평론집은 그 증거이다.―김중하(문학평론가. 부산대 교수)
비평의 집은 부단한 이론비평의 모색, 문학현장에 대한 쉼없는 실제비평, 다양한 비평담론에 대한 비평의 비평이란 세 기둥에 의해 완성되어간다. 그런데 이론과 실제비평이란 두 기둥으로 지어진 비평의 집들이 주류를 이룬 우리 평단에 황국명은 비평의 비평이란 든든한 기둥을 새롭게 회복시킨 장본인이다. 그의 평문 도처에서 확인되는 번뜩이는 문제의식은 이러한 그의 비평의식의 발현이다. 그를 이 시대의 문제적 비평가로 지목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남송우(문학평론가. 부경대 교수)
늘 느끼는 일이지만, 황국명 형의 평론은 철저하다. 이러한 철저함은 대체로 두 가닥의 씨줄과 날줄이 팽팽하게 교차하는 양상으로 발현된다. 그 한 가닥인 씨줄은 이론의 탐구이다. 그는 지칠 줄 모르게 소설시학의 근본을 헤집고 있다. 다른 한 가닥은 성실한 텍스트 읽기다. 텍스트의 겉과 속, 의식과 무의식은 물론 드러난 빛과 함께 가려진 그늘들을 탐사한다. 이 두 가닥은 서로 다른 힘들이어서 그의 내부에서 자주 충돌하기도 하지만, 그는 이들을 적절하게 통어하면서 뛰어난 글쓰기로 이론의 추상과 텍스트의 구체가 서로 훼손됨 없이 조화를 이루는 장관을 연출한다. 이래서 그의 평문들은 작가와 연구자 모두에게 항상 새로운 의미들을 던진다.―구모룡(문학평론가. 한국해양대 교수)
작품을 꼼꼼하게 따져 읽는 일은 비평의 기본이지만, 그런 기본조차 귀해진 요즘평단에서 황국명의 성실한 글읽기는 인상적이다. 사소함의 의미도 놓치지 않으려는 그는 욕심스러운 비평가지만, 그 욕심 덕분에 텍스트의 빈틈과 이면까지 탐사하게 된다. 미시적인 읽기와 구체적인 쓰기의 미덕을 갖춘 점에서 황국명은 우리 시대 비평이 나아갈 한 방향을 지시한다.--김중하(문학평론가.부산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