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시인 김혜순이 말하는 여성의 글쓰기, 여성적인 글쓰기, 그 새로운 글쓰기
페미니즘 시학이라 할 수 있는 이 책에서 김혜순은 고정된, 무거운, 강압적인, 닫혀 있는 남성적인 글쓰기에 반해 유동적이고, 가벼운, 열려 있는 여성적인 글쓰기를 이야기하면서 그 안에서 이미 그러한, "불온"하고 "전복적인" 여성적인 글쓰기의 실례를 보여준다.
여성의 시에 대해 말하는 것은 여성성을 실천하는 것만큼이나 불온하며 전복적인 것이다. 태초에 말과 질서와 시가 태어난 이래 문명의 매 단계에 침묵시키려 했던 것, 여전히 부인되고 있는 것을 연행하는 것이기에.
김혜순의 여성시론은 그렇게 우리 시적 체험의 한 시원, 잊혀지고 버려져 여전히 미지인 시의 몸을 해원하고 되살려낸다. 김혜순은 만신이다. - - 최윤(소설가)
신들린 여성의 언어, 흘러넘치는 희열의 언어, 독창적인 시론의 언어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은 아마도 나는 너를 사랑한다라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과연, 여성인 나도 이 말을 할 수 있을까? 여성인 내가 어떻게, 무엇으로 너를 사랑한다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사랑이란 말 속에는 이미 근대의 기획이 무섭도록 내재해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나는 어떤 방식으로 이 사랑의 대화 속에 거주해야 한단 말인가. 사랑한다라고도 말할 수 없음으로 나는 아프다. 더구나 나는 문학적 보편성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남성적 원전에 부대끼면서도, 페미니즘이라고 불리는 서양적 담론으로부터도 멀리 떨어져 사는 제3세계의 여성시인이다. 그럼에도 이 자리, 이 이중 삼중의 식민지 속에서 나는 여성의 언어로 여성적 존재의 참혹과 광기와 질곡과 사랑을 드러내는 글쓰기에 대해 말해야 한다. 이것이 나에게 시를 쓰게 하고, 이 글을 쓰게 하는 원동력이다. 아마도 이 글을 써나가는 동안 바리데기가 와서 나와 함께 걸어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 - 본문에서
왜 여성의 언어는 주술의 언어인가. 왜 여성의 상상력은 부재, 죽음의 공간으로 탈주하는 궤적을 그리는가. 왜 여성의 시적 자아는 그렇게도 병적이라는 진단을 받는가. 왜 여성의 언술은 흘러가는 물처럼 그토록 체계적이지 못한가. 왜 여성의 시는 말의 관능성에 탐닉하는가...... 저자는 이 수많은 질문들을 던지고 또 던진다.
그 질문들에 답하고, 또다른 의문들을 던지면서 그는 그 동안 한번도 "전경화(前景化)되어본 적이 없는, 이 나라 문학사에 버려진, 던져진, 벗어난, 그러나 살아난 무조(巫組) 여신 바리데기"를 뮤즈의 자리에 올려놓는다. 그의 글에서 세상에, 엄밀히 말해 남성들의 세상에서 내버려졌던 여자 바리데기는 버려진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동시에 극복하는 여성, 어머니, 시인으로 다시 태어난다.
시인 김승희의 말처럼 그의 언어는 여성적 글쓰기의 신비한 원천에 대해, 여성적 글쓰기의 질병과 욕망에 대해, 여성적 글쓰기의 위험한 숙명에 대해, 여성적 글쓰기의 고유한 사랑과 치유의 형식에 대해 아주 절박한 목소리로 발화하고 있다. 무언가 신령에 들린 목소리, 그래서 아픈 목소리, 그래서 사랑하는 목소리, 그래서 환자의 목소리이기도 하고 연인의 목소리이기도 하다가 더 나아가 신화적 문체가 되기도 하는 이 목소리. 흘러넘치고 퍼져나가며 여울지다가 고요히 맴도는 이 목소리들의 다원적 여성성 자체가 김혜순적 여성적 글쓰기의 징후, 또는 징표이기도 하다. 그 목소리 속에 의미들은 무한히 다채롭게 역동적으로 스며든다.
들림의 시, 그 물의 언술
저자는 부재의 존재방식으로 존재하는 여성의 시에서 죽음을 껴안는 증후를, 세상을 보는 눈을 달라지게 하는 여성이라는 이름의 병을, 전복적인 욕망을, 새로운 이름의 어머니를, 그리고 물의 이미지를 찾아낸다. 그 길고 멀고, 부드럽고 검은, 적막하고 깊은, 그러면 끝없이 흘러다니는, 돌고 도는, 물의 편재하는 모습을 통해 시인은 여성의 정체성을 찾는다. 여성시인은 타자화되고 폄하되어왔던 물의 언술을 통해 오히려 그 타자를 살려낼 수 있다고 본다. 남성적 화자들이 여성들의 몸을 비하해서 부를 때 쓰던 그 형용사들로 오히려 타자를 살려내는 것이다.
물의 언술은 쉴새없이 방향이 바뀌고 느닷없이 잘리며, 덧붙여지고 끊어지다 폭발하며 비틀거리고 되돌아오며 감기거나 한없이 미끄러지다가, 스며들고 증발한다. 삶과 죽음이, 죽음과 삶이,큰 것과 작은 것이 교차되고 뒤섞인다. 여성의 문체, 그 말들의 결에서 숨어 있던 것들이 터져나오는 것이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여성의 몸 속에 죽음으로써 현존하는 어머니를 발견하고 그 어머니의 존재를 더듬거리는, 환유의 수사학으로 터뜨려내는 여성시학의 기원이다. 저자 자신의 시론이기도 한 이 기원의 묘사에서 우리는 한국 페미니즘 시학의 창조적 토론 가능성을 확인한다.
이러한 여성시론을 펼치면서 <필로우 북 pillow book> <내 어머니의 모든 것> <키스드 kissed> 등의 영화와 루이즈 부르주아, 토니 크랙의 작품 등을 들어 다양한 접근을 시도하고 있는 저자의 글은 그 형식이나 내용에서 "논리만으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시의 탄생의 그 영원성의 순간을 하는 수 없이 에로틱한 상상의 언어가 채색의 물결로 와서 메우고 있는 이 새로운 여성적 글쓰기의 경이로운 고백"을 보여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김혜순의 여성시론은 그렇게 우리 시적 체험의 한 시원, 잊혀지고 버려져 여전히 미지인 시의 몸을 해원하고 되살려낸다. 김혜순은 만신이다. - - 최윤(소설가)